시스템안전 패러다임

시스템 사회인데 시스템으로 다루지 않는 산업안전

2024-11-08 13:00:27 게재

한국시스템안전학회 2024 학술대회 … “안전-II로 패러다임 변혁과 안전탄력성으로 출구 찾아야”

한국시스템안전학회(학회장 권보헌)가 6일부터 7일까지 이틀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안전탄력성(Resilience)과 시스템안전’을 주제로 2024년 학술대회를 열었다.

학술대회는 법무법인 화우와 내일신문 공동주최, 안전보건공단 후원, 한국시스템안전학회가 주관으로 최근 급증하는 사고와 재난에 대비해 시스템 안전의 중요성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예방적 접근법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권보헌 학회장은 개회사에서 “아리셀 공장의 화재사고, 청라동 아파트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사고는 우리에게 깊은 충격을 안겨줬고 안전관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시스템 안전의 본질은 단순히 문제를 예방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변화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하며 지속 가능한 안전을 이루는 데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안전탄력성을 바탕으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시스템 구축과 동시에 사고 발생시에도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체계적인 대응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시스템안전학회(KSSS)는 제조 의료 항공 해양 원자력 건설 교통 정보통신(IT) 등 사회 각 분야의 안전을 국제적 수준의 시스템안전공학의 방법론을 적용해 개선하고 원천적으로 시스템의 안전탄력성을 높임으로써 선진 안전을 현장에 정착시키려는 연구자와 실무자들의 학술단체다. 2016년 레질리언스 안전연구회를 시작으로 2019년 7월 2일 창립했다.

한국시스템안전학회는 6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2024 한국시스템안전학회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권보헌 학회장, 임무송 대한산업안전협회장, 이대성 항공안전기술원 원장을 비롯해 기업 기관 단체 및 학계 등의 안전관계자 100여명이 참석했다. 사진 대한산업안전협회 제공

6일 학술대회에서 윤완철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명예교수는 ‘안전탄력성의 실천’ 발제에서 “우리 사회의 화두는 안전경영이지만 최고경영자들의 답답함은 할 일을 다 하는 듯한 데 사고는 줄지 않는다는 데 있다”면서 “원인은 시스템을 시스템으로 다뤄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세포부터 기업까지 모든 생명 활동은 시스템적이고 시스템은 복잡하다. 이 복잡성을 외면하면 무엇인들 예상대로 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시스템의 속살을 이해하고 원리적으로 다스리는 것이 시스템적 안전”이라며 “그 요체는 안전-II의 패러다임 변혁과 안전탄력성 공학의 적용”이라는 말했다.

◆시스템의 민활함으로 사고를 비껴가야 = 안전탄력성이란 기업이 변화의 와중에 안전을 유지하는 시스템적 원리다. 시스템의 민활함으로 사고를 탄력적으로 미리 피해 가는 것이기에 회복 탄력성이 아니라 안전탄력성이라고 번역한다. 원리는 모든 지능체가 그렇듯이 현상을 잘 알아채고 잘 대처하고 학습해 지능과 능력을 높이고 예측해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윤 교수는 안전탄력성의 4대 기능요소로 대응·관찰·학습·예측 능력이라고 소개했다.

대응은 안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때 적절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관찰은 조직의 안전 능력과 외부 상황을 지속적으로 관찰·판단하는 능력이다. 학습은 조직의 지식행동을 진화시키는 능력, 예측은 장기적인 변화를 예측해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능력이다.

윤 교수는 “중요한 것은 이 능력들이 따로따로가 아니라 서로 연결돼 있다는 시스템 원리에 있다”면서 “안전도 마찬가지로 이 능력들을 현장부터 리더십까지 기업에 심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활동을 두려움과 규제로 몰아치면 단발적인 사고방지에 급급해지고 근본적 원리를 구현하기 어렵다”면서 “교육, 감독, 사고분석, 위험성 평가 등 하는 일이 많지만 효율이 없고 힘이 빠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스템적 관점을 다시 챙기고 안전탄력성을 심기 위해 활동을 정비하고 업무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고는 복잡한 사회-기술적 시스템의 문제 = 함동한 전남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인지시스템 공학자가 바라보는 시스템 안전’이라는 기조강연에서 “정보통신(IT) 기술이 작업현장에 들어오면서 현대의 산업 및 작업시스템 환경은 이전과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면서 “인간은 IT 기술 기반으로 거의 자동화돼 운영되는 시스템을 감시·제어하고 비정상적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이를 진단하고 대응함으로써 생산성과 안전성을 높이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면서 대부분 인간의 상황인식 고장진단 의사결정 계획 등 인지적인 행위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전소의 작동 원리나 항공기의 설계 작동 원리 등과 같은 작업영역의 기능 및 구조를 분석하고 수행할 (인지적) 직무, 직무를 수행할 다양한 전략, 작업자의 구성조직 및 협업구조, 작업자의 인지적능력 및 특성을 순서대로 분석해 나가면 마지막에 작업자가 생산성 있게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는 허용될 수 있는 작업 반경이 된다. 예측된 상황이든 예측되지 않은 상황이든 이 반경 내에서는 어떠한 행위도 할 수 있다. 출처: 함동한 전남대 산업공학과 교수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쓰는 인지적인 직무가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원자력 발전소 항공관제센터 스마트팩토리 도시중앙관제센터 등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의 역할이 대표적인 예다.

함 교수는 “이러한 특징을 갖는 시스템을 ‘복잡한 사회-기술적 시스템’”이라며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으로 향후 대부분 산업 및 작업환경에서 이러한 시스템적 특징은 더 가속화돼 나타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인지시스템 공학이 현재 안전분야에서 안전-II(Safety-II)와 안전탄력성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안전 패러다임의 이론적 기반이자 학문적 수단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인간과 기술 혹은 시스템 간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지적 행위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분석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인지시스템 공학은 시스템적 문제를 다루기 위한 각종 개념 원칙 및 방법론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안전문제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함 교수는 “시스템안전 향상을 위해서는 시스템 내 인간이 생산적이면서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작업절차 작업도구 및 작업환경 등을 인간 중심적으로 설계해줄 필요가 있다”며 “인지시스템 공학은 인간 중심적인 설계 철학을 실제로 공학적인 결과물로 만들어내는데 실효성 있게 활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전, 성공적인 업무수행 결과가 가능한 많은 상황 = ‘안전탄력성 이해’ 세션에서 배계완 을지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시스템이란 부품 상호연결성, 기능 또는 목적을 구성요소로 일체성 또는 전체성 및 이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을 보유하고 있다”며 “시스템의 지속 요건은 탄력성 기제 자기-조직력”이라고 말했다.

배 교수는 “안전의 정의가 ‘허용할 수 없는 위험이 없는 상태’(Free from unacceptable risk)에서 ‘성공적인 업무수행의 결과가 가능한 많은 상황’으로 변화했고 그 초점 역시 기술 사람 조직으로 확대됐다”면서 “시스템안전은 이 개념들이 합쳐진 것으로 공학적, 경영적, 인지적, 사회적 원리, 기준, 기술의 적용을 통해 시스템의 수용 가능한 안전 수준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스템안전은 안전이 시스템 초기에 만들어져야 하고 기술, 사람, 환경적 요인들이 안전을 창출하거나 마모시키며 설계와 작업과정에서 내부의 다른 요소들과의 충돌·거래를 발굴해 해소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고에서 배우려면 = 권영국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명예교수는 ‘사고사례를 통한 안전탄력성의 이해’ 주제발표에서 미국 에너지부의 사고조사 매뉴얼과 안전관리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홀나겔 덴마크 남부대학 교수의 장벽분석을 중심으로 안전-2(Safety-II)의 개념과 안전탄력성을 ‘허드슨강의 기적’이라는 영화로 상영된 US 에어웨이즈 1549편의 슐렌버거 기장의 사고사례로 설명했다.

허드슨강의 기적은 2009년 1월 15일 미구 뉴욕시 라과디아공항에서 출발해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으로 향하던 비행기가 허드슨강에 성공적으로 착륙하고 승무원과 구조대원의 빠른 대응으로 24분 만에 155명 탑승객 전원을 구조한 사건이다.

권 교수는 “이 사건은 전략적 안전탄력성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면서 “예상치 못한 위기상황에서도 빠르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FRAM의 적용 사례를 2013년 5월 충남 당진시 H사의 아르곤 가스 누출사고로 5명이 사망한 사건을 통해 ‘사건과 원인요소’(ECF)차트 작성법과 FRAM 분석과정을 소개했다. 권 교수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기업주와 근로자들의 역할과 노력, 기업의 건전한 안전문화 형성을 통해서 사고가 궁극적으로 예방된다”고 강조했다.

◆안전을 위한 마음 챙김 = 양정모 SK E&S 박사는 ‘안전탄력성의 실천’ 세션에서 ‘안전탄력성 운영 고도화 방안’ 발표를 통해 “안전탄력성 고도화를 위해 ‘안전마음 챙김’을 기반으로 해야 할 것”을 제안했다.

양 박사는 “사람의 두뇌는 마음을 담아두는 하드웨어로 마음(Mind)은 사람의 생각 상상 느낌 판단의 정신상”이라며 “명상과 함께 스트레스와 현실을 잘 파악하고 집중해 안전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음 챙김(Mindfulness)은 불교어인 Pali어의 Sati로 깨달음. 그리고 자각으로 존 카밧진 미국 메사추세츠대 의과대학 교수가 소개했다.

양 박사는 “고신뢰조직의 5가지 특성으로 △실패에 대한 거부 △단순화에 대한 거부 △운영에 대한 민감도 △회복력에 대한 약속 △전문성에 대한 존중”을 꼽았다.

양 박사는 안전마음 챙김을 조직적인 측면과 개인적인 측면으로 구분했다. 조직적인 측면은 안전보건위원회에 안전마음 챙김 소위원회를 두고 경영층의 참여와 리더십을 기반으로 오류가 발생할 사항 그리고 결함이 있는 통제·방벽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개인적인 마음 챙김은 사람이 위험을 인식하고 집중하며 조직의 안전마음 챙김 원칙을 따라야 한다.

◆인간의 인지적 행동 오류 해결 = 한국시스템안전학회 회장인 권보헌 극동대 항공안전학과 교수는 FRAM을 이용한 예띠항공 691편 사고분석‘을 발표했다.

지난해 1월 15일 네팔 포카라공항에 착륙 접근 중이던 예띠항공 691편의 조종사 실수와 상황인식 실패로 인해 발생했다. 플랩(항공기가 뜨거나 내릴 때 많은 양력을 얻을 수 있도록 날개 모양을 바꾸는 장치) 레버와 동력 레버의 혼동으로 항공기는 최종 활주로 접근중 속도를 잃어버리면서 결국 지면에 충돌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로 이어졌다.

권 교수는 “이러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조종사 훈련 체계와 장비 취급 능력 강화가 필요하다”며 “인적 요인과 상황인식 훈련, 노선 지향 비행 교육(LOFT)가 사고 예방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항공안전을 위해 조종사의 집중력 유지와 모니터링 역량 강화를 위한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항공 안전성 강화에 있어 상황 대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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