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환율 변동성 커져 통화정책 전환 가속 고심
트럼프 당선으로 원달러 1400원 수준까지 급등
물가 둔화·금리차 축소 불구 기준금리 인하 발목
한국은행이 통화정책 운용에서 고려해야 할 요인이 추가됐다.
물가 오름세가 둔화하고, 한미간 기준금리 격차가 축소돼 통화정책 전환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일부 여건이 조성됐지만 외환시장이 요동치고 있어서다.
한은은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기존 연 3.50%에서 3.25%로 낮췄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것은 3년여 만으로 고금리와 고물가로 내수경제가 부진에 빠진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평가였다. 이에 따라 실질적인 내수 촉진을 위해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좀 더 과감한 정책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정책 전환의 속도를 좀 더 빠르게 가져갈 수 있는 여건도 조성됐다. 가장 큰 과제인 물가안정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1.3% 상승으로 둔화했다. 전달(1.6%)에 이어 비교적 빠르게 물가가 안정되는 흐름이다. 한은은 연말까지 대체로 물가안정목표치인 2% 수준으로 수렴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연준(Fed)이 7일(현지시간) 정책금리를 연 4.50~4.75%로 낮춰 한미간 기준금리 격차가 1.50%p 수준으로 다시 좁혀진 점도 한은의 추가 금리인하 부담을 덜어줬다는 평가다.
미국보다 지나치게 금리가 낮으면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질 우려가 있지만 양국간 금리 격차가 줄었기 때문이다.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과 함께 인하해야 하는 필요성도 커졌다.
올해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1%에 그치면서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소비와 투자가 일부 개선됐다고 하지만 건설투자를 중심으로 내수가 부진하고, 수출마저 후퇴해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올해 성장률은 (한은 전망치인) 2.4%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며 “2.2~2.3% 정도로 떨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와 여당 등을 중심으로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으로 수출마저 불투명해질 것에 대비해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해 내수를 촉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으로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발목을 잡는 양상이다. 최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일시적으로 1400원대를 넘어서는 등 불안정성이 고조되고 있다.
불과 한달 전까지 달러당 1300원대 초반까지 내려가 안정세를 보이다 트럼프 당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급등했다. 이처럼 환율 변수가 부상하면서 한은도 통화정책 전환 속도에 고심하는 모양새다.
트럼프 재집권 이후 상당기간 고환율이 유지될 가능성을 내다보고 통화정책을 운용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 셈이다.
이 총재도 지난달 미국 워싱턴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통화정책방향 결정에서 환율 수준이 다시 고려 요인으로 부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은은 이달 28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방향을 결정한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추가 금리인하와 관련 속도조절에 나설 것으로 관측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3분기 성장률이 수출 부진에 따른 것이어서 당장 기준금리 인하의 필요성이 크다고 볼 수 없다”며 “금통위가 지난달 통화정책방향 결정 당시 이미 경기 하방위험을 인지했을 텐데 11월 추가 인하 확률이 높지 않다는 메시지를 준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