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한국 국채, 세계국채지수 편입의 명암
내년 11월이면 한국 국채가 세계 최대 채권지수인 세계국채지수(WGBI, World Government Bond Index)에 편입된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현재 세계국채지수에 가입된 나라는 미국 영국 일본 등 26개 국가며 국채발행잔액 접근성 등을 평가해 편입여부를 결정하는 구조다.
2010년 이후 우리나라 국채는 신용등급면에서 이미 선진국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러나 접근성 제한 등의 이유로 편입이 미루어지다 올 7월 외환시장 개장을 새벽 2시까지 연장하면서 국채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개선됨에 따라 마침내 편입이 이루어졌다. 세계국채지수에 편입된다면 70조원 내외의 신규 국채 수요가 창출된다.
국채발행 불가피한 정부에 구세주 같을 것
그동안 정부가 이렇게 세계국채지수 편입에 많은 공을 들인 이유가 뭘까? 이를 이해하려면 현재 우리가 처한 경제상황과 이에 따른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대응 여건을 살펴봐야 한다.
3분기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0.1%에 그쳐 당초 전망치 0.5%에 못미치고 올해 경제성장률도 전망치 2.4%를 밑돌 전망이다. 더군다나 경제 양극화가 더 문제다. 수출은 여전히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내수는 부진하다. 이러니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좋을 리 없다.
이런 경제상황에서 한국은행은 지난 10월 경기진작을 위해 기준금리를 3.5%에서 3.25%로 0.25%p 인하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대출 확대 등으로 가계대출이 급증하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주택가격 급등이 금융안정을 크게 저해하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3개월 동안은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좀더 강력한 가계부채 관리를 정부에 요구한 셈이다.
윤석열정부는 출범부터 재정건전성 기조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문제는 세수다. 작년 세수가 예상보다 50조원 부족하자 정부는 국채발행 없이 외국환평형기금 등에 있는 원화자금을 가져다 쓰는 한편 지방교부금 삭감과 일부 예산의 불용처리 등 사실상 재정지출 축소로 대응했다. 올해도 30조원의 세수결손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지난해와 비슷한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이러한 재정지출 축소는 결국 내수침체로 이어진다. 이제는 외국환평형기금 등에서 가져다 쓸 돈도 별로 없어 본격적으로 국채를 발행해 재정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내년 국고채 발행금액은 올해보다 43조원 많은 201조원으로 계획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 정부의 고민이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속도가 더딘 상황에서 내년 국채 발행금액을 고려하면 시장금리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내수진작을 위해 금리인하가 필요한 때에 정작 정부의 대규모 국채발행이 시장금리를 끌어 올린다면 가계소비 및 민간투자를 구축(crowding-out)해 내수진작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니 이렇게 늘어날 국채를 받아줄 수요처가 절실히 필요했고 세계국채지수 편입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구세주로 생각했을 것이다.
영국 트러스정부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야
그러나 이러한 선의에 기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좋은 예가 2022년 10월 영국 트러스(Liz Truss)정부의 몰락이다. 보수당 총리 리즈 트러스는 집권 이후 재원조달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 없이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했는데 이는 영국의 재정적자 우려를 낳았고 채권자경단(bond vigilantes)의 국채 투매로 이어졌다. 총리 취임 한달 만에 10년 국채금리가 1.7%p 급등하고 파운드화도 7%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에 대혼란이 발생했다. 결국 이 혼란은 취임 45일 만에 트러스의 감세정책 철회와 사임으로 막을 내렸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경제가 대외적으로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영국처럼 언제든 채권자경단의 국채 투매로 우리 경제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