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환경시대 또 다른 도전

인공지능과 환경의 만남, 새로운 시장을 열다

2024-11-11 13:00:17 게재

기후재난대비 폐기물 생물다양성 등 다양한 분야서 활용 … 우리나라 인공지능지수, 미국과 큰 격차로 떨어져

다시 트럼프 시대가 돌아온다. ‘설마 진짜 하겠어’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현실화했던 트럼프 1기 정책들을 생각해보면 기후위기 대응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그도 그럴 것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들은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는 가치관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인공지능 등 새로운 기술과 혁신, 그리고 기성세대들의 책임 있는 움직임이 있는 한 인류 생존을 위한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큰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은 우리가 생물다양성 측면에서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 어떻게 잃어가고 있는지를 훨씬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아네 알렌카르 브라질 아마존 환경연구소(IPAM)의 과학 책임자는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지와의 인터뷰(기사 ‘세계 생물다양성 정상회의, 인공지능이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다’ 중)에서 이렇게 말했다. 브라질 아마존 환경연구소는 △기후변화가 아마존에 미치는 영향 △아마존 산림 보전 연구 등을 하는 비영리 연구기관이다.

티냐 버거-울프 오하이오주립대학의 컴퓨터 과학 교수는 “새로운 종을 찾고 보호가 필요한 멸종위기종이나 취약한 서식지를 확인하는 일은 노동집약적인 현장 작업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었는데, 위성 센서 등 자동화된 디지털 도구를 사용하는 일이 늘고 있다”며 “인공지능은 수백 시간 분량의 소리나 비디오 녹음을 걸러내어 관심 있는 종을 식별하는 데 필요하신 시간을 몇 년에서 몇 분으로 단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인력과 자금이 부족한 정부와 보전 단체에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국제학술지 ‘지구 생태학과 보존(Global Ecology and Conservation)’의 논문 ‘생태 연구용 무인카메라 영상의 객체 탐지 활용: 사람과 동물의 효율적 분류 방법 분석’에 따르면, 무인카메라에서 수집된 이미지 15만9272장을 마이크로소프트의 인공지능 객체 탐지 모델(MegaDetector)을 활용해 사람과 동물을 자동으로 분류한 결과, 기존 수동 방식보다 8.4배 빠르고 정확도 역시 99%에 달했다.

◆기피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 열어 = 인공지능과 환경이 빠르게 융합하고 있다. 물 폐기물 생물다양성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진화 중이다.

5일 황의호 환경부 한국수자원공사 수자원위성센터장은 “선진국들은 이미 기후위기로 인한 각종 재난 대응 체계를 사후가 아닌 사전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며 “재난이 난 뒤 복구하는 일보다는 미리 예방하고 조치하는 게 중요한데, 이때 인공지능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통상 하천에 수위계를 달아 폭우로 인한 하천 범람 가능성을 확인한다. 만약 수위계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을 활용하게 되면 하천 범람 시 대피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벌 수 있게 된다.

황 센터장은 “수위가 10m 정도 되는 데 앞으로 비가 추가로 얼마만큼 더 내리게 되면 지류에서 들어올 수 있는 양이 얼마가 될지 등 관련 시나리오들을 인공지능에게 학습시켜 놓을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하천 범람 위험성을 사전에 알게 될 수 있어 주민들이 생명이나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 대응 능력 향상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은 새로운 자원순환 시장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냄새나고 더러운 존재로만 여겨졌던 쓰레기가 인공지능을 통해 새로운 문화로 재탄생 중이다.

수퍼빈은 2015년부터 인공지능 빅테이터 사물인터넷(IoT) 등 4차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 ‘재활용 자원 거래 시장’을 만들고 있다. <내일신문 2023년 3월 13일자 환경면 참조>

시민들이 폐페트나 폐알루미늄캔 등을 자판기처럼 생긴 네프론에 투입하면 컴퓨터 비전(이미지센싱이라 불리기도 한다) 인공지능이 해당 물품을 인식해 분류한다. 폐기물을 모아온 시민들에게는 인센티브로 일정 금액을 지불한다. 컴퓨터 비전 인공지능은 사람의 눈처럼 찍힌 화상을 인지하고 분석하는 역할을 한다. 차이가 좀 있긴 하지만 큰 틀에서는 자율주행에도 사용되는 기술이다.

네프론에 모아진 폐기물들은 수퍼카를 활용한 자체 물류시스템을 통해 수퍼빈 순환자원 창고로 운반된다. 쓰레기들을 품목별로 구분해 운반하기 때문에 추가 오염을 막고 고품질 재활용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선별해야 했던 쓰레기 선별장에서도 인공지능은 활용될 수 있다. 에이트테크는 2022년 생활폐기물 자료를 학습한 인공지능 폐기물 선별 로봇 ‘에이트론’을 선보였다.

쓰레기들이 잔뜩 쌓여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위를 사람의 손 대신 로봇 팔이 나와 골라낸다.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객체 인식(Object Detection) 기술’과 ‘객체 분석(Object Analysis)기술’ 등을 활용해 페트 유리병 캔 등 재활용품을 분리한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 대응 능력 향상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은 새로운 자원순환 시장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냄새나고 더러운 존재로만 여겨졌던 쓰레기가 인공지능을 통해 새로운 문화로 재탄생 중이다.

◆초거대 인공지능의 등장 등 빠른 속도로 신기술 개발 = 다양한 분야로 활용 폭이 넓어지는 만큼 전세계적으로 관련 기술도 빠르게 진화 중이다. 특히 2020년대 들어서면서 초거대 인공지능 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초거대 인공지능 모델은 대용량 연산 기반시설을 바탕으로 방대한 자료들을 학습해 인간처럼 종합적인 인지·판단·추론이 가능한 모델을 말한다.

미국 민간 연구단체인 ‘에포크(EPOCH) AI’에 따르면, 2020~2023년 초거대 인공지능 모델 144개가 출시됐다. 초거대 인공지능 모델을 가장 많이 개발한 국가는 미국이다. 이어 △중국 42건 △한국 11건 △프랑스 6건 △영국 5건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국제 사회에서 우리나라 인공지능 역량이 차지하는 수준은 높은 편이 아니다. 영국의 두뇌 집단인 ‘토터스 미디어(Tortoise Media)’가 개발한 국가별 인공지능 역량 평가 지표인 ‘글로벌 인공지능 지수(Global AI Index) 2024’에서 우리나라는 27.26점으로 6위를 차지했다.

1위인 미국 100점과 비교했을 때 격차가 매우 큰 상황이다. 이 지수는 83개국을 대상으로 △인재 △연구개발 △운영 환경 △상업 생태계 △정부 전략 등을 평가한 결과다.

국회미래연구원의 보고서 ‘초거대 인공지능 등장 이후 인공지능 정책 변화의 특징과 전망’에 따르면, 초거대 인공지능 모델의 등장으로 세계 각국의 인공지능 정책이 ‘단순 진흥’에서 ‘진흥과 규제의 균형’으로 변화 중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위험 수준에 따라 인공지능을 분류하고 전면적인 규제를 하는 포괄적이고 강력한 법적 규제를 도입했다. 미국은 포괄적인 규제 대신 행정명령을 통해 인공지능의 혁신은 촉진하되 국가안보나 안전 등 핵심 우려 사항에만 선별적으로 규제하는 유연한 접근을 채택했다.

중국의 경우 EU처럼 포괄적으로 규제하지 않고 생성형 인공지능이나 인공지능 기반 첨단 조작 기술(딥페이크) 등 새로운 쟁점이 등장할 때마다 개별 규칙을 신속하게 만드는 방식을 택했다. 영국은 EU의 강력한 규제와는 반대로 인공지능 혁신을 저해하지 않도록 기존 규제기관들이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응하는 친혁신적 접근방식을 추구한다.

국회미래연구원의 보고서 ‘초거대 인공지능 등장 이후 인공지능 정책 변화의 특징과 전망’에서는 EU처럼 강한 규제만이 아닌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위험분류 체계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22대 국회에서 인공지능 관련 법안 11개가 새롭게 발의돼 논의 중인만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연계해 상승효과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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