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인종청소 대량학살 멈춰야”
아랍·이슬람 정상들 한목소리 규탄 … 이스라엘 제재·즉각 휴전 촉구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11일(현지시간)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아랍연맹(AL)·이슬람협력기구(OIC) 공동 정상회의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레바논에서 벌이는 군사작전을 대량학살로 규정한 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의 우리 형제들에 대한 행동을 즉각 멈춰야 한다”고 밝혔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사우디는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형제들이 현재 이스라엘의 침략에 따른 비참한 인도주의적 현실을 극복하는 것을 지지한다”면서 “이란의 주권을 존중하며 그 영토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정상회의에서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사람이 살 수 없게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고, 요르단의 압둘라 2세 국왕은 ‘두 국가 해법’이 평화를 위한 유일한 해법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등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학살을 자행해 이제까지 팔레스타인 주민 5만명이 숨졌고 이 가운데 70%가 어린이와 여성”이라면서 “우리는 네타냐후 행정부가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한 대가를 치르도록 할 실현가능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실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스라엘은 인도적 구호품이 가자에 도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 구호품이 이집트에 수개월째 묶여 있다”며 “서방 몇 나라가 이스라엘에 온갖 지원을 주는 가운데 이슬람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지원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이스라엘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기한 소송에 가능한 한 많은 국가가 동참하도록 독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하마드 레자 아레프 이란 수석부통령은 “미국 행정부는 시온주의자 정권(이스라엘)에 대한 주요한 지원자”라면서 내년 1월 출범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향해 “가자지구와 레바논의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전쟁을 즉시 종식하겠다고 약속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수장 야히야 신와르, 레바논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 등 친이란 무장세력 ‘저항의 축’ 수뇌부가 잇따라 살해된 것을 두고 이스라엘을 비난하며 “표적 살인은 불법 행위이자 조직적 테러에 불과하다”고 언급했다.
지난해 11월 같은 장소에서 열린 특별정상회의에 이어 1년 만에 모인 AL·OIC 회원국 정상들은 이날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금수조치와 함께 유엔 회원국 자격 정지, 각종 범죄행위에 대한 조사와 처벌을 촉구하는 내용 등을 담은 38개 항목의 폐막 성명을 채택했다.
정상들은 성명에서 “이스라엘 점령군이 가자 지구에서 대량 학살 범죄, 즉 대량 무덤, 고문 범죄, 현장 처형, 강제 실종, 약탈, 인종 청소 등의 맥락에서 저지른 끔찍하고 충격적인 범죄에 대해 가장 강력한 용어로 비난한다”면서 “특히 지난 몇 주 동안 가자 지구 북부에서 자행된 범죄를 조사하기 위해 독립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국제 조사 위원회를 구성하고, 가해자들을 책임지게 하고 처벌을 피하지 못하도록 증거가 사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심각한 조치를 취할 것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한 정상들은 가자지구 뿐만 아니라 레바논, 시리아에서 벌인 이스라엘의 공격을 강력히 비난하고 즉각적인 휴전과 함께 1967년 이후 점령한 아랍 영토에서 철수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이번 정상회의는 지난 5일 치러진 미국 대선 이후 열렸다는 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에 대한 중동권의 공통된 메시지라고도 볼 수 있다. 아울러 1년 전 회의에서 이스라엘을 규탄하면서도 징벌적 경제 제재나 정치적 조처는 요구하지 않았던 정상들이 이번에는 다양한 조처에 합의한 것은 그만큼 사안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