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리스크에 경제부처 비상체제…경기지표도 ‘경고등’
매주 관계부처 장관 간담회 … 재경관 등에 ‘아웃리치’ 강조
고물가에 내수부진 장기화 … 소매판매 10분기 연속 하락세
법인파산신청·대출 급증 … 사업자대출 연체액만 2조6000억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우리 정부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특히 경제부처들은 연일 회의와 간담회를 여는 등 비상체제에 돌입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1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일 경제·안보 점검회의를 열고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컨트롤 타워로 하는 금융·통상·산업 3대 분야 회의체를 즉시 가동할 것을 주문했다.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대응조치다.
문제는 내수나 내년 경기전망이 밝지 않은 상황에서 대외불확실성까지 커졌다는 점이다. 내수와 직결된 소매판매는 10분기 연속 하락세다. 고금리·고물가 여파로 법인파산이 늘고 자영업자는 최대 불황에 직면했다는 분석이다.
◆다급해진 경제부처 = 앞서 트럼프 당선이 유력해진 지난 7일 정부는 최 부총리 주재로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대외경제장관회의를 개최했다. 이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인 8일에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참석하는 거시경제금융회의(F4)를 개최하고 변동성이 커진 금융·외환시장에 관계기관 24시간 합동점검체계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최 부총리는 전날에도 대외경제자문회의를 열고 전문가들과 신정부 공약과 정책을 분석하고 경제 영향을 점검했다. 정부의 속내는 복잡하다. 트럼프가 공약한 보편적 기본관세나 공급망 블록화 등이 현실화되면 우리 경제에도 타격이 불가피해서다.
◆산업통상 분야에 직격탄 = 직접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산업·통상 분야도 비상이 걸렸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7일 경제단체 유관기관과 함께 글로벌 통상전략회의를 열어 의견수렴을 진행했다. 산업부는 지난 8일 주요 대미 투자 기업 간담회를 개최한 데 이어 이번 주에도 자동차·배터리 등 업종별 릴레이 간담회를 열고 업계와 소통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미국의 차기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매주 기재부를 필두로 외교부, 산업부, 국무조정실 등 관계 부처 장관 간담회를 개최해 미국 신정부 출범과 관련한 정보를 공유하고, 정부 차원의 대응 방향을 조율할 방침이다. 기재부는 해외에 주재하고 있는 재정경제금융관(재경관)들에게 정책 변화 동향 파악과 ‘아웃리치’(적극적 소통·접촉 활동)를 주문했다.
◆내수지표도 안좋은데 = 트럼프 당선으로 대외불확실성이 커진 것만 문제가 아니다. 내부적으론 경제지표 곳곳에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특히 내수와 자영업자, 가계부채 상황이 좋지 않다. 통계청의 ‘3분기 지역경제동향’을 보면, 전국 17개 시·도의 전국 소매판매는 지난해 같은 분기보다 1.9% 감소했다. 2022년 2분기(-0.2%) 이후 10분기 연속 감소세다. 10분기 연속 소매판매 감소는 1995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처음이다.
경기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인 광공업생산지수 증감률도 올 1분기 5.9%에서 2분기 4.8%로 내려앉은 후 3분기에는 2.5%에 그쳤다.
수출 지표도 밝지 않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0%대 성장에서 올 1분기 ‘깜짝 성장(1.3%)’을 이끈 수출은 3분기 0.4% 감소세로 돌아섰다.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 한국수출입은행의 4분기 수출선행지수(2020년=100)를 보면 121.0으로 전년 동기보다 2.8p, 전기와 비교해서는 3.1p 각각 하락을 추산하고 있다.
◆법인 파산신청 19% 급증 = 이런 경기상황은 법인 파산신청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1~9월 법인파산 신청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 증가했다. 10월 중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총 6조6000억원 증가하는 등 전월 증가폭(5조3000억원)보다 급증했다.
특히 자영업은 역대 최대 불황이다. 한국은행의 ‘업종별 개인사업자 대출 현황’을 보면 올해 2분기 말 국내은행의 전체 사업자대출 연체액은 2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 분기 대비 1500억원이 증가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9년3개월 만에 역대 최대 증가폭이다. 자영업자 휴폐업 건수도 역대급으로 늘어났다. 국세청 통계를 보면 지난해 폐업 신고한 사업자는 98만6487명이다. 전년보다 11만9195명 급증했다.
고용 상황도 덩달아 좋지 않다. 지난달 고용보험 가입자 증가율도 1%대에 그쳤다. 구직급여 신규 신청자도 8만9000명으로 10월 기준 역대 최대다.2022년 9월 이후 26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한 29세 이하 청년층 가입자는 전년보다 10만7000명 줄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 경제 잠재성장률을 2.0%로 하향조정했다. 지난 2022년 2.3%에서 더 추락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