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격화에 ‘의무공개매수’ 도입 힘 받는다
소액주주 보호·약탈적 인수합병 예방
정부안 ‘50%+1주’ vs 야당안 ‘100%’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격화로 소액주주 보호와 약탈적 M&A(인수합병) 예방을 위한 ‘의무공개매수’ 제도 도입 논의가 활발해졌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유야무야 넘어간 의무공개매수제도 관련 입법 절차가 곧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 방안을 둘러싸고 정부안과 야당안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지분 인수자가 경영권 프리미엄이 반영된 인수 가격으로 최대 50%+1주를 매수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인수자의 자금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를 반영한 방안이다. 반면 야당안은 인수자가 남은 주식 모두를 매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 주주의 권익 보호에 중점을 둔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인수비용 완화와 주주권익보호 정책 딜레마 = 12일 고려대학교 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오는 15일 오후 스웨덴 증권위원회 롤프 스코그(Rolf Skog) 사무국장을 초청해 ‘유럽의 의무공개매수제도 운용 경험과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을 주제로 온라인 줌(Zoom (https://aicg.org/conference/2024_dss_program.html) 세미나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유럽의 의무공개매수제도 운용 경험은 우리가 현재 당면한 인수 비용 완화와 주주 권익 보호 사이의 정책 딜레마를 해결하고, 각종 회피 거래 차단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도 매우 귀중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의무공개매수제도는 M&A를 목적으로 인수기업이 피인수기업의 주식을 매수할 때 정해진 비율 이상의 주식을 공개매수하도록 하는 제도로 무분별한 계열사 확장을 막고 일반주주 보호를 위한 목적으로 한다. 이때 일반 주주의 지분도 지배주주의 것과 동일한 조건으로 함께 매수해야 한다.
그동안 국내 M&A 거래에서는 인수대상기업의 지분을 취득해 경영권을 획득하는 주식양수도 방식의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지분 거래 시 발생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취할 때 일반 주주들은 배제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일례로 2016년 KB금융지주가 현대증권의 22.56%의 지분을 매입하며 지배주주에게는 주당 2만3182원을 지급했지만 소액주주에게는 주당 6737원의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했다. 미래에셋증권도 대우증권을 인수할 때 43%의 지분을 매입하면서 지배주주에게 주당 1만6518원을 지급했지만 소액주주에게는 7999원에 불과한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한 바 있다.
2017년에 IMM프라이빗에쿼티(IMM PE)가 한샘의 지분을 인수할 때 한샘의 2대 주주인 헤지펀드가 인수 과정에서 한샘 지배주주의 지분에 대해서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보장해 시가의 두 배에 달하는 가격에 매수하고 일반 주주의 지분은 하나도 매수하지 않아 주주평등원칙에 어긋난다는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유럽과 아시아 주요 국가 제도 정착 = 유럽과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는 의무공개매수제도가 도입되어 이미 뿌리내린 상태다.
유럽연합(EU)은 기업의 지배권을 취득한 인수자가 주식을 추가 취득하는 경우 잔여주주를 대상으로 일정기간 매수청약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EU 회원국들은 이 같은 공개매수지침(구체적 기준은 각국에 위임)을 대부분 채택하고 있다. 네덜란드와 독일의 경우 기업 지분 30% 이상 취득하는 인수자는 잔여주주 전부에게 공개매수청약을 해야 하고, 이탈리아는 25% 이상, 프랑스는 30% 이상이지만 추가 취득 규모에 따라 잔여 주주 전부에게 공개매수청약을 하는 의무가 발생한다.
의무공개매수제도를 1972년 처음 도입한 영국은 30% 이상 주식 취득 또는 30% 이상 50% 미만 주식 보유자가 주식을 추가 취득하는 경우 잔여주주 모두에게 매수청약을 해서 '50%+1주' 보유시까지 공개매수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도 일정 규모 이상의 지분을 취득하는 경우 잔여주식에 대한 공개매수를 의무화하고 있다. 일본은 기업 지분 1/3을 초과해 주식을 취득하는 경우 해당 거래는 공개매수로 진행해야 하고 2/3를 초과해 주식을 취득하는 경우 잔여주주 모두에게 매수청약을 해야 한다. 홍콩과 싱가포르에서도 유럽 국가들과 유사하게 일정 비율 이상의 지분을 취득하거나 보유한 주주에 대해 기간 내 추가 취득하는 경우 잔여주주 전부를 대상으로 공개매수 청약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의무공개매수제도를 시행하고 있지 않지만 소송을 통해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어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우리나라와는 차이가 크다.
◆27년 만에 제도 부활할까 = 금융투자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의무공개매수제도 재도입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 마련 작업에 착수했다. 올해 관련 법안이 통과될 경우 27년 만에 제도가 부활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1997년 1월부터 1998년 2월까지 적대적 기업인수에 대한 지배권 보호라는 목적으로 의무공개매수제도를 시행했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인수합병을 신속히 추진하기 위해 1998년 2월 말 제도를 폐지했다. 2000년 중반부터 외국자본에 의한 경영권 위협으로 인해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 문제가 대두되면서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을 꾸준히 검토해 왔고 금융위원회는 2022년 12월 의무공개매수제도를 재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정부안에 따르면 인수자는 전체주식 중 50% + 1주만 매수해도 된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기업 인M&A 과정에서 ‘50%+1주’ 방식 의무공개매수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M&A시장 활성화와 소액주주 보호라는 두 가지 측면, 회사의 상장 폐지 문제 등을 판단할 때 주식의 과반수 이상을 의무 공개 매수하는 방안이 균형점에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반면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상장사가 인수합병(M&A)를 목적으로 피인수 기업 주식을 사들일 때, 매수한 뒤 남은 주식도 모두 의무적으로 공개 매수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의무공개매수제도 제의 물량을 100%로 확대해 일반 주주에게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우찬 고려대학교 교수는 “1980~2022년 기간 동안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도입한 41개국의 지배권 인수거래 1421건을 모두 살펴본 결과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 이후 지배권 프리미엄이 20%p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의무공개매수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인수 비용이 과도하게 증가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줘, 인수 비용 증가를 우려해 의무공개매수 물량을 50%+1주로 제한한 정부와 여당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또한 “의무공개매수제도의 대상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일반주주 주식 100%로 확대해야한다”며 “총발행주식 100%를 인수하는 관행을 확립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