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2심 재판부 “부정행위 기준 분명히 해야”
“범위 넓고 불분명 … 시세조종도 수치로 입증해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항소심 재판부가 11일 검찰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피고인이 저지른 부정행위가 무엇인지 기준을 명확히 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재판부는 이날 공판을 끝으로 오는 25일 결심 공판을 열고, 검찰의 구형과 피고인의 최후 진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백강진 부장판사)는 이날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 행위·시세조종)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 등 14명의 항소심 4차 공판기일을 열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배경과 목적 등에 관한 심리를 이어갔다.
검찰은 이날 재판에서 “삼성측이 합병 발표 직후 삼성물산이 저평가 됐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잇따르자 이 회장 주도로 대응 전략을 수립했다”며 “대응 전략에는 부정행위에 대한 포괄적 계획이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검찰은 합병을 위한 삼성바이오에피스 상장 홍보, 국민연금 의결권 확보 등과 관련해 각종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했다.
이에 재판부는 “부정행위라는 건 범위가 너무 넓고, 대법원 기준도 분명하지 않다”며 “원심이나 변호인이 다투는 부정성·불법성·악질성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내부 행정 규정을 위반한 행위까지 모두 개별 부정행위로 처벌할 수 있느냐”며 “개별행위까지 모두 유죄를 주장하는 거라면 모든 혐의가 전부 그 문턱을 넘는다는 것을 종합변론에서 주장해달라”고 말했다.
또 재판부는 양사 합병 당시 시세조종이 있었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서도 “(시세조종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수치를 통계에 의해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앞서 이 회장은 최소비용으로 경영권을 승계하고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정에 개입한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됐다. 합병 과정에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추진한 부정거래, 시세조종, 회계부정 등에 관여한 혐의도 받는다.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에 가담한 혐의도 있다.
1심 법원은 지난 2월 이 회장의 19개 혐의 모두에 무죄를 선고했다. 1심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두 회사 합병이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면서 “합병 비율이 불공정해 삼성물산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했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