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100억 이상 대부업체 264개…신규 신용대출 37곳에 그쳐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신규 영업활동 사실상 중단
대부업체에서도 밀려난 취약계층은 불법사금융으로
자금공급 필요성 커졌는데, 정부는 그동안 단속 강조
김병환 금융위원장 “금융권 민간서민금융 보다 확대”
대부업계에서 신규 신용대출을 해주는 업체가 37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취약계층들이 급전을 빌릴 수 있는 제도권 통로가 사실상 막혔다. 자산 100억원 이상 등록 대부업체는 264곳, 100억원 미만은 2460곳 등 법인 대부업체가 2724개인 점을 고려하면 신규 신용대출을 해주는 곳은 1.35%에 불과했다.
12일 서민금융연구원이 NICE평가정보에서 제출받은 ‘대부업 월별 신용대출 신규취급액’ 자료에 따르면 9월말 기준 신규 대출액은 1455억원, 대출 기관은 37곳, 대출잔액은 8조594억원으로 나타났다.
법정최고금리가 2021년 7월부터 연 20%로 낮아지면서 수익성이 악화된 대부업체들이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2022년 1월 신규 취급액은 4584억원에서 같은 해 5월 5415억원으로 늘었지만 석달 만인 8월 3571억원으로 줄었고, 10월과 11월에 각각 2281억원, 1184억원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지난해 1월 655억원까지 줄었지만 이후 조금씩 늘어나서 올해는 1500억원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불과 2년 전과 비교하면 신규 취급액이 30%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신규 신용대출을 해주는 대부업체도 2022년 7월 64곳에서 올해 9월 37곳으로 급감했다.
신규 신용대출이 공급되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업체의 신용대출 잔액은 갈수록 줄고 있다. 기존 대출을 회수하는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신용대출 잔액은 2022년 7월 10조3786억원을 기록한 이후 매월 감소하고 있다. 2022년 12월 9조9611억원으로 10조원이 무너졌고, 지난해 10월 8조9436억원으로 10개월 만에 1조원이 줄었다. 9월 8조594억원으로 간신히 8조원을 넘겼지만 조만간 7조원대로 감소할 전망이다.
대부업체들도 연체율이 올라가면서 신용대출 보다는 담보대출 위주의 영업을 확대하고 있다. 또 저신용자 보다는 중신용자 중심으로 대출을 해주고 있다.
정부는 취약계층의 불법사금융 이동을 막기 위해 정책서민금융을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올해 공급목표액은 오히려 감소했다. 금융위원회가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정책서민금융상품 공급목표는 5조9800억원으로 전년(6조8300억원) 대비 8500억원(12.44%) 줄었다.
급전이 필요한 취약계층들을 위해 시행하고 있는 소액생계비대출의 경우 정부 예산이 아닌 은행권 기부금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금융위가 내년 1000억원의 예산을 신청했지만 기획재정부에서 받아들이지 않았고, 지난해에도 1500억원의 예산을 신청했지만 삭감됐다.
서민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대부업체에서 불법사금융으로 이동한 저신용자는 최대 9만1000명으로 추정된다.
불법사금융 이용자의 피해가 커지면서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주로 불법사금융업자에 대한 단속과 처벌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2일 “불법 채권 추심행위는 서민의 삶을 무너뜨리는 악질적 범죄”라며 “검찰과 검찰은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불법 채권추심을 뿌리 뽑고 금융당국은 서민금융지원 정책을 전면 재점검해 서민들이 불법 사채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30대 여성이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다 어린 딸을 남겨두고 숨진 사건을 듣고 윤 대통령이 이 같은 지시를 내린 것이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13일 오전 서울시 공정거래종합상담센터에서 열린 ‘불법사금융 근절을 위한 민생현장 점검회의’에 참석해 “대부업체 등록요건 강화로 ‘무늬만 대부업체인’ 불법사금융업자는 퇴출되고 정상적으로 영업 중인 대부업체는 유예기간을 부여해 등록요건을 충족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량하고 건전한 대부업자 위주로 시장질서가 개편되면 대부업에 대한 신뢰가 향상돼 서민들도 보다 안심하고 대부업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불법사금융 근절을 위해서는 대부업법 개정을 통한 제도적 개선 뿐만 아니라 ‘점검과 단속’도 매우 중요하다”며 “대다수 대부업체가 지자체 등록 대상인 만큼 서울시를 비롯한 각 지자체에 대부업체의 관리・감독을 보다 철저히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금융당국은 근원적으로 서민자금공급에 사각지대가 없도록 서민금융지원 정책을 전면 재점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안용섭 서민금융연구원장은 “정책서민금융을 이용할 수 있는 서민들도 일정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며 “생계비 등 급전이 필요한 취약계층들은 정책서민금융 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취약계층들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대부업체와 관련된 지원정책 등 민간 시장의 활성화와 법정 최고금리를 시장 금리와 연동시키는 ‘탄력 적용 방안’ 등에 대한 검토 필요성도 지적했다.
이날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간부 간담회에서 “서민취약계층이 필요한 자금이 충분히 공급될 수 있도록 내년도 예산확보를 위해서도 적극 노력하는 한편, 불법사금융에 노출된 취약계층에 대해 금융·고용·복지 제도를 연계한 복합적인 지원을 더욱 강화하고 정책서민금융 뿐만 아니라, 금융권의 민간서민금융을 보다 확대하는 방안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제가 직접 주관이 돼 불법사금융을 뿌리 뽑고 실효성 있는 서민금융공급이 이뤄지도록 정책과 제도를 조속히 개선해 나가는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