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공간정비사업으로 청년 축산농 폐업 위기
지역민원에 밀려 이전 강요
다른곳 축사제한, 결국 폐업
농촌공간정비사업으로 청년 양돈농가가 폐업 위기에 내몰리자 축산단체가 구명에 나섰다. 14일 한돈협회 등에 따르면 충북 증평군의 한 양돈농장이 농촌공간정비사업으로 폐업 위기에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농장은 2020년 김모씨가 자녀들을 위해 12억원에 매입했다. 이후 3억원을 들여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노후시설을 보수했고, 2022년에는 5억원을 투자해 악취저감시설까지 도입했다.
하지만 지역민원에 농촌공간정비사업 대상이 됐고 김씨는 지역민 회의 압박 등을 사업신청에 서명했다. 이 농장에서 일하는 아들 김씨(31)는 6개월 후에는 키우던 1000마리 돼지를 팔고 나가야 할 상황이다.
충북 괴산군 자우농장 이모(39)씨 상황도 마찬가지다. 부모님을 돕기 위해 2017년 양돈업에 뛰어들었지만 농촌공간정비사업 3차 대상에 선정되며 막막한 상황에 처했다. 이씨는 “500두 규모 작은 톱밥 돈사지만 8대방역시설과 폐사축처리기, 악취저감시설 모두 완비했는데 당장 나가라고 한다. 이전하고 싶어도 전국이 거의 가축사육제한 지역인데 도대체 어디로 가란 말인가”라고 호소했다.
정부가 농촌 마을 환경을 개선한다며 2021년부터 시작한 ‘농촌공간정비사업’이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 사업은 본래 낡은 건물이나 빈집을 정비해 주민들을 위한 공원과 쉼터를 만드는 취지로 시작했지만 축산농가들까지 마을을 떠나야 하는 상황으로 번지고 있다.
법률상 축사는 철거 대상이 아니지만 주민들의 요구로 농장 이전을 강요받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축산농장을 이전할 곳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지역에서 가축 사육을 제한하고 있어 결국 농가들이 어쩔 수 없이 폐업을 선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축산농가들은 “농촌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좋지만 수십년간 성실히 일해 온 농가들의 생계도 고려해야 한다”며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연규원 대한한돈협회 증평지부장은 “2003년만 해도 우리 증평지부에 48개 회원농가가 있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겨우 10개 농가만이 남았다. 이마저도 이번 농촌공간정비사업으로 절반이 더 없어질 판”이라며 “이대로 농촌공간정비사업이 전국적으로 확대된다면 한돈농가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한돈협회는 농림축산식품부에 △이전부지 확보 의무화 △2년간 영업손실 보상 △시설 실거래가 반영 △폐업시 현실적인 보상기준 마련 등을 요구하는 건의문을 제출했다. 특히 악취저감시설을 설치해 정상 운영 중인 농가는 정비대상에서 제외하고 이미 사업에 선정된 농가에 대해 개선된 제도의 소급적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