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민간이 하면 담합, 공정위는 자율규제?

2024-11-19 13:00:06 게재

지난 7월 23일부터 5개월간 12차례 진행된 ‘배달앱 상생협의’가 결국 만장일치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다만 배달앱 중개수수료를 현행 9.8%보다 낮춰 거래액에 따라 2.0~7.8% 요율을 차등 적용하겠다고 일부 참여단체가 합의했다. 배달앱 1, 2위 업체인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는 내달부터 이를 적용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주로 식당으로 구성된 가맹점주협의회와 외식산업협회 등은 합의안이 미온적이라며 일찌감치 퇴장한 상황이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 제정을 백지화하고 자율규제로 정책방향을 선회한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오로지 ‘이윤’을 좇아다니는 시장의 반칙을 ‘자율규제’로 잡겠다는 구상 자체가 무리수란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배달음식을 뜻하는 ‘온라인쇼핑몰 음식서비스’의 거래액은 26조 4326억원을 돌파했다. 배달시장은 2010년 배달앱이 처음 출시된 후 꾸준히 성장하다 코로나19로 외출이 제한되며 폭발적으로 컸다. 그러나 이 성장의 과실은 몇몇 배달앱이 독점했다. 수많은 식당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더 어려워졌다.

이 과정에서 ‘플랫폼 독과점 폐해’도 뚜렷해졌다. 배달앱들은 처음엔 시장을 잡기 위해 ‘무료배달·수수료’를 남발하며 경쟁했다. 그러나 시장이 2~3개 독과점체제로 정착되자 수수료나 광고료를 멋대로 올리고 입점식당에 ‘최혜대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온플법이 있었다면 법대로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자율규제정책을 내세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소비자와 자영업자 원성이 커지자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상생협의체’ 카드를 꺼냈다. 공정위 중재로 배달앱과 식당들이 모여 수수료 인하 문제를 협의해보자는 취지였다. 5개월간 난상토론 끝에 만장일치 합의에는 실패했지만 어쨌건 ‘빅2 배달앱의 수수료 일부 인하’라는 결론을 낸 셈이다.

하지만 공정위의 이번 ‘배달수수료 인하 중재 노력’이 합법과 위법을 넘나든 위험한 줄타기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공정위는 통신3사의 담합조사 제재를 앞두고 있다. SK텔레콤과 KT·LG유플러스가 소비자에게 주는 판매장려금을 담합했다는 사건이다. 통신 3사는 2015~2022년 번호이동 실적을 공유하며 판매장려금 수준을 맞추는 방식으로 담합한 혐의를 받는다. 하지만 통신3사들은 ‘담합이 아니라 방송통신위원회의 행정지도를 따랐을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공정위와 달리 과기정통부도 ‘담합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공정위는 통신3사가 방통위 행정지도에 따라 판매장려금을 책정한 것을 담합으로 보면서도, 정작 자신은 ‘배달앱의 수수료 담합’을 주도하고 있다는 비판에 할 말이 없게 된 셈이다.

성홍식 재정금융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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