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조선산업 경쟁력 좌우할 두가지 과제

2024-11-19 13:00:12 게재

미국의 차기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는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우리 조선산업을 콕 집어 언급하며 협조를 부탁했다. 대한민국은 조선산업에 다가온 기회를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살릴 수 있을까.

대한민국 해군의 제1호 국산 전투함은 1980년대 초반 건조됐던 울산급 호위함 9척이다. 1975년 시작한 해군의 국산 함정 건조 사업은 1970년 발표된 자주국방 8개년 계획에서 출발했다.

베트남전쟁의 수렁 속에서 미국은 닉슨독트린을 발표하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군사적 개입을 중단하려던 때였다. 더 이상 미국 함정을 물려받아 쓰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순간, 국산 전투함의 시대가 개막했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생긴 지 2년 남짓 된 신생 조선사였고 함정 건조 경험도 없었다. 하지만 사업 시작 5년 만에 울산함을 세상에 내놓았고, 현재는 8200톤급 이지스 구축함 정조대왕함을 진수하며 세계 최고의 함정 플랫폼 기술을 뽐내고 있다.

지금 조선산업 도약을 위한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아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정부가 해야 할 두가지 시급한 과제를 들어본다.

기자재 공급망과 고급설계인력 확보 시급

첫째, 조선산업을 뒷받침하는 기자재의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이다. 최근 미국의 필리조선소를 현장에서 둘러본 한화오션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현지의 기자재 공급망이 심각한 수준으로 낙후돼 있다고 한다.

선박 건조에서 제 때 기자재가 준비되고 공급되는 것은 바로 수익성과 직결된다. 조선소에서 시간은 돈이기 때문이다. 동급의 선박을 짓는데 한국은 미국보다 1/3의 시간, 1/3의 가격으로 완성할 수 있다고 한다. 기자재의 적시·적소 공급은 핵심경쟁력 중 하나다. 미국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대형 상선 신조에만 쏠려 있는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생태계를 개선해야 한다.

중·소형 선박에도 대형 선박에 필요한 기자재가 비슷하게 쓰인다. 중·소형 조선사가 함께 공존해야 우리 조선산업에도 크고 넓은 건강한 생태계가 이루어진다. 그래야 기자재 산업도 살고 공급망도 튼실해진다.

둘째, 고급 설계연구인력 확보다. 최근 우리나라 조선사들은 현장인력 부족으로 혼이 나고 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현장인력의 충원은 돈과 법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고급 설계연구인력은 돈을 줘도, 외국인 근로자를 확보하기 위한 법을 풀어줘도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렵다. 20년 이상 나무를 키워 숲을 만들 듯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육성해야 한다.

지금 젊은이들이 공학을 전공하고 싶을까. 의대에 간 친구와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지 않을까.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각자의 일에 충실하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정부에서 너도 나도 기획하는 싸구려 인력양성 사업으로는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고급 과학기술 인력은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특수 직종으로 분류되고 자기가 일한 만큼 수입이 확보되게 해야 한다.

조선산업 지속가능성에 투자 이어가야

현재 대한민국이 누리는 눈부신 발전의 배경에는 60여년 전 꿈과 희망을 제시하는 ‘비저너리’ 역할을 했던 관료들이 있었다. 그런 역할까지는 아니어도 한 나라의 관료라면 국가 발전을 위한 철학은 있어야 한다.

천혜의 조건을 바탕으로 엄청난 고용 효과와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는 조선산업의 지속가능성에 관심과 투자를 이어가야 할 시점이다.

이신형

서울대 교수 조선해양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