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무역적자 막으려 자본통제 택할까
비주류학자 페티스 “무역흑자국 달러자산 매입에 과세” … 라이트하이저 등 트럼프 측근 동조
미국의 무역적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관세는 물론 자본통제조치까지 도입하자는 한 비주류 경제학자의 주장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의 유력 경제고문은 물론 미국 내 많은 정책입안자들도 이 주장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중국 수출품에 대한 60% 관세, 모든 나라들에 대한 최대 20% 관세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중국과 일본 한국 등 무역흑자국들의 달러자산 매입을 막자는 방안까지 도입된다면 글로벌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걷잡을 수 없을 전망이다.
이같은 주장을 펼치는 이는 바로 중국 베이징대 금융학 교수 마이클 페티스다. 월가 금융인 출신의 페티스는 무역불균형의 근본 원인에 대해 주류경제학과 상반된 견해를 갖고 있다. 그는 심지어 무역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기축통화국 역할도 버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력 외신들은 이단아 성격의 페티스가 차기 트럼프행정부의 경제금융 정책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지 주목하고 있다. 18일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와 바이든정부 모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기 드문 경제사상가”라고 평했다. 한달여 앞선 지난달 1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이든정부에서 경제정책을 짜는 일부 인물, 트럼프의 핵심 경제고문 등 열렬한 추종자를 보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아닌, 중국이 보호주의”
WSJ에 따르면 페티스는 월가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와 퍼스트보스턴의 채권부서에서 일하면서 채무불이행에 대한 우려가 페소화 폭락을 촉발한 1994년 멕시코 통화위기 등 신흥경제국으로의 자유로운 자본 유입과 유출의 불안정한 잠재력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2002년 교수직을 맡기 위해 중국에 간 페티스는 몇년 머물다 월가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하지만 중국이라는 나라가 너무 흥미로워서 떠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페티스는 중국이 저축을 장려하고 소비를 억제하면서 생산과 투자를 촉진하는 정책을 통해 세계 최고의 제조업 강국이자 제2 경제대국으로 변모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로 인해 막대한 무역흑자가 발생했고 이는 해외자산, 특히 미국채를 매입하는 데 사용됐다.
그는 WSJ에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운 좋은 미국, 신이시여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우리는 저축을 충분히 하지 않는데, 외국인들은 우리에게 저축을 해줄 만큼 관대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역과 통화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이 관대하지 않다는 것이 매우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페티스는 전세계의 무역 및 투자소득 흑자와 적자가 0이 돼야 하기 때문에 미국이 중국과 다른 흑자경제국의 저축을 흡수하는 한 무역적자를 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저축이 미국자산으로 유입되면 달러가치가 상승한다. 이는 미국이 더 많은 수입을 하도록 부추기고 미국 경쟁업체의 일자리와 수입을 희생시킨다.
대신 이익은 외국 제조업체들에 돌아간다. 그리고 제조업 부문의 약세를 상쇄하기 위해 미국은 대규모 지출을 유지해야 하고 그러려면 더 많은 차입을 해야 한다. 그 결과 막대한 재정적자와 주기적인 금융버블이 발생한다. 그는 “미국과 같은 적자국이 아니라 중국과 같은 흑자국이 진정한 보호무역주의국가”라고 말했다.
WP에 따르면 페티스의 주장은 오래됐다. 2013년 저서 ‘위대한 재균형(The Great Rebalancing)’에서 자신의 주장을 처음 소개했다. 그러다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하고 중국의 무역흑자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이 극에 달하면서 페티스의 주장이 새롭게 조명 받는 상황이다.
무역에 대한 고전적인 견해는 국가가 수입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상품을 수출해 돈을 번다는 것이다. 19세기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르도에 따르면 각 국가가 다른 국가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상품을 특화하면 모든 무역국가가 더 잘살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무역시스템은 그런 식으로 운영되지 않는다고 페티스는 지적한다. 중국과 같은 무역흑자국은 국내 수요를 훨씬 초과하는 많은 품목의 생산에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소비자들이 소득을 소비하기보다 저축하도록 강제한다.
올해 전체 상품무역흑자 규모가 1조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은 가계에서 제조업체로 자원을 효과적으로 이동시키는 여러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은 금리를 낮게 유지해 저축자들이 이자를 얻기 어렵게 만들고, 임금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독립적인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금지한다. 한편 제조업체에 저리의 대출을 제공하고 여러 산업과 기업에 토지와 에너지를 할인된 가격으로 공급한다.
페티스는 “그 결과 중국이 미국으로 실업을 수출하는 효과가 난다”며 “이에 따라 미국과 같은 적자 국가는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가계 또는 정부부채를 늘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국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지만 독일과 일본 한국 싱가포르 대만 등 다른 여러 국가도 일반적으로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와 영국 호주도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WP에 따르면 그는 “달러는 외국 중앙은행과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글로벌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미국은 무역적자 국가 중 특히나 더 큰 부담을 안고 있다”며 “미국이 해야 할 일은 기축통화국 역할을 그만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페티스 주장, 공화 민주 모두에 공감대
멕시코와 한국 정부 재정고문을 지낸 페티스는 트럼프와 바이든정부 모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기 드문 경제사상가다. 트럼프 1기 무역대표로서, 2기 행정부에도 합류할 것으로 예상되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는 2023년 저서 ‘공짜 무역은 없다(No Trade Is Free)’에서 페티스를 지지하며 무역정책을 논의한 바 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미국의 무역적자를 낮은 저축률 탓으로 돌리는 것에 대해 라이트하이저는 “이는 인과관계를 거꾸로 뒤집는 것이다. 저축률이 무역적자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무역적자가 저축률을 주도하는 것”이라며 “페티스는 이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인물로 많은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WSJ에 따르면 페티스는 라이트하이저가 X(옛 트위터)에서 팔로우하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한 명으로, 두 사람은 때때로 전화로 대화를 나눈다.
라이트하이저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무역적자를 줄일 수 있는 3가지 방법으로 △수입업자가 상품을 미국내로 들여오기 전 정부인증서를 구매하도록 요구하거나 △미국내 투자에 수수료를 부과하거나 △수입관세를 부과하는 안을 제시했다. 페티스는 ‘자유시장과 낮은 세금에서 노동자와 재산업화로 우선순위를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통령 당선자 JD 밴스 등 트럼프 측근들과 가까운 싱크탱크 ‘아메리칸 컴퍼스’의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일부 영향력 있는 민주당원들도 페티스의 팬이다. 바이든정부 무역대사인 캐서린 타이는 최근 인터뷰에서 “페티스는 이례적이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는 일종의 객관성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주류학계 “그럴듯한 주장이지만…”
많은 주류 경제학자들은 세계경제의 위기를 미국과 같은 적자국이 아닌 중국 같은 흑자국 탓으로 돌리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미국과 다른 정부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자본유입에 세금을 부과하면 금리가 상승하고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미국외교협회 브래드 세서 선임연구원은 “페티스의 제안이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며 “외국자본의 유입을 억제하면 미국 주식의 가치가 떨어지고 주택 구매자와 연방정부의 차입비용이 상승해 잠재적으로 미국경제가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게이브칼 드라고노믹스의 중국 연구 책임자인 앤드류 뱃슨은 “페티스가 중국을 ‘가계소비 억압에 기반한 경제’로 묘사한 것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힘든 기괴한 비유”라고 말했다. 뱃슨은 “1980년대 이후 중국의 가계소비 증가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크고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인 피에르 올리비에 구린차스 등 3명은 최근 블로그 게시물에서 “중국의 산업정책이 아니라 중국과 미국의 국내 경제상황이 무역결과를 크게 좌우한다”며 “양국의 대외 흑자와 적자는 대부분 자국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2015~2018년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지낸 UC버클리대 경제학 교수인 모리스 옵스펠트는 “페티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그는 미국경제의 위기가 중국이 하고 있는 일 때문이라고 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적자나 미국 제조업 쇠퇴에 대해 중국을 탓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은 정말 복잡하다. 하지만 마이클 페티스에게 세상은 정말 단순하다”고 꼬집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