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남식의 중동 톺아보기
트럼프 귀환을 바라보는 중동의 시각
트럼프 대통령의 복귀를 바라보는 중동 각국의 지도자들은 어떤 심정일까? 지난 4년 동안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정책에 대한 실망과 아쉬움 때문이랄까? 아마 대부분의 리더들은 내심 반색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유럽이나 아시아 또는 중남미 다수의 국가들이 갖는 트럼프 2기에 대한 불안감과 긴장감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주요국 지도자들의 심정을 한명씩 미루어 짐작해보면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네타냐후와 빈살만 에르도안은 반색
누구보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안도의 한숨을 쉴 것으로 보인다. 작년 10월 악몽같은 하마스의 기습을 당한 이후 1년간 버티면서 바랐던 궁극적인 지점이 아마 트럼프의 귀환이었기 때문이다. 기습을 허용한 지도자를 용납하지 않는 이스라엘 정서상 네타냐후 총리는 상황이 종료되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기에 하마스 궤멸 작전을 통해 네타냐후는 공세적 응징을 펼치면서 정치적 생존게임을 유지했다. 이 과정에서 하마스의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 야히야 신와르를 비롯, 헤즈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 등을 차례로 제거하며 조금씩 지지도를 결집시켰다.
실제로 하마스 공격 이후 19% 내외까지 추락했던 지지율은 이제 20% 중후반대까지 올라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0%대 중반까지만 회복하면 큰 어려움 없이 현 정부를 이어나갈 수 있다. 트럼프의 귀환은 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중요한 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1기 당시 네타냐후 총리와 보여주었던 긴밀한 협력과 공조를 기억하는 이스라엘 유권자들이 네타냐후의 책임론에 대해 관대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네타냐후는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 계속 집권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 역시 트럼프의 귀환이 반가울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과의 관계가 무척 나빴기 때문이기도 하고, 트럼프 1기 당시 최초의 방문국이 사우디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 안심이 될 만하다. 자말 카쇼크지 피살 사건의 책임론 공방이 거세지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4년 전 대선국면에서 사우디 왕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인권과 자유의 가치를 내세워 중국을 압박해야 하는 바이든으로서는 중동의 우방국 사우디를 본보기로 길들여야 했다.
바이든은 빈살만 길들이기에 나섰으나 이후 우크라이나전쟁 발발과 함께 상황이 꼬였다.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자 마침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던 백악관은 다급하게 사우디에 증산을 요구했다. 석유수출국기구 국가들 중 증산과 감산을 통해 유가를 조정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진 나라는 사우디가 유일했다.
그러나 선거 국면에서 자신을 비난했던 바이든에게 빈살만 왕세자가 협조할 리 없었다. 오히려 껄끄러운 관계를 노정했고, 증산대신 감산을 결정하면서 미국과 선명하게 맞섰다. 왕세자에게는 인권이나 가치를 이야기하지 않고, 거래의 이익을 중심으로 관계를 맺는 트럼프가 훨씬 편하다. 그동안 소원했던 미-사우디 양자관계에 모처럼 훈풍이 불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들린다.
네타냐후 총리나 빈살만 왕세자만큼은 아니지만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대통령도 바이든 대통령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을 훨씬 더 편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전쟁과 맞물려 나토 회원국이면서도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둘러싼 이견과 러시아 방공시스템 도입 등으로 미국과 긴장 관계였던 에르도안이다.
에르도안은 트럼프와의 개인적 친밀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트럼프 첫 임기 때 양국간 정책적 현안 차이가 적지 않았음에도 개인 성향상 두 사람은 잘 맞았다. 이번 대선 직후 에르도안은 트럼프를 친구라 부르며 열렬한 환영 메시지 발신과 함께 그의 귀환을 축하했다. 다만 우크라이나전쟁과 가자사태에서 미국과 일부 대립하며 조율되지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는 튀르키예에 대한 트럼프정부의 입장이 어떻게 정리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반면 트럼프의 귀환이 부담스러운 이가 있다. 바로 이란의 페제시키안 대통령이다. 올 7월 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공약으로 미국과의 대화를 내걸었다. 보수 일색의 체제내 강경파들을 물리치고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극심한 경제난과 히잡 시위 이후 사회 균열 때문이었다.
개혁파인 페제시키안의 당선은 예상외였지만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미국과의 핵합의 재협상을 기대하던 페제시키안정부 입장에서는 2018년 일방적 합의파기의 주인공인 트럼프와 다시 맞닥뜨리게 된 부담이 크다. 바라던 해리스 후보의 당선이 수포로 돌아간 지금 테헤란은 긴장 수위를 바짝 높인 채 워싱턴발 새로운 파도가 어떻게 밀려들지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트럼프 1기 성과인 아브라함 협정 완성에 무게
그렇다면 트럼프 신정부는 중동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나갈까? 네타냐후 빈살만 에르도안이 기대하듯, 그리고 페제시키안이 실망하는 그 그림대로 정책을 펼쳐나갈까? 아직은 명확하지 않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즉 첫 임기 때 중동정책을 재현하며 그 지점에서 더 나아간 정책 목표를 이루고 싶어할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간명하다. 트럼프 1기의 대외정책 중 적어도 중동정책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아브라함 협정이다. 이스라엘과 아랍 주요 4개국간 평화협정을 중재하고 수교에까지 이르게 한 데에는 트럼프의 공이 컸다. 아브라함 협정의 화룡점정은 사우디와 이스라엘간 수교가 될 것이다. 물론 가자사태로 인해 제동이 걸렸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한번 팔을 걷어붙이고 아브라함 협정을 완성시키려 할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 2018년 예루살렘으로 주(駐)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옮기는 등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었다. 2019년 세기의 협상이라 불린 트럼프판 이팔 평화계획은 팔레스타인이 도저히 받기 힘든 안이었다. 당시 편파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었다. 그러나 가자지구에서 4만명 넘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용인, 이스라엘 편을 들면서도 중립적인 척을 한 바이든보다는 차라리 나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트럼프는 전쟁을 빨리 마무리 짓기 위해 네타냐후의 단기적 공세를 수용할지 모른다. 단기적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장기적으로 더 많은 사상자들의 숫자를 줄였노라 자부할 가능성이 높다.
이란에 대한 압박 계속해 코너에 몰 듯
이란 문제는 어떨까? 트럼프는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반군 및 이라크내 친이란 민병대의 공세를 들어 바이든을 줄곧 비판해왔다. 자기가 2018년에 이란 핵합의를 깨지 않았으면 제재 해제 이후의 자금이 전부 이들에게 흘러들어가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한다. 바이든이 이란과 핵협상을 다시 추진했기에 제재에 균열이 생겨 이란이 역내 혼란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란에 대한 더 높은 강도의 제재 부과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이란은 2018년과 다르다. 경제난이 극심하고 사회적 분열양상은 더 커졌다. 경제 압박이 가중될 경우 체제는 흔들리게 된다. 트럼프는 차제에 이란을 코너로 몰아 체제를 붕괴시키든지 아니면 미국이 원하는 조건을 수용, 항복하고 나오든지 지켜볼 것이다. 페제시키안이 이 혹독한 환경을 어떻게 버텨내며 협상의 계기를 잡아챌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이란 보수 성직자 그룹 및 혁명수비대 등 강경파의 반발로 핵능력 고도화에 나설 우려도 있지만 트럼프는 당분간 이란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개 트럼프를 불가측하고 불확실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적어도 중동문제에 있어서는 예측가능하고 어느 정도 확실해 보인다. 출발점은 1기 임기 때와 변화가 없을 것이다. 다만 훨씬 더 익숙한 전략과 더 거센 태도로 시현하며 궁극적으로 판을 바꾸고 싶어하는 열망은 더 강해져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