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트럼프의 통상압박을 극복하려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세계 각국의 긴장감이 하늘을 찌른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트럼프 후보가 선거기간 내내 관세폭탄과 미국 우선주의 통상정책을 공언해왔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트럼프 당선인이 윤석열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미국 조선업에 한국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졌다. 압박을 일삼던 그가 한국과 조선업 협력을 개진하고 나선 것은 미중 전략전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군함 건조능력마저 버거워진 미국 조선업의 단면을 보여준다. 2020년 9월 미국 국방부가 펴낸 ‘2020 중국 군사력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350척의 군함과 잠수함을 보유한 반면 미 해군은 293척 보유에 그쳤다. 2030년에는 중국 425척, 미국 290척으로 양국 격차가 더 커질 전망이다.
이러한 위기감에서였을까. 미국 정가에서는 지난해 겨울부터 유난히 미국 해군력이 중국에 뒤진다는 여론이 제기돼 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미국은 중국에 맞서기 위해 동맹국에 구애할 필요가 있다”면서 “한국은 중국에 필적하는 조선업 역량과 인재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조선업의 경우 미국의 설계를 토대로 한국이 선체를 건조하고 유지·보수·운영(MRO)까지 책임지는 협업이 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트럼프가 모든 제조설비를 미국내 구축하려고하기보다 산업별로 다르게 대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동맹국이 이미 산업기반을 갖추고 경쟁력을 지녔다면 그 형태로 협력하는 방안이다.
현재 법률상으론 미국 현지에 투자해야만 선박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사정이 급한 만큼 한국같은 동맹국이 저렴한 가격에 빨리 건조하는 조건으로 예외를 인정받는 식의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볼 수 있다. 나아가 우리나라는 조선뿐 아니라 반도체 전기차 이차전지 산업에서도 미국기업과 상호보완하는 구조임을 적극 발굴하고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물론 미국이 어떤 제안을 할지 초조해하며 지켜보지만 말고 속도감 있게 전략을 마련하고 먼저 치고 나가야 한다.
기시다 일본 총리는 올 4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오커스(AUKUS, 미국 영국 호주 3개국 안보 파트너십)의 기술협력 분야에 참가하겠다고 했다. 시대흐름을 파악한 발 빠른 대응이다. 한국과 대만에 선두자리를 내주었던 일본 반도체는 최근 반격에 나선 이후 올 초 구마모토에 TSMC의 반도체공장을 준공했다. 약 5년 걸리는 공장건설을 불과 22개월 만에 속도감 있게 끝냈다.
한국은 미국의 안보동맹국이고, 중국과 접한 지정학적 위치라는 특성을 카드로 활용해 미국과 협력확대는 물론 트럼프 압박 속에 우리산업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이재호 산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