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만 빼고 세계경제 ‘저성장’경고…수출의존 한국도 ‘위험’
IMF “내년 세계경제 3.2% 성장” 하향조정 … 한국도 내년 성장률 2.2→2.0%로 낮춰
중국 ‘5%’ 목표달성 흔들, 독일 역성장 … 관세 앞세운 트럼프정책, 세계경제 흔드나
향후 세계 경제가 저성장과 높은 부채 문제 등으로 시련을 맞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큰 도전에 직면할 것이란 경고도 나온다. 유일하게 미국 경제만 연착륙할 것이란 전망과 대비된다.
21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년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한 가운데, 중국과 독일 등 주요국들의 전망치도 낮추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 1월 취임 후 공약대로 보편 관세를 중심으로 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편다면 세계 경제의 부담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저성장 고착화 우려 = IMF는 최근 한국 정부와의 연례 협의를 거쳐 내년도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2%에서 2.0%로 낮췄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기존 2.5%에서 2.2%로 하향조정했다.
IMF는 “전망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높고 하방 리스크가 더 크다”면서 “국내외 환경 변화에서 회복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경제정책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IMF는 앞서 지난달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을 통해 올해와 내년, 2029년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로 각각 3.2%, 3.2%, 3.1%를 제시한 바 있다. 2006~2015년 평균 성장률 3.6%였던 점을 감안하면 저성장 고착화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부분이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지난달 고물가로 인한 고통을 지적하면서 “저성장과 많은 부채의 조합이라는 가혹한 상황에서 고물가까지 겪고 있다”고 우려했다.
IMF는 전 세계 공공 부채가 연말까지 사상 처음으로 100조달러(13경9000조원)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이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93%에 해당한다.
◆미국 제외 모든 나라가 어렵다 = 한국 경제만 전망이 어두운 것이 아니다. 중국과 독일 등 주요국 경제에도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 주석이 공개적으로 올해 성장률 목표 ‘5% 안팎’ 달성에 대해 강조한 데 이어 당국이 9월부터 연이어 부양책을 내놨지만 경제에 대한 신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중국의 분기별 성장률은 1분기 5.3%로 선방했지만 2분기 4.7%를 기록한 데 이어 3분기에는 지난해 1분기 이후 가장 낮은 4.6%에 그쳤다. 1~3분기 성장률은 4.8% 수준이다.
특히 중국은 내수와 부동산시장 부진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방정부 부채와 청년 실업에 더해 미국과의 지정학적 긴장 등도 중국 경제를 짓누르는 요인이다. IMF는 중국의 성장률이 올해 4.8%에 그치고 내년(4.5%)과 2029년(3.3%)까지 하락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4월 내놨던 올해(4.6%)와 내년(4.1%) 전망치보다는 높지만,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도 내수 촉진을 위한 개혁 없이는 성장률이 4%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유럽연합(EU) 주요국인 독일 경제는 3분기 성장률이 작년 동기 대비 0.2% 감소하는 등 ‘유럽의 환자’로 전락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독일 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3%에서 -0.2%로 낮췄다. 지난해(-0.1%)에 이어 2년 연속 역성장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독일 경제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일시적으로 회복세를 보였지만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에 따른 에너지 위기로 직격탄을 맞았다. 최근에는 자동차 업계 불황이 겹쳤다.
IMF는 독일을 비롯한 유로존 경제성장률도 올해 0.8%에 이어 내년에도 1.2%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2029년 전망치 역시 1.2%에 머문다.
일본은 엔화 약세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 등으로 국민 부담이 가중된 상태로, IMF는 일본 경제 성장률이 올해 0.3%에서 내년 1.1%로 상승했다가 2029년(0.5%)까지 1% 안팎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관세정책에 촉각 = 유일하게 미국 경제는 지표상으로 연착륙을 향해 가고 있다.
미국이 2022년부터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경기 침체 우려가 일기도 했지만 지난 9월부터 별문제 없이 2차례 연속 금리인하를 단행하면서 경제 연착륙 기대감이 커진 상태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지난 9월 “위험이 있지만 (강한 성장을 유지하면서) 지금처럼 유의미하게 인플레이션을 낮출 수 있었던 것은 놀라운 사실”이라면서 “이는 대다수가 연착륙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대량 실업 없이 임금이 인플레이션보다 빠르게 적절한 속도로 오르고 있으며, 월별 고용 증가세는 노동시장 신규 진입자를 흡수하는 데 필요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3분기 미국 경제가 2분기(3.0%)보다 조금 낮은 2.8%(속보치·직전분기 대비 연율) 성장했지만 여전히 3%에 가까운 강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나스닥 지수를 비롯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와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 등 뉴욕증시 3대 지수도 올해 들어 최고치를 거듭 갈아치웠다.
세계 경제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추진할 미국 우선주의 정책의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산에 60% 관세를 부과할 뿐만 아니라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 관세를 매기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IMF는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정책이 현실화하면 세계 경제 규모가 내년 0.8%, 2026년 1.3% 각각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무역 장벽을 높이는 정책은 기본적으로 미국을 포함해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고 지적했다. IMF는 미중 무역 갈등이 커지면 한국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난달 경고하기도 했다.
토마스 헬빙 IMF 아시아·태평양 부국장은 “무역 갈등의 증폭은 (한국 경제의) 주요 하방 리스크”라면서 “한국은 글로벌 공급망과 세계 시장에 강력하게 통합돼 있으며 미중 양국에 강하게 노출돼 있다”고 분석했다.
◆KIEP도 비슷한 전망 = 국책연구원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분석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5년 세계경제전망에서 미국 경제는 내년에도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한 경기 호조세가 지속되면서 2.1%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5월 전망치(1.7%)보다 0.4%p(포인트) 올랐다. 반면 내년 세계성장률(3.0%)은 지난 5월 전망치(3.2%)보다 0.2%p 낮췄다. 미국 신정부의 공약들이 일부 이행되기 시작하면서 세계·중국 등 성장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른바 ‘트럼피즘’ 강화로 성장 우위가 지속하는 미국과 다른 주요 선진국의 성장 격차가 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시욱 KIEP 원장은 “미국 경제가 안정화되면 보편관세는 실현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데 시기적으로는 내년보다는 내후년에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라며 “10~20%의 세율을 부과하면 교역 물량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하방압력이 더 클 수 있다. 해외 주요 투자은행(IB)도 내년 성장률 전망치에선 이미 1%대 성장률 전망이 속출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주요 IB 8곳이 제시한 한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지난 9월 말 평균 2.1%에서 10월 말 평균 2%로 0.1%p낮아졌다. 특히 HSBC 1.9%, 노무라 1.9%, 바클레이스 1.8%, 씨티 1.8%, JP모간 1.8% 등 5개 IB는 1%대 성장률을 내다봤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