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류냐 교류냐, 끝나지 않은 ‘전류전쟁’

2024-11-22 13:00:05 게재

송전 때문에 ‘교류(AC)’ 선택했는데 송전손실 커 … ‘초고압직류송전(HVDC)’ 시대 열려

에디슨과 테슬라의 ‘직류 : 교류 전쟁’은 21세기에도 현재진행형이다 ⓒ2024 SOLARTEX USA LLC

영화 ‘전류전쟁(current war)’의 두 주인공은 에디슨(Thomas Edison)과 테슬라(Nicola Tesla)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에디슨 역을 맡았고 니컬러스 홀트가 테슬라로 출연했다. 전기의 역사에서 토마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의 전류전쟁만큼 치열한 스파크가 일어난 경쟁은 없었다. 19세기 후반, 전기는 아직 초창기 발명품이었고 두명의 뛰어난 천재가 전기 시스템의 미래를 놓고 충돌했다. 에디슨은 직류(DC), 테슬라는 교류(AC)였다.

에디슨(1847~1931)은 무학이었고 수학을 할 줄 몰랐다. 어렸을 때 달걀을 품었던 일화처럼 그는 ‘99%의 땀과 1%의 영감’을 믿었다. 하루에 서너시간만 잠을 자고 ‘열흘에 작은 발명 하나, 반년마다 큰 발명 하나’를 목표로 연구실을 운영했다. 그의 마케팅 감각은 남달랐다. 모두가 백열전구 성능 개량에 매달리고 있을 때 그는 전기를 공급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테슬라(1856~1943)는 유럽에서 전통 과학교육을 받았다. 에디슨은 영어 철자도 틀리기 일쑤였지만 테슬라는 8개 국어를 구사했다. 수학과 시(詩)에도 조예가 깊었다. 에디슨은 조수들을 많이 고용해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발명을 했다. 테슬라는 혼자서 깊이 생각하고 도면을 그려가면서 수학적으로 검증했다. 그도 새벽 3시에 일어나 일하는 일벌레였다.

‘패러데이’가 최초로 발전기 제작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했지만 그 불은 제우스의 번개(전기)가 아니라 모닥불을 피우는 불씨였다. 인류가 전기를 이용하기까지는 근세부터 따져도 최소 200년이 걸렸다.

1600년 경 지구가 거대한 자석이라는 걸 알아낸 영국의 길버트, 1752년 번개가 치는 하늘에 연을 날려 벼락이 방전된 전기라는 걸 입증한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 1780년 동물의 몸에서 생체전기를 발견한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갈바니, 1800년 아연과 구리 조각을 이용해 전기를 만들고 그것을 보관하는 배터리를 만든 이탈리아의 볼타 등.

최초로 발전기를 만든 사람은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다. 그는 전기 자기 유도 현상을 발견했고 1831년 전기를 발생시키는 기계장치를 만들었다. 인간 스스로 제우스의 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실용적인 발전기의 시초는 1860년대 후반 프랑스의 제노브 테오필 그람이 제작한 ‘그람 발전기’로 여겨진다.

인류 최초의 전력사업은 에디슨이 전등회사를 설립한 1878년부터다. 1882년 에디슨은 3대의 직류 발전기로 3000여개의 백열전구에 전력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전력 공급망은 당시 일반적이었던 가스등 배관 방식에 따라 땅에 매설했다.

그는 전등 개발, 전력 공급, 발전기 생산, 전선 생산 회사 등 전기에 관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에디슨 제국(Edison Empire)’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나중에 ‘제너럴 일렉트릭’이 된다.

에디슨은 110V 직류를 사용했다. 문제는 송전이었다. 직류 100V는 2㎞ 이상 송전할 수 없었다. 도시에 전기를 공급하려면 거점마다 발전소를 세워야 했다. 발전기는 석탄을 때는 증기기관으로 가동한다. 매연과 소음은 물론 증기기관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을 방류할 곳도 필요했다.

1880년 테슬라는 당시 표준이었던 직류(DC)가 아닌 교류(AC) 전기를 창안했다. 해질 무렵 공원 산책길에 괴테의 ‘파우스트’를 읊다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날개가 있어 밤을 따라갈 수 있다면’ ‘물러가고 달려오는 해’ 등의 문구에서 그는 ‘회전하는 자기장’을 생각해냈다. 직류는 한쪽 방향으로 일정하게 흐르지만 교류는 양방향으로 파동을 그리며 흐른다. 교류 전기는 높거나 낮은 전압으로 쉽게 변환할 수 있어 장거리 전송이 가능하다. 이 획기적인 발견은 결국 교류(AC) 대 직류(DC) ‘전류 전쟁’을 불러오게 된다.

교류, 시카고박람회 전력 공급 입찰

1886년 에디슨의 회사에서 일하던 테슬라는 에디슨에게 현재 사용하는 발전기를 효율적으로 개량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유럽에서 에디슨 회사의 직류 발전기를 여러차례 수리한 경험이 있었다. 발전기를 개량하면 수리비와 연료비가 줄어들 것이란 말에 에디슨은 쾌히 승낙했다. “좋아, 자네가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면 보너스로 5만달러를 주겠네.”

테슬라는 에디슨이 여러 도시에 설치한 24대의 발전기를 다시 설계했다. 새로운 자동 조절장치를 달아 개량사업을 완수했다. 그런데 에디슨은 약속한 5만달러의 보너스를 주지 않았다. 보너스를 언제 받을 수 있는지 묻는 테슬라에게 에디슨은 이렇게 말했다. “자넨 아직 우리 미국식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군!”

테슬라는 예민하고 깔끔한 성격이었다. 그는 에디슨의 말을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서 모자를 집어들고 일어섰다. 에디슨이 “자네 지금 실수하고 있는 거야” 소리쳤지만 그를 다시 붙잡을 수는 없었다. 에디슨과 결별한 테슬라는 조지 웨스팅하우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교류(AC)를 이용해 여러 도시의 전기화를 이끌었다.

1888년 5월 16일 테슬라는 미국 전기기술자협회에서 교류모터에 대해 강의했다. 단상모터만이 아니라 3상교류 등 다상전류 기술을 이용해 조용하고 강력한 회전력을 얻는 방식을 처음 소개했다. 강의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혁신적이라는 공식 평가를 받았다.

당황한 에디슨은 교류 전기로 동물을 죽이는 공개 퍼포먼스를 하고 전기사형의자에 교류를 도입하게 하는 등 악의적인 여론전을 펼쳤다. 그러나 대세는 이미 기울어지고 있었다. 1893년 웨스팅하우스는 시카고 세계 콜럼버스 박람회 전력 공급 입찰에서 에디슨에 승리했다.

오늘날까지 세계적으로 전력망은 주로 교류 전기로 운영된다. 장거리까지 효율적으로 전력을 전송하고 전압을 변환하기 쉬운 교류는 전세계 가정과 기업의 표준이 되었다.

HVDC 도입에 더 적극적인 중국

19세기 전류전쟁은 테슬라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130년이 흐른 지금 다시 ‘직류(DC)로 돌아가자’는 바람이 거세다. 그동안 교류 송전의 많은 단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교류 송전은 전력망이 복잡하고 땅에 매립하는 송전방식에서 비효율적이다. 무효전력이 있어 송전효율도 나쁘다.

교류(AC) 송전의 단점을 보완한 직류(DC) 송전 방식이 ‘고압직류송전(HVDC, High Voltage Direct Current)’이다. HVDC는 반도체 소자인 ‘컨버터’를 이용해 기가와트(GW)급의 큰 전력을 DC로 변환해 송전한다. 수요지역에서는 다시 반도체 소자인 ‘인버터’로 AC로 변환해서 공급한다. 승압과 강압이 어렵다는 DC의 단점이 보완된 것이다.

DC는 주파수가 없어 전자파를 방출하지 않는다. 인체나 통신기기에 영향이 없고 절연이 간단하다. 피복이 얇아지니 전선 굵기도 가늘어진다. 주파수와 위상이 존재하지 않아 계통 안정도가 높고 DC로 발전하는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과 연계도 쉽다.

HVDC는 300㎞가 넘는 장거리 송전, 40㎞가 넘는 해저·지중 송전에 매우 유리하다. 같은 굵기의 전선이라면 DC는 AC보다 2배 이상 송전한다. AC 송전탑에 비해 철탑 크기와 면적, 수량도 줄어든다. 그만큼 자연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줄어든다. 기존 AC 송전탑을 활용해 HVDC로 송전하면 더 많은 전력을 보낼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1998년 제주-해남 해저케이블에 HVDC를 처음 도입했다. 이후 해남 완도 진도 제주 4곳에 HVDC를 적용해 운전 중이다. 강원도-수도권, 호남-수도권 전력망에도 HVDC 도입을 추진중이다. 우리나라의 HVDC 기술은 100% 자체기술을 확보해 해외 송전망 사업에도 적극 진출하고 있다.

국토가 넓은 중국은 HVDC 도입에 더 적극적이다. 중국은 내몽골 지역에 집중된 태양광과 풍력발전 전력을 HVDC를 이용해 동해안 공업지대로 보내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5월 29일 발표한 ‘에너지절약·탄소저감 액션플랜(2024~2025)’에서 중국 국무원은 “중국의 발전설비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54.8%지만 전력 생산의 35%만 담당하고 있다”며 “신재생에너지를 제약하는 ‘간헐성’ ‘변동성’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기 위해 고압직류송전망(HVDC)과 에너지 저장시스템(ESS) 도입, 수소에너지 생산 확대 등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남준기 기후재난연구소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