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연합회 사무총장
“자기 상품 저가공세, 심판-선수 경쟁하는 격”
“유통 독과점 되면 결국 소비자 후생 악화돼”
이달 8일 서울 신촌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연합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성원 사무총장은 “거대 공룡기업이 된 플랫폼에 의해 유통시장의 ‘룰’이 바뀌어버렸다”며 “골목상인뿐 아니라 도매상들까지 멸종될 위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유통플랫폼이 당장은 초저가를 앞세우지만 이들이 시장을 지배하게 되면 결국 소비자의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유통플랫폼이 어떻게 소상공인을 위협한다는 것인지.
2~3년 전 ‘오픈마켓’이나 ‘소셜커머스’만 해도 셀러(판매자)와 플랫폼 기업 간의 갑을관계에서 비롯된 불공정 문제가 주를 이뤘다. 제품·광고 노출 순위나 비용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미국 ‘아마존’처럼 국내에서도 플랫폼이 거대 물류창고를 갖추고 직접 상품을 초저가로 대량 매입해 되팔면서 게임의 룰이 바뀌어버렸다. 현재 업계 1위 플랫폼의 경우 매출 대부분은 입점 상인들이 아니라 자체 매입제품 판매에서 나오고 있다. 심판이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선수와 경쟁하고 있는 셈이다. 시장침탈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내가 종이컵을 팔려고 주문했는데 묶음당 원가가 1000원이라고 해보자. 나는 1000원짜리를 1만 묶음 사서 여기에 마진과 배송료를 붙여서 팔아야 한다. 그런데 플랫폼은 10만개를 주문할 자금력과 거대한 유통망이 있다. 묶음당 800원으로 10만개 산 다음 마진 100원 붙여서 900원씩에 ‘로켓배송’ 해준다. 이젠 유통기한이 짧은 신선식품도 싼 값에 새벽배송 하고 있다. 플랫폼이 공룡 유통기업 그 자체로 변질되면서 골목상권이 훨씬 더 빨리 고사위기를 맞고 있다. 대기업도 이제 플랫폼 앞에선 을이다. 최저가 로 납품해야 한다. 많이 팔아주면 왕이니까. 대리점, 도매상도 마찬가지다.
●경쟁 플랫폼과 유통 대기업들도 있지 않나.
각자의 수익구조를 아직은 유지하고 있지만 결국엔 아마존처럼 바뀔 것이다. 대형마트의 경우 예전엔 지점마다 따로 있던 쇼핑몰 홈페이지를 통합하고 있다. 각 지역 마트를 일종의 물류창고로 쓰는 전략이다.
●소비자는 싼 것을 선호한다.
소비자를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독과점 시장에서 소비자 부담이 커지는 현상을 많이 봐왔다. 유통시장 역시 독과점이 되면 소비자 후생은 결국 악화될 것이다. 배달시장에서는 이미 ‘이중가격제’로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상황이다.
아마존 CEO가 ‘충분한 소비자들을 확보할 때까지는 수익을 내지 않는다’고 했다. 독과점 시장이 형성될 때까지 참다가 소비자들이 갈 곳 없어지면 그때부터 폭리를 취한다는 소리다. 국내 유통 플랫폼 시장도 이제 독과점까지 한 단계만 남은 것 같다.
●대안은 없나.
지금의 시장침탈을 막을 수 있는 정책은 아직 나온 게 없다.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이나 의무휴업과 유사한 규제로 진행속도를 늦추는 게 필요해 보인다. 지역화폐나 전국민 재난지원금 같은 대책도 진지하게 검토해줬으면 좋겠다. 국민들이 쓸 돈이 없다. ‘코로나 때가 차라리 나았다’는 말이 상인들 사이에서 나오는 지경이다.
●언제부터 이 일을 하고 있나.
2000년대 초반부터 대형마트, 복합쇼핑몰을 상대로 생존투쟁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싸움이 매듭지어지기도 전에 코로나 이후 플랫폼이 새로운 포식자로 등장했다. 소상공인들은 한 목소리를 낼 고리가 약해 더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