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트럼프 2기, ‘프로젝트 2025’ 계획대로 착착

2024-11-26 13:00:08 게재

지난 7월 초 트럼프 당시 대선 후보는 자신이 ‘프로젝트 2025’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민주당의 공격에 맞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프로젝트 2025’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고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이후에도 그는 9월 10일 전국에 중계된 대선 토론회를 비롯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같은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의 측근들도 선거 기간 내내 같은 입장을 고수했다. 트럼프 캠프의 한 핵심인사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프로젝트 2025’를 ‘골칫거리’라고 부르면서 자신들과 무관함을 강조했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후 지난 몇 주 동안 연달아 나오고 있는 트럼프 2기 정부 참여 인사들을 보면 트럼프가 국민들에게 또 거짓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보수회귀 추진하는 ‘프로젝트 2025’

보수의 집권 청사진인 ‘프로젝트 2025’는 헤리티지재단이 주도해 만들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은 ‘기독교 민족주의’ 이념에 기반한 미국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1973년 설립되었다. 1980년대 초 레이건 대통령부터 현재까지 보수적인 공화당 행정부 인사와 정책 형성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전에도 정책제안서를 만들어 전달했고 취임 2년 만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한해야 하는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 군비지출 증가, 해상 석유 시추 증가 및 연방 토지 개발 등 자신들이 제안한 정책 사항의 64%를 트럼프 대통령이 실현했다고 선전한 바 있다.

2022년부터 트럼프 재집권에 대비해 마련한 정책제안서로 나온 것이 바로 900쪽이 넘는 ‘프로젝트 2025’다. 주 내용은 대통령의 권한 강화와 연방정부 전면 개편, 낙태권 성소수자 권리 등을 제한하는 성서에 기반한 사회 문화 정책 추진으로 요약할 수 있다.

미국 헌법의 기본 정신인 삼권분립의 ‘견제와 균형’에 반하는 대통령의 막대한 권한 강화와 강력해진 행정부의 힘을 통해 이른바 ‘워크(woke) 문화’에 대항하는 보수적 가치관과 문화를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둔 다양한 정책들을 제안하고 있다.

‘프로젝트 2025’은 미국에서 다시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를 복원시킬 도덕적 책임”이 보수 대통령에게 주어져 있다면서 임신중지권을 제한하는 데 공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식품의약품안전국 (FDA)이 24년 전 이미 허가한 경구용 임신중절약을 다시 금지시키고 낙태에 필요한 약물과 장비가 연방우체국을 통해 발송 되는 것을 금지하는 등 전면적인 낙태 불법화를 위한 제반조치들을 제시한다.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의 결합만을 이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형태의 결혼과 가족으로 규정, 기후변화에 대한 부정과 화석연료 촉진 정책, 트랜스젠더의 군복무 금지 등 성소수자들의 권리 축소 등을 주창하고 있다.

또한 서류미비 이민자에 대한 사상 유래 없는 대규모 추방(mass deportation)에 군대를 동원하고 포르노 불법화, 인종과 젠더 다양성 향상 프로그램(DEI) 종결, 성별과 인종에 대한 극단적인 이념을 전파한다는 이유로 연방교육부 폐지, 대통령이 연방공무원을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고, 대중시위에 연방 군대 동원을 허용하는 등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 등도 포함되어 있다.

저자·기여자 절반이 트럼프 1기 관련자

‘프로젝트 2025’를 만드는 데 참여한 300여명의 저자와 기여자들 중 약 절반이 트럼프 1기 정부, 인수팀 또는 선거캠프에 참여했던 인사들로 밝혀졌다.

트럼프는 2022년 4월 헤리티지재단 대표인 케빈 로버츠와 개인 비행기를 함께 타고 헤리티지재단 컨퍼런스에 참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케빈 로버츠는 ‘프로젝트 2025’가 “트럼피즘을 제도화한 청사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 과정 내내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프로젝트 2025’와 거리를 두고 심지어 ‘프로젝트 2025’가 제시하는 정책 일부는 “굉장히 터무니없는 최악”이라고 말한 이유는 ‘프로젝트 2025’의 극단적인 정책이 중도층이나 부동층의 표를 얻는 데 불리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언론에 제보된 한 비디오에서 ‘프로젝트 2025’의 설계자로 알려진 러셀 바우트는 트럼프가 ‘프로젝트 2025’와 상관없는 것으로 행세한 것은 “계획의 일부”라고 말했다.

‘MAGA’ 자격심사 통과자만 1만명 넘어

선거 승리 후 트럼프 당선인은 바로 차기 정부 요직에 ‘프로젝트 2025’에 관여한 인사들을 대거 임명하고 있다. ‘프로젝트 2025’는 정책 제시뿐 아니라 이를 실행할 광범위한 ‘인사 데이터베이스’ 시스템도 함께 만들었다.

링크드인의 보수버전인 이 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생명은 잉태된 순간부터 자연사할 때까지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대통령은 선출되지 않은 연방 공무원의 방해 없이 관료를 통해 자신의 의제를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등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동의 여부를 답해야 한다.

비영리 탐사전문 언론 프로퍼블리카가 지난 8월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 데이터베이스에는 트럼프 후보가 당선될 경우 새 정부에 참여하기 위해 엄격한 ‘마가(MAGA - Make America Great Again)’ 자격심사를 통과한 후보자들이 만명을 넘는다. 이들을 기반으로 고위직뿐 아니라 실무진도 트럼프 충성파로 대거 교체한다는 계획이다.

또 NBC뉴스는 최근 상황에 정통한 한 소식통을 인용해 이미 트럼프정권 인수팀 담당자들이 ‘프로젝트 2025’ 인사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잠재적 채용자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임기 말, 미 전역에서 백인경찰에 살해된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해 일어난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BLM , Black Lives Matter)’ 시위 진압에 군대를 동원하려다 당시 에스퍼 국방장관과 군 수뇌부의 반대로 좌절된 적이 있다. 에스퍼 장관은 그 후 트럼프에 등을 돌렸다.

이런 ‘하극상’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듯 트럼프는 국방장관 후보자에 트럼프 충성파인 피트 헤그세스를 지명했다. 폭스뉴스 진행자로 군 수뇌부 지휘 경험이 전무하고 성폭력 혐의까지 받은 것은 트럼프에 대한 충성도보다 더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닌듯 하다.

백악관 예산실장엔 프로젝트 주 설계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백악관 예산관리실(OMB) 실장에 러셀 바우트를 지명했다. 백악관의 예산을 감독하고 행정부 전반에 걸쳐 트럼프의 정책을 제정하는 역할을 맡게 된 바우트는 ‘프로젝트 2025’의 공동 저자이자 주 설계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트럼프는 그의 지명을 발표하는 성명에서 바우트를 모든 정부 기관에서 ‘미국 우선’ 어젠다를 구현하는 데 도움을 줄 공격적인 비용 절감자이자 규제완화자이고, ‘딥스테이트(기득권 관료집단)’를 해체할 수 있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소개했다.

트럼프 1기 정부에서도 예산관리실 실장을 맡았던 바우트는 자신이 직접 쓴 ‘프로젝트 2025’ 챕터에서 대통령이 “확대되는 연방 관료주의를 통제해야 한다”면서 백악관 예산관리실이 대통령 권력강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계획을 밝혔다.

바우트 외에도 지금까지 트럼프 내각과 백악관 주요 자리에 지명된 사람들 중 ‘프로젝트 2025’ 작성에 참여한 인사들은 다음과 같다. 톰 호먼(국경 문제를 총괄할 ‘국경 차르’), 존 랫클리프(중앙정보국 CIA 국장), 브렌던 카(연방통신위원회 FCC 위원장), 피트 훅스트라(주 캐나다 대사), 스티븐 밀러(백악관 국경담당 부비서실장) 등 .

트럼프 인수팀은 여전히 ‘프로젝트 2025’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제 트럼프 2기 행정부 구상이 점차 구체화되면서 ‘프로젝트 2025’의 관계 또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남수경 뉴욕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