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지자체 위탁사업 신뢰할 수 있나
서울시의 민간위탁사업 예산은 연간 1조원에 달한다.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위해 2014년 사업비 회계감사 제도가 도입됐다. 사업비 부당집행을 차단하기 위해 ‘회계에 관한 감사·증명 업무’로 규정된 제도다.
하지만 2022년 서울시의회가 조례 개정을 통해 민간위탁사무 수탁기관의 회계감사를 ‘사업비 결산서 검사’로 변경, 세무사(세무법인)도 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시장이 서울시의회 의장을 상대로 무효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대법원은 개정 조례가 위법하지 않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의 발단은 2019년 경기도의회에서 시작됐다. 당시 경기도의회는 회계감사 조항을 ‘사업비 정산보고서 성실성 확인’으로 바꾸고 업무를 수행할 전문가를 회계사뿐만 아니라 세무사까지 포함시켰다. 당시 일부 도의원은 행정사나 법무사도 업무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간위탁사업의 사업비 검증 수준을 ‘감사’보다 낮은 단계의 ‘확인’ 정도로 낮췄기 때문이다.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은 감사인을 회계법인·감사반 등 공인회계사로 명확히 명시하고 있다. 감사 업무는 다른 유사 직역에서 수행할 수 없는 전문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례가 개정된 배경을 보면 민간위탁사무에 대해 불필요하게 업무수행 전문가 범위를 축소시켜 수탁기관의 불편과 비용부담을 가중시켰다는 논리다. 국민의 혈세인 예산이 투입되는 민간사업이 투명하게 집행되는지 엄중하게 따져봐야 하는데 그것보다도 불편과 비용부담을 더 중요하게 본 것이다.
자금집행의 투명성 확보는 영리법인인 주식회사뿐만 아니라 비영리분야의 예산이라고 다를 게 없다. 기업에 대한 외부감사는 회계개혁을 통해 최근 몇년 간 강화됐다. 상장법인의 외부감사인을 금융당국이 일정기간 직접 지정하는 일종의 극약처방까지 내렸다.
반면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는 지자체 위탁사무에 대해서는 오히려 회계사로부터 감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을 만들어 감시망을 느슨하게 했다. 서울시 조례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후 다른 지자체들도 동일하게 조례를 바꾼다면 전국 지자체 위탁사무에 대한 감시망이 모두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현재 국회에 발의된 세무사법 개정안에는 세무사에게 공공기관 재정지출과 위탁사업비 등의 조사와 정산, 검증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이 담겼다. 회계업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직역 간 다툼으로 보여질 수도 있지만 비영리부문의 회계투명성이 크게 후퇴할 수 있기에 단순히 밥그릇 싸움으로 볼 사안은 아니다.
지방 재정관리의 투명성을 위해 정부는 지자체 민간위탁사업 결산서에 대한 회계감사 의무화를 추진하고 국회는 관련 법률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이경기 재정금융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