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고려아연 분쟁과 주주이익 보호

2024-11-27 13:00:09 게재

비철금속분야 세계 1위 기업인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놓고 현 경영진과 최대주주가 분쟁을 벌이고 있다. 1949년 고 장병호 최기호 회장이 공동창업한 영풍그룹은 장씨 일가와 최씨 일가가 나누어서 운영해왔다. 양측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배당과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관련 정관변경을 놓고 대립한 후 오랜 동업관계를 청산했다. 이후 고려아연의 최대주주인 영풍은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와 손을 잡고 고려아연 지분을 주당 83만원에 공개매수했다.

이에 대응해 고려아연은 대규모 차입을 통해 현금을 확보한 후 주당 89만원에 자사주를 공개매수했다. 양측의 공개매수 결과 고려아연의 현 경영진은 우호지분을 포함하여 35.42%를 확보했고, 최대주주인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38.47%를 확보했다. 결과적으로 어느쪽도 과반이 넘는 지분을 확보하지 못했다. 향후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통해 경영권의 향방이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 7.8%를 보유한 국민연금과 일반주주들의 선택이 중요해졌다.

기업지배구조 선진화 위해 공정한 기업지배권 시장 활성화 필요

기업가치는 기업이 창출하는 미래 현금흐름과 부담하는 위험에 의해 결정된다. 주주의결권 등 기업지배구조도 기업가치에 영향을 미친다. 기업지배구조는 주주와 경영자 간 또는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관계를 일치시켜 대리인 문제를 완화하는 제도적 장치다. 기업지배구조에는 기업 내부의 이사회와 감사위원회뿐만 아니라 자본시장에서의 기업지배권 시장도 포함된다.

자본시장에서 기업지배권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다면 기존 경영자들이 기업가치를 훼손해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기업지배권을 확보해 경영자를 교체하려는 시도가 발생한다. 물론 빈번한 경영권 교체가 장기적인 투자를 저해하고 단기성과에만 매몰되게 하는 부작용도 존재하지만 경영자들이 효율적인 경영을 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수단으로서의 장점도 크다. 아울러 기업지배권 시장이 활성화되면 기존에 저평가되어 있는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 시도가 빈번해지면서 자본시장의 가격발견 기능이 향상된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는 주주이익을 훼손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었다. 먼저 고려아연은 자사주 공개매수를 위해 배당가능이익의 범위를 넓게 해석해서 임의적립금도 자사주 매입에 활용했다. 하지만 임의적립금은 주주총회에서 특정한 목적을 위해 배당을 제한한 재원이므로 자사주 매입 등 타 용도로 사용하려면 다시 주주총회 결의를 거치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비록 철회되기는 했지만 고려아연 경영진이 차입한 현금으로 89만원으로 자사주를 공개매수한 직후 해당 차입금을 상환하겠다고 시가를 25% 할인해 주당 67만원으로 일반공모를 결정한 것은 기존 주주의 이익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감독원은 일반공모 유상증자가 타당한지 조사를 하기도 했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고려아연 주가는 48만원에서 150만원까지 폭등했다가 최근 90만원까지 하락하는 등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주주 이익 보호가 가장 우선되어야

기업지배권 시장에서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공개매수를 통해 지분을 확보하거나 주주총회에서 위임장 대결을 통해 주주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경영자들은 공개매수 자금을 마련하거나 자신이 기업 경영에 최적임자임을 주주에게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기존 경영자는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회사자원을 유용하거나 주주이익을 희생시키면 안된다.

하지만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는 주주를 설득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상호비방과 소송전으로 얼룩졌다. 기업지배권 시장에서는 주주이익을 보호하면서 유능한 경영자가 경영권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하는 공정한 규칙이 필요하다. 이번 고려아연 분쟁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살펴보고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와 의무공개매수제도 등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범준

가톨릭대 교수 회계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