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부자감세 프리패스 국회법 유감
매년 연말이 되면 예산안과 세법개정안이 동시에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이 진행된다. 특히 세법개정안은 예산안 부수법안이라고 해서 예산안과 함께 처리되도록 국회법이 규정하고 있다. 예산은 수입과 지출계획서이고 세법은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에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는 세법개정안은 지난 몇년과 마찬가지로 감세 일색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모든 감세안이 더욱 노골적인 부자감세이거나 조세정의에 반하는 것들이어서 문제가 심각하다.
가업상속공제를 확대해서 중견기업 전체로 수혜 대상을 넓히고 공제 한도를 현행 600억원에서 1200억원까지 높이는 안, 상속세 최고세율을 현재 50%에서 40%로 내리는 안, 가상자산 과세를 유예하는 안, 배당소득 종합소득 과세를 분리과세화하고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안이 그 내용이다. 이 감세안들은 마치 상속 재산이 조금이라도, 주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국민은 모두 큰 혜택을 누릴 것처럼 선전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논의 중인 세법개정안, 조세정의에 반하고 부자감세 일색
그런데 여소야대 상황에서 예산안 심의로 바쁜 연말에 왜 이렇게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야기할 감세안을 정부·여당이 밀어붙이고 있을까. 그것은 바로 국회법 제85조의 3에서 규정하고 있는 ‘예산안 및 부수법률안 본회의 자동부의’ 제도 때문이다. 세법개정안에 대한 여야정 합의가 11월 30일까지 이루어지지 않으면 여야 간 논의했던 것들이 완전히 무시된 채 12월 2일 정부가 작성한 ‘정부 세법개정안’이 ‘정부 예산안’과 함께 본회의에 바로 올라가게 된다.
어떤 법안이든 여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본회의에 올라갈 수 없다. 여야가 극한대립하는 식물국회가 되어버리거나, 야당이 현재와 같이 많은 의석을 차지해도 원하는 법을 통과시키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런데 세법에 대해서만 국회법이 예외를 만들어 주었다. 게다가 그 세법안은 기획재정부가 작성하게 되어 있다. 기재부가 가진 막대한 권한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인 셈이다. 윤석열정부 들어와서 여소야대 상황이 지속되고 있지만 계속해서 정부여당이 감세폭주 감세독재를 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제도적 허점으로 인해 야당은 무력할 수밖에 없다.
여소야대를 만들어 주었는데 부자감세도 못 막느냐고 국민은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의지의 문제만은 아니다. 특히 세법개정안과 예산안을 함께 논의해야 하는데 예산안의 경우 국회는 감액할 수는 있어도 증액할 수는 없다. 예산안 증액권은 기재부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야당이 국민에게 무엇인가 약속한 정책이 있고 그것을 실시하기 위해 예산이 필요하다면 일정 정도 양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그래서 기재부는 연말에 예산안과 세법개정안을 동시에 통과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게 되는 것이다.
정부여당의 감세 독주 방치하는 국회법 개정 나서야
최근 민주당 내에서는 감세 수비 전략에서 벗어나 아예 감세 공격을 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현 제도하에서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감세를 막기 어렵고 감세를 막는 정책으로 인기만 잃게 생겼으니 민주당도 전략을 바꾸자는 주장이다. 실제로 최근 민주당은 금투소득세 폐지를 공식화했고 이후 일부 의원들이 이것저것 감세를 제안하고 있다. 이러다가 양당이 감세 경쟁에 나서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가 들 정도이다.
민주당이 이것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윤석열정부의 감세는 대전환과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더욱 늘려야 할 세수기반을 확충하기는커녕 곳간을 거덜내는 정책이다. 만일 민주당이 감세정책에 동조한다면 윤석열정부와 하나로 묶여 비난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민주당은 정부여당의 감세독주를 방치하는 국회법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또한 예산안 확보를 위해 세법개정안에 타협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충남대 교수
경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