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한국형 포이즌필’

2024-11-28 13:00:08 게재

고려아연과 MBK파트너스·영풍의 경영권 분쟁이 한국 기업 방어 제도 개선의 필요성과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는 1980년대 초 미국이 겪었던 기업사냥의 암흑기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당시 미국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과제의 해법을 찾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1980년대 초 레이건 행정부 시절, 미국 기업들은 무차별적인 적대적 인수·합병(M&A) 공세에 시달렸다. 특히 1982년 엘파소 일렉트릭이 제너럴 아메리칸 오일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은 미국 재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어 1983년에는 레녹스가 브라운포먼의 적대적 인수 시도에 직면했다. 연이은 기업사냥에 미국의 우량기업들은 공포에 떨었고, 월가의 전설적인 변호사 마틴 립톤은 이 같은 약탈적 M&A를 막기 위해 ‘포이즌필’ 제도를 고안했다.

포이즌필의 도입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레녹스는 ‘특별누적배당’ 형태의 포이즌필을 도입해 브라운포먼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이후 포이즌필은 미국 기업들의 핵심 방어수단으로 자리잡았다. 1989년까지 포춘 500대 기업의 60%가 포이즌필을 채택했고, 무분별한 적대적 M&A는 급격히 감소했다.

반면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고려아연의 사례에서 보듯, 세계적 기술력을 가진 기업조차 거대한 사모펀드의 공격에 효과적인 대응을 하기 쉽지 않다.

글로벌 사모펀드의 자금조달능력에서 오는 M&A 자금규모는 일반기업의 최대주주 개인 수준에서 대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규모가 크다. 현행 한국의 제도와 법률에서 기존 경영진이 적대적 M&A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우호주주 확보를 위한 발품과 자사주를 매입하는 수준이 고작이다.

결국, 현재의 기업경영환경은 실효성 있는 경영권 방어가 어려워 궁여지책으로 기업의 장기적 전략방향에 맞지 않는 자본배치를 선택하게 되는 등 역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비판과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형 포이즌필 도입을 위한 논의는 정치권 및 제도권에서 적극 시작해야 한다. 미국의 사례는 제도적 방어장치가 얼마나 효과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포이즌필의 부작용과 비판을 고려해 지배주주의 경영권 안정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약탈적 · 적대적 M&A가 우려되는 경우 이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도록 해 결과적으로 주주가치 훼손을 막고, 회사의 기술과 자산 등이 사외 및 국외 유출 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에 대한 논의가 함께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특히 국가 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을 고려해 더욱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고려아연은 비철금속 분야 세계 1위 기업이자, 2차전지 소재 등 첨단산업의 핵심 기업이다.

1980년대 미국이 포이즌필 도입으로 기업사냥 시대를 종식시켰듯이, 우리도 경쟁력 있는 많은 기업들의 적절한 제도적 방어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약탈적 · 적대적 M&A가 횡행해 경영진이 두려움에 기업의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배치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모든 주주에게 큰 피해가 될 수 있다. 자본시장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적절하지 않다. 정부와 정치권은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국내 실정에 걸맞으며 결과적으로 주주가치제고를 유도할 수 있는 한국형 포이즌필 도입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물론 대전제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쟁력 및 국가경쟁력 보호와 주주가치훼손을 막기 위한 것이야 한다. 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

최병철충북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