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다시 읽는 ‘부즈앨런 한국보고서’
내년과 내후년의 경제성장률이 1%대의 저성장에 머물 것이라는 한국은행의 경제전망이 발표됐다. 안 그래도 트럼프 당선으로 수출에 적신호가 켜지고 대기업들이 수요부진으로 공장을 폐쇄하거나 자금조달을 위해 계열사를 매각한다는 소식으로 경제주체들의 불안심리가 커지고 있었는데 설상가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적인 전략컨설팅회사 부즈·앨런&해밀턴(부즈앨런)이 1997년 외환위기 직전 작성한 ‘한국보고서’는 한국경제의 현주소를 이해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보고서는 당시 일본 중국과 경쟁해야 하는 한국의 상황을 ‘넛크래커(The Economic Nutcracker)’에 비유하며 그 상황 속에서 한국이 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하는 전략을 연구했다.
부즈앨런의 한국경제 재도약 키워드 '시장과 지식'
당시 부즈앨런은 한국의 정부주도 경제성장 모델이 한편으로는 국제경쟁력을 가진 소수의 대기업을 배출하고 30년간 눈부신 경제성장을 가능케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국내경제의 비효율과 양극화를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그 결과 한국이 일본 중국과의 경쟁에서 넛크래커의 질곡을 벗어나기 어렵게 되어 한국은 세계 2류 경제국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즈앨런은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해 해결해야 할 도전과제로 왜곡된 시장구조 정상화, 선진국과의 경영 및 기술적 지식 격차 해소, 중국의 저가격과 일본의 고품질 사이에서 발생하는 경쟁의 넛크래커 문제 해결을 제시했다. 아울러 이 3개 도전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한 전략으로는 시장주도, 기업가정신, 지식기반, 지역적 통합, 범세계적 연계 등 ‘5대 필수임무’를 제안했다.
김대중정부에서 추진한 금융 기업 공공 노동 분야에서의 4대 부문 개혁, 벤처기업 육성, 신지식인 개념의 도입, 경제자유구역 조성, 외국인직접투자 유치 촉진 등이 모두 부즈앨런에서 제안한 내용들과 맥을 같이한다.
부즈앨런에서 제안한 내용들을 정부가 실천에 옮겼는데 한국경제의 현실은 왜 여전히 양극화와 넛크래커를 벗어나지 못하고 최근에는 역동성까지 잃은 저성장 구조로 악화됐을까? 그것은 5대 필수임무 중 기본에 해당하는 시장주도와 지식기반 모두에서 목적한 바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즈앨런이 시장제도 확립에서 강조한 정부의 시장간섭 배제, 자금조달 시장의 자유화,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 등이 달성되었다면 기업의 선제적 사업재편과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원활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현재의 시장제도가 부즈앨런이 제시한 조건을 충족하고 있는가를 점검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식기반과 관련해 부즈앨런은 선진국과의 지식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의 R&D와 혁신이 기본이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범세계적 연계를 통해 선진기업들과 함께 일하면서 최상의 지식을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지식 분야의 국제협력 정책은 몇번의 시도는 있었으나 지속성과 확산세를 확보하지 못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조사한 국제연구협업 지표(총 논문 중 국제협업 비중)를 보면 우리나라는 2015년 14%로 41개국 중 36위를 차지했으며 2005년과 비교할 때 33개국이 상승했는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하락했다. 선진지식의 융합이 넛크래커를 극복할 수 있는 핵심요소라는 점에서 현재의 한국산업은 넛크래커의 제물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다.
정부 추진 중인 규제개혁과 한·미 기술 파트너십 성과 기대
침체된 경제와 산업의 역동성 회복을 위해서는 시장주도를 실현하고 지식기반 확충을 위한 선진국과의 지식협업을 활성화하는 데 정책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대기업, 벤처·중소기업, 해외 선진기업 간의 삼각편대가 형성되면 넛크래커 상황을 극복하고 역동성을 회복해 인공지능(AI) 시대의 대전환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현 정부에서 추진 중인 규제개혁과 한·미 기술 파트너십의 성과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