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도의 중동 톺아보기

이스라엘-헤즈볼라 휴전 이후 중동은?

2024-12-02 00:00:00 게재

미국과 프랑스의 중재로 중동 현지시각으로 11월 27일 오전 4시부터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60일 휴전에 돌입했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한 다음날부터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로켓 공격을 계속 퍼부었고, 이에 이스라엘은 올 9월부터 헤즈볼라 지도부 살해와 레바논 공습으로 맞불을 놓았다.

휴전협정은 궁극적으로 2006년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 당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8월 11일 채택한 결의안 1701조의 내용처럼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에서, 남부에 근거지를 둔 헤즈볼라는 리타니(Litani) 강 이북으로 각각 철수해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국경 지역인 레바논 남부에서 헤즈볼라의 주둔을 끝낸다.

이러한 작업은 레바논 정규군이 남부로 들어가면서 이스라엘군이 철수하는 방식으로 60일 동안 이뤄진다. 레바논 남부에는 그동안 방관자였던 레바논 정규군이 주둔·통제하며, 미국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평화유지군이 휴전협정 준수 여부를 감독한다.

이스라엘, 레바논 주권 침해할 권리 요구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실 레바논과 이스라엘 양측이 합의한 국경은 없다. 위에서 말한 국경은 유엔이 설정한 ‘블루라인(Blue Line)’을 뜻한다. 블루라인은 공식합의한 국경선은 아니지만 제1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1949년 휴전협정 및 여러 사항을 고려해 1982년 레바논을 침공한 이스라엘군의 철수를 촉구한 유엔 안보리결의 425호를 이스라엘이 지키는지 확인하고자 동서로 120㎞ 뻗어 있는 군대철수선이다. 이 선은 평화유지의 기준은 되어도 영토 분쟁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이번 휴전협정안에서 이스라엘군은 블루라인 이남으로 철수한다. 헤즈볼라의 철수선인 리타니강은 레바논 동쪽 베카 계곡에서 시작해 서쪽 지중해까지 흐르는 강으로 블루라인으로부터는 약 5~40㎞ 떨어져 있다. 북쪽 리타니강과 남쪽 블루라인 사이의 땅은 서울 면적의 약 4배로(약 2400㎢) 이곳에 평화가 오면 헤즈볼라의 로켓 공격으로 집을 떠나야 했던 이스라엘 북부 블루라인 반경 5㎞ 거주민 약 6만명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피난민이 된 약 9만명의 레바논 주민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문자 그대로 휴전협정이 지켜진다면 헤즈볼라가 다시는 레바논 남부 근거지에서 활약하기는 어렵다. 레바논에서 헤즈볼라와 같은 비국가 무장단체의 재건과 재무장을 방지하기 위해 레바논에 판매하거나 공급하는 무기 또는 레바논 내 무기 및 관련 물품 생산 모두 레바논정부가 규제하고 통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레바논 정규군과 유엔 평화유지군이 헤즈볼라를 레바논 남부에서 몰아내지 못하면 휴전협정을 강제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다시 공격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했다. 이는 이스라엘이 필요할 때마다 레바논의 주권을 마음대로 침해하는 것을 국제사회가 인정한다는 뜻이다.

휴전협정에는 이러한 내용이 없지만 이스라엘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이스라엘이 “국제법에 따라” 위협에 대응해 행동할 권리가 있음을 확인했고, 헤즈볼라가 레바논 정규군 내로 침투하는 징후나 관련 정보를 이스라엘에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우리가 모든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북부 주민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때까지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합의가 일시 휴전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협정이 조금이라도 깨지면 바로 공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헤즈볼라, 레바논 내 정당성 확보 노력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 헤즈볼라 근거지뿐 아니라 수도 베이루트까지 모두 37개 마을을 파괴했다. 참혹한 공격 대상이 된 지역 주민 대다수는 헤즈볼라를 지지하는 시아파 무슬림이다. 이들은 당분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다른 지역 다른 종파 사람들 사이에서 난민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레바논은 1932년 처음이자 마지막인 인구조사를 근거로 기독교, 이슬람 순니파, 이슬람 시아파가 권력을 나누는 체제로 만든 나라다. 종파 간 불화로 1975년부터 1990년까지 15년에 걸친 내전을 겪기도 했다. 대체로 세 종파의 주거지가 분리된 상황에서 섞여 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경제위기로 정부 지원은 기대하기 어려워 주민끼리 상부상조해야 하는데 과연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헤즈볼라 때문에 삶이 더욱 어려워졌다는 내부 불만이 터져 나올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헤즈볼라는 당분간 레바논 내에서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선이 휴전으로 잠잠해지자마자 새로운 불꽃이 시리아에서 타올랐다. 휴전협정 발표 직전인 26일 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향해 “불장난”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레바논의 이란 대리조직인 헤즈볼라와는 휴전하나 시리아 이라크 예멘의 이란 대리인과 벌이는 분쟁은 지속되고 있다면서 특히 시리아 아사드정권이 헤즈볼라를 계속 지원하면 파괴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이날 오전 이스라엘 전투기는 시리아 홈스 북부와 서부 지역을 공격했다. 27일 휴전협정이 발효되기 직전에는 시리아-레바논 국경 지역을 공습해 국경 통과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시리아에서 레바논으로 병력이나 무기, 전략물자가 넘어가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중동전쟁의 불꽃 시리아로 옮겨붙어

그런데 묘하게도 이스라엘-헤즈볼라 휴전협정이 발효된 지 불과 이틀 만인 29일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구성된 샴해방기구(HTS)가 시리아 제2의 도시 알레포를 공격해 도시의 상당한 지역을 장악했다. 샴은 아랍어로 시리아 레바논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2011년 ‘아랍의 봄’ 여파로 내전이 발생한 시리아는 정부군을 지원하는 러시아 이란과 반군을 지원하는 미국 튀르키예 아랍국가 이스라엘로 나뉘어 내전을 가장한 국제전을 치렀는데, 2020년 3월 러시아와 튀르키예가 휴전에 합의하면서 HTS의 공세 전까지 국토 대부분을 시리아정부가 안정적으로 관장하고 북동부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쿠르드족이, 북서부 이들립(Idlib)주와 시리아-튀르키예 국경 안전지대는 튀르키예가 장악했다.

그런데 문제는 쿠르드족 독립 세력이 튀르키예로 잠입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불편한 튀르키예가 시리아정부와 쿠르드족으로부터 영토를 빼앗고자 과거 알카에다와 연관된 극단주의 조직인 HTS를 후원해왔다는 사실이다. 물론 튀르키예정부는 극구 부인한다.

미 국무부는 HTS를 2018년 5월 해외 테러조직으로 지정했다. HTS는 2017년 알카에다와 공개적으로 분리되었지만 이슬람 극단주의 이념을 유지하고 있다. 약 1만5000명의 전투 병력을 보유한 HTS는 시리아 이들립주를 근거지로 삼아 여러 지역으로 공세를 펴왔다. 튀르키예는 이 단체를 해체해 튀르키예가 지원하는 대규모 반군 연합에 합류하라고 압력을 가했지만 HTS는 그냥 조직을 유지하면서 튀르키예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알레포는 시리아 정부군이 극단주의자들로부터 되찾기 위해 5년의 공을 들인 곳인데 불과 3일 만에 상당 부분을 빼앗겼다. 당시 시리아정부는 러시아와 이란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알레포를 탈환했다.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이란이 후원하는 민병대에 속해 시리아 정부군을 위해 싸웠다.

‘나비효과’라고 할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되면서 거침없는 이스라엘의 공세로 이란과 헤즈볼라가 주춤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가 신경을 쓸 틈이 없는 상황이 펼쳐지자 HTS가 예상외로 쉽게 알레포로 진격했다. 시리아정부 약화는 중동 내 이란의 영향력 축소를 바라는 이스라엘과 시리아-튀르키예 지역 영토 확장을 원하는 튀르키예에게는 기쁜 소식이다. 중동전쟁의 불꽃이 동쪽으로 옮아가고 있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