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면기 칼럼
트럼프 2기의 한국, 자기 운명의 방관자 되나
트럼프 재선이 확정된 지 한달, 돌출적이고 저돌적인 그의 집권 2기가 몰고올 파장에 세계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과 특수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우리도 당연히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이 심상치 않은 폭풍전야에 집권세력이 무슨 대비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대통령이 트럼프와의 회동에 대비해 골프채를 다시 잡았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그마저도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무엇을 하겠다는 야무진 비전을 내세운 적이 없는 정권, 무슨 일을 잘 해보겠다는 성의를 보여주지 못한 정권이니 애초에 무슨 기대를 하는 것조차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정권교체 이후 공동체의 모든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경제와 민생의 토대가 허물어지고 있고, 정당정치나 민주주의 시스템이 뿌리째 부정되고 있다. 정권 전반기의 폭주를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이 막무가내 정권이 계속되면 나라가 결딴나고야 말 것이라는 걸 직감하게 되었다. 전국의 교수와 지식인 언론인 종교인들이 대통령 탄핵,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이어가는 까닭이다.
트럼프의 귀환은 우리 경제뿐 아니라 국가정체성 자체에도 심각한 도전을 제기한다. 벌써부터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대화를 재개할 것이라거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종결 수순을 밟아갈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게 나돈다. 극우 이념외교에 매달리며 북한을 러시아 쪽으로 몰아온 한국이 트럼프 푸틴 김정은의 삼각파도에 휩싸일 위험성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세계전략의 핵심은 중국견제다. 하지만 미중갈등은 냉전기 미소경쟁과는 성격과 양상이 사뭇 다르다. 대치는 치열하겠지만 한쪽의 완승보다는 경쟁적 상호의존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 필망, 붕괴론도 개연성이 높지 않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를 방치할 가능성이 희박해서다. 정세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오히려 우리가 자기 운명의 방관자로 밀려날 수 있다.
전환기의 리더십 위기는 국가적 불행
“중원의 형세가 참으로 급박하다. 안으로 자강하면서 밖으로 고려가 했던 것처럼 한다면 나라를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큰소리치다가 끝내 국사를 망칠 것이다.” 1621년, 급성장하던 후금이 명을 압박하던 정세 속에서 광해군은 송-거란(요)-여진(금)과의 다자관계를 풀어냈던 고려의 고민과 대응을 이렇게 되돌아보았다.
단일 제국이 중국을 제패하던 명청시기 기억에 익숙한 한국인은 동아시아나 대륙의 혼란과 분열을 다자적 관점에서 이해하는데 서툴다.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어느 한쪽에 서야만 한다는 생각에 강박되는 경향도 강하다.
역사적 가정이란 한계가 있지만 고려가 기민한 균형외교를 하지 않았다면, 강자에의 일방적 종속이나 군사적 모험주의를 택했다면 망국의 운명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광해군의 염려대로 인조반정 후 조선이 대명사대를 소리높이 외치다가 명을 재촉한 것과 대조되는 장면이다.
전환기에 지도자가 무능하면 국가가 재앙에 빠진다. 지금이 그런 관건적 시간이다. 항간에는 대통령 아닌 대통령 부인, 심지어 제3의 인물이 최고의 권력자라거나 김건희 라인이 국정을 분탕(焚蕩)하고 있다는 등의 소문이 무성하다. 집권세력은 이제라도 김건희 특검을 수용하고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뇌하면서 트럼프 2기에 대비해야 한다. 내각과 참모진도 과감히 정비해야 한다. 특히 이념외교를 속삭이며 한반도 위기를 조장한 참모는 일순위 교체 대상이다. 그러나 대통령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과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외치며 밀고들어올 트럼프를 제대로 상대해 낼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물가에 애를 내놓은 심정이라면 지나칠까? 우선 급한 것은 전쟁노선 철회다. 분단은 강대국 정치의 꽃놀이패다. 자율적 공간을 확보해야 발언권도 지킬 수 있다.
전쟁노선 폐기가 트럼프 대비 첫걸음
‘명태균 스캔들’에 온 나라 정치가 휘둘리고 있다. 유력 정치인들이 줄줄이 코가 꿰인 복마전같은 상황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대통령이 사건을 해명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다. 지난 2년 반, 집권세력은 정치적 반대자를 종북좌파, 카르텔로 낙인찍으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무능과 부패를 말해서는 안된다는 ‘이상한 나라’의 정치를 반복해 왔다.
그러나 사필귀정, 검찰불패를 신봉하는 권력이 밀고온 분열의 정치도 이제 패색이 짙어졌다. 우리 운명을 방관하는 폭정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사회적 저항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여론 반향이 크지 않다거나 집회인원이 많지 않다는 식의 언사로 호도할 상황이 아니다.
북핵은 실정(失政)의 위장막이 아니다. “북이 핵공격을 하면 미국 핵으로 타격할 것”이라는 극우 유튜브 수준의 발언으로 해소될 문제도 아니다. 집권세력은 국내정치의 혼란을 수습하고 국민적 지혜를 모아가며 트럼프 2기가 제기할 도전에 대비해 나가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