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법 개정만으로 상법 개정 대체 불가”
절차적 기준만 다룬 규제에 불과
고도화되는 편법 막기엔 역부족
일반주주·시민단체들 반발 거세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명시해야
정부가 기존에 논의되던 상법 개정안 대신 자본시장법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하자 일반 주주들과 시민·사회단체의 비판이 거세졌다. 상장사로 적용 대상을 한정하는 이른바 ‘핀셋 규제’ 자본시장법 개정만으로는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 전체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을 대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는 땜질식 처방에 불과해 무너진 시장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지 않고 한국증시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 현상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일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 한국거버넌스포럼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일제히 성명을 내고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비판했다.
지난 2일 금융위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을 대신한 자본시장법 개정 방향을 내놨다. 재계 반발 등을 고려해 상법 개정이 아닌 자본시장법 개정을 선택하며 상장사가 분할·합병 같은 자본적 거래를 할 때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문구를 추가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상법은 비상장사, 중견·중소기업을 포함한 120만개 기업에 영향을 미치지만 자본시장법은 상장사 2400곳에만 적용된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적용 대상 법인을 상장법인으로 한정해 상법 개정으로 모든 기업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것”이라며 “자본시장법 보완을 통해 주주 이익을 적극 고려하는 환경을 조성해 주주이익 보호 실효성을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통해 “자본시장법 개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의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이 둘은 보완적 관계로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우찬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이사회와 외부평가기관 모두 지배주주로부터 독립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제시한 절차만으로는 주주의 정당한 이익이 보호될 수 없다”며 “상법 개정 없이 추진되는 자본시장법 개정만으로는 주주보호의 취지를 충분히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여연대는 정부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대해 “소액주주를 보호하겠다더니 결국 기업만 보호한다”며 “정부안은 합병, 분할상장 등 절차적 기준만 다룬 핀셋규제에 불과, 유상증자와 주식 양수도 등 고도와 되는 편법을 막기에 역부족”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국회가 정부가 제안한 자본시장법 개정에 그치지 말고 야당이 제안한 이사의 모든 주주의 공평한 이익에 대한 충실의무,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을 포함한 상법 개정안을 함께 처리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거버넌스포럼도 논평을 통해 “사후약방문으로 점철된 지난 30년의 전철을 밟지 말자”고 경고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상장사 합병제도나 물적분할 후 상장 등은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라면서도 “이것으로 상법 개정을 대신하려는 것과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주주 충실의무라는) 대원칙을 명시하지 말자는 주장은 상법 개정 논의가 나온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미 발생한 일반주주 이익침해 해결보다 앞으로 발생할 수도 있는 다른 유형의 일반주주 이익침해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며 “앞으로 어떤 유형의 일반주주 이익침해 사례가 나오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기본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 시장 신뢰 회복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연합회 대표는 “상법 개정안이야 말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트리거이자 ‘주주 민주주의’의 초석이 될 것”이라며 “이사충실의무 개정이 장기침체 늪에 빠진 우리 주식시장의 구원투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도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상법 개정안을 촉구했다. 윤태준 액트 연구소장은 “정부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에서 나왔듯이 주주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는 건 선언적인 문장일 뿐 사실상 어떤 구속력도 없다”며 “핀셋 규제가 아닌 일반적인 조항을 상법에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