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제의 미국 톺아보기
트럼프의 미국이 한국에 던지는 질문
2016년 트럼프를 선택한 미국민이 8년 만에 다시 그를 선택했다. 2024년 미국 대선의 의미는 무엇인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트럼프는 2016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반이민과 제조업 재건, 그리고 세계경찰 노릇을 그만하겠다는 3가지 핵심공약을 내걸었다. 모두 일자리와 관련돼 있다. 민주당은 낙태권 논쟁에서 우세를 보였으나 먹고사는 문제에는 집중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미국의 이중잣대를 노출하는 데 그쳤다.
바이든을 교체한 해리스는 이민통제와 셰일가스 정책 등에서 트럼프를 따라 입장을 선회했지만 유권자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했다. 투표를 1개월 앞둔 10월 초 여론조사에서 28%의 미국민만이 “나라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다”고 했다. 2020년에 바이든을 지지한 유권자 가운데 약 400만~500만명이 이번에는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다. 민주당이 뼈아프게 느끼는 부분이다.
정치는 정책으로 평가된다. 민주당은 풀뿌리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읽지 못했다. 유권자들은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가치보다 미국우선주의가 챙겨주는 일자리를 택했다.
미국우선주의 의제 추진 동력 확보
미국민은 트럼프를 선택했고 트럼프는 미국을 바꿀 것이다. 8년 전 트럼프는 준비되지 않은 채 백악관에 들어갔지만 이번에는 정책도 인사도 철저하게 준비했다. 트럼프는 대통령 행정권을 극대화하고 공화당을 확고하게 장악함으로써 1기보다 한층 강력한 추진력으로 미국우선주의 의제를 시행하고 미국을 바꾸어 나갈 것이다.
당선이 확정된 지 한달이 채 안돼 백악관과 행정부 주요 인사 내정을 완료했다. 엄청난 속도다. 8년 전에는 짐 매티스 국방장관 H.R. 맥마스터 안보보좌관, 개리 콘 경제보좌관 등 각 분야에서 명망과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을 발탁했지만 이번에는 트럼프의 국정철학을 이해하고 충실히 이행할 사람들로만 골랐다. 이른바 충성파들이다.
피트 헤그세트 국방장관 내정자,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장 내정자, 캐쉬 파텔 FBI 국장 내정자가 모두 40대의 열렬한 트럼프 숭배자들이다. 법무부에는 장관 차관 차관보를 모두 트럼프 형사 고발 사건을 담당하던 변호사들로 채웠다. 백악관에는 지난 4년 동안 트럼프 대선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관리해 온 수지 와일스를 비서실장으로 임명했고 1기 때 초강력 이민정책을 총괄한 스티븐 밀러를 이번에도 비서실 정책담당 부실장으로 기용했다.
공화당은 이번 선거에서 상원 다수당을 탈환했고 하원 다수당 지위도 유지했다. 적어도 2026년 11월 중간선거까지 트럼프는 고위직 인사 인준과 예산 확보에 큰 어려움 없이 미국우선주의 의제를 추진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트럼프 정치는 얼마나 지속될까
트럼프 정치와 미국우선주의는 지속될 수 있을까? 미국에서 정치 양극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인종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지난 10년간 백인의 지지 성향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고학력자는 민주당으로 저학력자는 공화당으로 내부 이동이 있었을 뿐이다. 이번 대선의 승패를 가른 것은 소수 인종의 이동이었다. 특히 히스패닉계 저학력자가 대거 공화당으로 옮겨 갔다. 트럼프 정치의 미래와 관련해 의미가 크다.
소수 인종의 인구 증가율은 백인보다 높다. 이대로면 백인 유권자에게 주로 의존하는 공화당은 정치적 기반이 취약해진다. 그런데 빠르게 성장하는 히스패닉계가 가세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원래 이들은 소수 인종 보호에 앞장서는 민주당을 지지했으나 다수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럴 필요가 없다.
트럼프는 히스패닉계를 끌어안고 노동자 중심의 연대를 구축해 공화당의 장기집권을 구상한다. 이대로만 되면 공화당은 장기집권이 가능해지고 트럼프는 루스벨트나 레이건에 버금가는 변혁적인(transformative)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양대 정당은 다음 선거 때까지 치열한 공방을 이어갈 것이다. 공화당은 소수 인종의 저학력 노동자, 특히 히스패닉계로 외연확장을 계속할 것이다. 민주당은 이번에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400만~500만명 유권자의 마음을 돌리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민주당도 ‘먹고 사는 문제’를 챙기는 정당으로 모습을 바꾸어야 다음 기회를 볼 수 있다.
트럼프는 미국우선주의를 통해 미국의 정치를 바꾸고 있다. 트럼프 현상은 지속된다.
역사적 산물, 자유주의 국제질서
미국우선주의가 우리 시대에 특수한 현상은 아니다. 미국의 이상을 가리키는 말로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a shining city on a hill)’라는 표현이 있다. 1630년 영국 사우스햄튼의 한 교회에서 존 윈스롭 목사가 신대륙으로 떠나는 청교도들에게 한 말이다. “언덕 위의 도시처럼 모든 사람이 보고 있으니, 하느님께 충실한 삶을 살기 바란다.”
그러나 그후 300년 동안 미국은 신대륙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1821년 당시 국무장관 존 Q. 아담스가 말했다. “괴물을 잡으려고 나라 밖에 나가지는 않는다.” 미국은 자유와 독립을 중시하지만 모범을 보일 뿐 다른 나라에 강요하지 않는다고 했다. 1823년 먼로 대통령은 고립주의를 대외정책 원칙으로 천명했다. 2차세계대전 이전의 미국우선주의였다.
‘언덕 위의 도시’를 미국의 이상으로 다시 불러온 것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이었다. 1961년 1월 “언덕 위의 도시처럼 세계 모든 사람이 우리를 보고 있다”고 했다. 1980년 11월 레이건 대통령이 ‘빛나는(shining)’이라는 말을 덧붙여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로 만들었다. 레이건은 1989년 1월 퇴임사에서 “(내가 꿈꾸어 온 미국은) 바다보다 더 강하게, 파도를 견디며, 바위 위에 우뚝 선 빛나는 도시, 상업과 창의가 넘치며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고 조화와 평화 속에 살 수 있는 자유 도시”라고 의미를 규정했다.
400년 전 윈스롭이 ‘하느님께 충실한 공동체’로 말한 ‘언덕 위의 도시’는 냉전의 정점에서 레이건에 의해 ‘상업과 창의, 평화와 자유를 누리는 질서’라는 의미로 정의되었다. 바로 ‘자유주의 국제질서’다. 이것은 미국의 군사패권을 바탕으로 했고 너그러운 자유무역 체제가 뒷받침했다.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는 덤으로 주어졌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 트럼프는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미국의 이익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은 전환기에 있다. 트럼프의 정치적 앙숙인 밋 롬니 전 유타주 상원의원이 2016년 초에 한 말이다. “트럼프의 성격이나 판단력은 대통령 자질이 아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은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로 남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트럼프는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로 남는데 집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이대로 가면 중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말 것이라 한다. 제조업에서 밀리고 경제력에서 밀리면 군사력에서도 밀린다. 너그러운 자유무역 체제를 지킬 여유가 없다.
트럼프가 보기에 제조업 재건과 해외개입 축소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역량을 키우기 위해 제조업을 재건해야 하고 역량의 범위를 넘지 않기 위해 해외개입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한국에게 익숙한 질서 부정하는 트럼프
2차대전이 끝난 다음 태어나 성장·발전한 한국에게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역사적 산물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타당한 진리다. 자유민주주의는 정치의 모델이고 자유무역은 불변의 경제규칙이며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은 영원할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트럼프는 그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유무역 체제가 아닌 새로운 질서에서 ‘개방형 통상국가’ 한국은 어떻게 삶의 수준을 유지할까? 미국이 세계경찰 역할을 하지 않겠다면 한국은 어떻게 스스로 안전보장을 확보할까? 트럼프의 재등장이 한국에 던지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