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찻잔 속 쿠데타’가 치를 시장 비용

2024-12-05 13:00:03 게재

‘155분 천하’ 윤석열발 비상계엄에 시장이 치른 대가는 컸다. 4일 아침 45년 만의 비상계엄 사태에 여의도 금융시장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증시와 환율·채권 가격이 출렁이는 등 혼란이 커지면서 시장이 ‘계엄령 패닉’에 휩싸였다. 정부는 부랴부랴 50조원 규모의 증시·채권안정펀드 가동을 발표했다.

한국은행은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필요시마다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해 시장자금을 융통시키는 시장 안정화 조치를 의결했다. RP란 일정 기간 이후 약정 이자를 보태서 되사는 조건으로 발행하는 채권이다. 한은은 RP를 금융기관으로부터 정례적으로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장에 돈을 풀어 유동성을 조절해왔다. 하지만 비상계엄령 탓에 시장에서 돈이 메마를 우려가 커지자 한은이 비정례적으로 RP를 사들이는일종의 ‘긴급처방’을 내린 셈이다.

금융시장 ‘계엄령 패닉’에 50조원 안정펀드, RP매입 등 긴급처방

한은은 또 채권시장과 관련해 국고채 단순 매입과 통안증권 환매를 통해 시장에 돈을 공급할 계획이다. 외화 RP 매입을 통해 외화유동성을 공급하고 환율이 크게 변동할 경우에는 다양한 안정화 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상계엄’에 놀란 외국인은 이날 코스피 현물시장에서 4082억원, 코스피200 선물시장에서 3783억원 등 총 7800억원가량을 팔고 한국 시장을 떠났다.

금융시장에서는 향후 정치적 파장에 시장 불안감이 커지면서 ‘코리아 엑소더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미국의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고율관세부과 예고 등 악재가 첩첩이 쌓인 가운데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세가 커질 경우 우리 경제는 내우외환의 파고에 휩쓸릴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시장 불확실성이다. 대통령 탄핵 요구가 거세지는 등 정치적 파장이 일 때마다 금융시장은 극심한 ‘정치발 여진’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과거 이명박 광우병 사태, 박근혜 탄핵정국 등 정치 불안감이 고조될 때마다 외국인 이탈로 국내 증시가 흔들렸다. 올해 우리 증시는 아시아에서 거의 유일하게 하락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수익률이 낮은 상황이다. 외국인들이 매도 포지션을 취하며 관망세를 유지중이고 국내 정국을 살피면서 상당히 보수적인 태세를 취하고 있다.

하나증권 리서치센터가 과거 한국 주요 정치 이벤트 발생 기간의 금융동향을 분석한 자료를 살펴보면 ‘이명박 광우병 사태(2008년 4월 18일~6월 26일)’ 때 코스피지수는 2.9% 내렸다. 이 기간 외국인은 3조1610억원을 순매도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촉발됐을 때(2016년 10월 19일~24일)는 코스피 지수가 3.4% 하락했으며 외국인은 9820억원어치를 팔아치우며 증시 변동성을 키웠다.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 국가 신인도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계엄은 국회 결의로 끝났지만 앞으로 정치 불확실성이 이어지면 ‘코리아드스카운트’로 외화채 발행 기업들의 고심이 커질 전망이다. 통상 국가신용도가 하락하고 자본유출이 가속화하면 환율이 상승해 기업들의 외화조달 위험이 커진다.

환율상승이 외화채권 이자 상환을 위한 신규 차입 비용과 금리를 동반 상승시켜 기업의 채무 재조정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정치 불확실성은 외화채 발행 과정에서 리스크 프리미엄이 불거지면서 비용 부담이 확대될 수 있다. 환율 급등은 외화로 발행된 채권의 원리금이 더 늘어 상환 부담이 커지는 데다 발행 예정인 채권 역시 환율 변동으로 더 높은 금리와 부수비용을 요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탄핵절차 장기화시 정치발 여진으로 원화 약세 가능성

세계적 투자전략가 데이비드 로치 인디펜던트 스트래티지 창업자는 4일 새벽 퀀텀 스트래티지에 게재한 ‘대한민국 계엄령-찻잔 속의 쿠데타(Korea Martial Law - Coup in a Tea Cup)’ 보고서를 통해 “만약 보유하고 있다면 침착하라. 이번 사태는 한국 기준으로도 너무 터무니없어(bonkers) 곧 사라지고 잊힐 것”이라고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제언했다. 그는 “대통령 탄핵 절차가 장기화할 경우 원화 약세가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모건스탠리 출신인 로치는 과거 월가에서 가장 먼저 1997년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외환위기를 경고했던 인물 중 한명이다.

그는 “한국은 이 쿠데타가 자리잡기엔 민주주의의 길을 걸어왔다”고 언급하면서 “국경 문제도 없고 국내 불안도 없다. 대통령만 정치적으로 난관”이라며 한국의 민주주의가 계엄령과 같은 비민주적 행태를 충분히 견제할 만큼 강력하다는 평가도 내렸다.

안찬수 오피니언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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