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증권사 CEO 소집…“종합 비상계획 마련, 만일 상황 대응”
국내 증시 체력 약화, 추가 충격시 금융전반에 시스템 리스크 전이 우려
신한투자증권 1300억 사고, 손실 은폐·조작 … “CEO가 내부통제 직접 점검”
최근 비상계엄 사태로 금융시장의 불안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금융감독원이 증권사 대표이사(CEO)들을 소집해 증시안정을 위한 역할과 ‘종합 비상계획 마련’을 주문했다.
금감원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국내 36개 증권사 CEO 등과 긴급현안 간담회를 열고 현재 금융시장 상황 평가와 증권사의 선제적 대응을 당부했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증권사 CEO들이 경각심을 갖고 유동성, 환율 등 리스크 요인별로 ‘종합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마련해 만일의 상황에 긴밀히 대응해주기 바라며, 금융당국과 긴밀한 협조체계를 유지해 시장 변동성 대응 역량을 최적화해주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함 부원장은 “주식·외환시장은 큰 급락 없이 안정화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향후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라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당국, 긴급 현안 CEO와 직접 소통키로 = 금감원은 주요 선진국 증시와는 달리 국내 증권시장의 체력이 그 어느 때보다 약화돼 있으며, 향후 국내외로부터 추가적인 충격이 가해질 경우 금융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의 전이도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함 부원장은 “영업 과정에서 투자자 보호에 소홀함이 없도록 불공정 거래 모니터링을 강화해주고 내부통제 기능이 원활히 작동할 수 있도록 CEO가 직접 챙겨주기 바란다”며 “금융당국도 모든 시장 불안요인에 대응하기 위해 무제한 유동성 공급 등 가용한 모든 시장안정 수단을 동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자본시장 관련 긴급 현안이 발생할 경우 가칭 ‘CEO 레터’ 등을 통해 신속하게 업계와 공유하고 대책을 모색하기로 했다. CEO 레터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스태프(Staff) 레터를 통해 주요 현안을 시장과 소통하고 있는 점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감독당국이 금융회사 CEO와 준법감시(컴플라이언스) 이슈 등 현안에 대해 직접 소통하는 것을 말한다.
간담회에 참석한 증권사 CEO들은 “비상대응계획에 따라 주식시장 급락, 급격한 자금인출 등에 대비하고 리스크 관리 및 모니터링 강화 등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신한투자 사고, 임직원들 장기간 투기거래 = 금감원은 또 최근 증권사 임직원들의 사익추구 행위와 상장지수펀드(ETF) 유동성공급자(LP) 운용 과정에서 신한투자증권이 13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본 금융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이 ‘내부통제 부실’에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이 이날 ‘A증권사의 ETF LP부서 금융사고’라며 예를 든 사건은 신한투자증권이며, 일부 검사 결과를 공개했다. 1300억원 손실이 발생한 사고는 단발성이지만 그동안 ETF LP 부서는 유동성 공급 목적의 헷지거래 이외에 투기거래를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벌여 거액의 손실이 누적돼온 것으로 검사결과 드러났다. 관련 임직원들은 손실을 은폐하기 위해 내부관리손익을 조작하고 스왑거래를 위조했으며 허위제출된 부서 실적으로 거액의 성과급을 부당하게 수령한 사실도 밝혀졌다.
금감원은 “금융사고 발생의 근본적 원인은 투기거래에 의한 트레이딩 수익이 ETF LP 부서의 성과급 산정에 반영되도록 설계된 부적절한 성과보수체계 등이며 수직적·수평적 내부통제의 총체적 부실로 인해 위법행위가 장기가 적발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수직적 내부통제는 업무담당자와 부서장, 본부장, CEO로 이어지는 감독자들의 관리구조를 말하며, 수평적 내부통제는 리스크관리부, 전략기획부 등 주요 통제부서들에 의한 견제와 위험평가를 말한다.
함 부원장은 “상급자의 수직적 내부통제와 컴플라이언스, 리스크, 감사 부서의 수평적 내부통제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불법행위가 전혀 통제·관리되지 못했다”고 질타했다. 그는 “해당 사실을 유념해 (각 증권사들이) 업무별로 업무목적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인센티브 구조가 설계돼 있는지와 내부통제 기능이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CEO가 직접 점검해 달라”고 말했다. 금감원 지난해부터 증권사의 단기실적 중심의 성과보수체계가 과도한 리스크 추구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수차례 안내했다.
증권사 CEO들은 “최근 일련의 금융사고와 관련해 증권업계 스스로 위기의식을 갖고 내부통제와 성과평가 체계를 전사적인 차원에서 철저히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IPO 과정에 ‘증권사 자기이익만 추구’ 경고 = 금감원은 또 최근 증권사가 기업공개(IPO) 주관업무 등 수행과정에서 고객과의 정보비대칭을 악용해 발행회사 또는 증권사 자기이익만을 추구하는 행위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공모가격 부풀리기, 중요사실 부실기재, 상장직후 대량매도, 공개매수제도 악용 등을 말한다.
함 부원장은 “투자자와의 이해상충 관리를 해태하거나 주관사 주의의무를 위반한 증권사에 대해서는 엄중 대응할 예정이므로 증권사 스스로 투자자 신뢰 회복을 위해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증권사 CEO들은 “금융투자상품 판매 및 중개 등 업무 프로세스 전체 과정에서 증권업자로서 투자자 이익을 우선하고 시장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영업관행을 개선하겠다”고 답했다.
금감원은 내년도 검사업무 핵심과제로 증권사의 리스크 취약부문에 대한 내부통제 운영의 적정성을 강도 높게 점검해 증권사의 내부통제 역량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