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총기폭력 규제정책은 성공할까
내년부터 예산 투입해 총기 사들여 폐기 시작 … 정치권 일각에서 반대 목소리
지난 11월 초 토론토 다운타운 서쪽에 있는 한 녹음스튜디오에서 100발에 가까운 총성이 울렸다. 경찰에 따르면 도난 차량을 타고 나타난 3명이 건물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사건 브리핑에서 경찰은 두 폭력조직의 알력이 총격전으로 번졌다고 밝혔다. 갱단끼리 총격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잠복 중이던 경찰차량도 피격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밤중에 100여발의 총성이 콩 볶듯 울리자 인근 주민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사건 직후 출동한 경찰관들은 그 지역 일대를 수색했고 달아나던 용의자들이 버린 것으로 보이는 여러 정의 총기를 발견했다. 건물 옥상과 인근 쓰레기통, 스튜디오 안 곳곳에서 공격용 소총 2정과 권총 등 모두 16정의 총기를 찾아냈다. 또한 경찰은 녹음스튜디오 안에 있던 몇몇 용의자들과 도주하려던 폭력조직 단원 등 23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토론토경찰청 부국장은 “이 사건은 갱단끼리 서로를 향해 총격을 가한 것으로 보이며 지역사회와 일반 시민들에게 위협이 됐다고 느끼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의 이런 시각과 달리 올해는 캐나다 최대도시 광역토론토에서 총기 사고가 유난히 늘어나 치안에 대한 불안이 가시지 않고 있다.
대낮에도 벌어지는 총격전
토론토에서 나이아가라폭포 방향으로 한 시간쯤 떨어진 해밀턴시는 올해 들어 그 어느 해보다 많은 총격사건을 경험했다. 멜라니 워드씨는 올해 초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던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CBC방송과 인터뷰에서 “그냥 무릎에 힘이 풀렸고 비명만 지를 수밖에 없었다”고 눈물을 지었다.
그녀의 아들 알렉산더(19세)는 해밀턴 시내에 있는 약속 장소에 가는 길에 여러 차례 총격을 당했다. 대낮에 시내 한복판에서 10대 청소년이 총탄에 맞았고 해밀턴경찰은 이 사건이 표적을 겨냥한 공격이었다고 보고 있다.
인구 60만명의 해밀턴시에서는 올 들어 지난 11월4일까지 58건의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35건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급증하는 총기 사건 때문에 해밀턴경찰은 최근 ‘총기폭력 대응팀’이란 특별조직을 새로 만들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총격 사건의 발생은 시간대를 가리지 않는다”면서 “그러나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낮 시간대에 발생하는 총격 사건의 증가 추세”라고 말했다. 개인 사이에 발생하는 총격전과 두 자루 이상의 총기가 사용된 사건에 대한 우려도 커지는 상황이다.
해밀턴시의회는 “기록적인 총격 사건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 경찰이 보다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며 최근 경찰예산도 100만달러 이상 증액했다.
해밀턴경찰은 “지난 1년 동안 눈에 띄게 충격적인 사건이 여러 건 있었다”면서 “여섯살짜리 아이가 총을 가지고 놀던 중 발사돼 중년남성이 숨진 사건은 우리 사회에 불법 총기가 얼마나 많이 퍼져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전했다. 그는 “총격 사건의 증가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며, 두려움을 느끼게 할 정도”라고 말했다.
광역토론토에 속하는 필지역 경찰은 평균 36시간마다 한번씩 불법총기류를 압수하고 있다. 필경찰 관계자는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관내에서 84정의 불법총기를 압수했으나 2024년 같은 기간에 압수된 불법 총기는 157건으로 무려 86%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에 따르면 토론토에서는 올해 들어 최근까지 422건의 총격사건이 벌어져 지난해 같은 기간 304건에 비해 110건 이상 늘었다. 2021년 372건에서 매년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였지만 올해는 지난 4년 가운데 가장 많았다.
토론토 북부의 요크지역에서도 올해 10월 말 현재 63건의 총격사건이 발생해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캐나다통계청의 가장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2018년에서 2023년 사이 캐나다 전역에서 발생한 총격사건 수는 1151건에서 2323건으로 배 이상 증가했다.
전문가들 “미국서 흘러 들어와”
폭력 전문가들은 총기사건이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미국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이주영 토론토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영방송 CBC와 인터뷰에서 ”캐나다 불법 총기의 압도적 물량은 미국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미국의 총기가 캐나다는 물론 멕시코와 아시아 유럽 등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그것은 미국의 총기 관련법에 허점이 많기 때문이며 누구나 총기를 더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게 한다. 캐나다가 미국 법까지 통제할 수 없지만 국경을 보호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캐나다국경수비대(CBSA)는 올해 10월15일 현재 입국심사 과정에서 887정의 총기를 압수했으며, 캐나다로 불법 총기가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찰 등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CBSA 관계자는 “밀수꾼들의 수법도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휴대용 수색장비와 X선 탐색기, 탐지견 등을 동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경수비대는 올해 초에는 불법 총기밀수에 맞서기 위해 전담팀 임원도 임명했다.
해밀턴경찰 관계자는 “압수한 불법 총기의 대부분이 미국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 문제를 지역 경찰서에서 해결할 수 없고, 치안활동에도 한계가 따른다”고 털어놨다.
이주영 교수는 정책입안자들이 국경 보안을 강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사회경제적 격차를 해소하는 데도 근본적인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엇박자 내는 총기 규제 정책
캐나다 연방정부는 최근 늘어나는 총기 관련 폭력사건을 줄이기 위해 여러 정책을 추진 중이다. 먼저 정부는 가정폭력 전과자 등의 총기 사용을 막기 위한 법 제정에 나섰다. 연방의회는 가정폭력 가해자들이 총기를 소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검토했다.
총기법 개정안에는 폭력과 관련된 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 총기면허를 소지할 수 없도록 하고, 면허를 소지하고 있더라도 가정폭력이나 스토킹 등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이 의심되면 총기관리부서 책임자가 24시간 이내에 면허를 취소하도록 의무화했다. 총기면허가 취소되면 소지자는 24시간 내에 총기를 경찰관에게 제출하도록 명문화했다.
여성단체 관계자는 “이러한 조치들 중 일부가 여성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캐나다정부가 특히 가정폭력 전과자 등을 대상으로 한 총기규제법 개정에 나선 것은 면허가 취소되거나 허가가 만료된 개인이 총기를 구입해 가족 등에게 사용한 사례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방정부는 이와 함께 개인들이 소유한 15만정 가량의 총기류를 사들여 폐기하려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시중에 나도는 살상무기들이 유통되지 않도록 수억달러의 예산을 투입해 수거한 뒤 아예 없애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계획은 총기산업 관련 단체와 보수당 일각의 비난을 받고 있다. 처음에 찬성하던 총기규제단체 폴리리멤버(PolyReremember) 등은 “돈 낭비에 불과하다”며 정부에 날을 세우고 있다. 금지된 총기를 소유한 사람들이 연방정부의 보상금을 받아 반자동소총 등 성능이 비슷한 군용화기를 합법적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폴리리멤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미니크 르블랑 공공안전부 장관은 “캐나다인들의 안전을 위해 중요한 정책이며, 현재로서는 수거할 총기의 목록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못박았다. 연방정부는 전국적으로 15만정 이상의 금지된 총기와 부품을 회수하고 폐기하려는 프로그램을 시작도 하기 전에 변경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난관은 또 있다. 당초 국영기업인 캐나다우편공사를 통해 총기를 수거할 예정이었으나, 우체부 노조는 안전을 이유로 동참을 거부했다. 연방경찰이 감독한다고는 하지만 위험을 떠안지 않겠다는 것이다.
총기로비단체와 보수색이 짙은 캐나다 중부의 사스캐처원이나 앨버타 지역의 반대도 무시하기 어렵다. 더구나 보수당 일각에서는 “차기 총선을 통해 집권하면 총기 규제를 없앨 수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