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윤석열정부 사회적 대화 자격 잃었다…퇴진만이 답”
시급한 노동현안 산적, 원인제공한 정부에서 결자해지해야 … 한국노총·경총 공동사업 제안 “노사 산뢰자산 축적위한 것”
“고물가 고금리 등 윤석열정부의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현장 조합원들의 분노가 컸다. 경기침체와 어려워진 경영상황으로 임단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업장이 많았다. 정치 외교 통일 등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고 한국노총이 좀 더 공세적으로 대정부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지난달 9일 전국노동자대회를 앞두고 전국 현장순회를 마친 뒤 전한 현장 조합원들의 분위기다.
김 위원장은 전국노동자대회 대회사에서 “윤석열정권 심판이든, 탄핵이든, 하야든, 한국노총은 현장의 민심이 가리키는 데로 투쟁과 저항의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현장 조합원들의 민심을 반영한 것이다. 그의 예견대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언·해제 사태는 탄핵 정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노총은 4일 긴급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윤석열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윤 정부를 사회적 대화 상대로도 인정할 수 없다”며 “한국노총 전 조직은 대통령 퇴진 시까지 조직별 의사결정 기구를 통해 퇴진을 촉구하는 결의를 모으고 국회 및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는 퇴진 집회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결의했다. 한국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사회적 대화 중단을 선언하면서 계속고용 및 근로시간, 격차해소 등 현 정부의 주요 노동정책은 추진력을 잃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안한 ‘사회적 대화 협의체’ 등 다양한 대화가 전개될 전망이다. 지난 4월 김 위원장은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에게 공동사업을 제안했다. 윤 정부들어 답보상태에 놓인 사회적 대화에 노사자치, 노사주도를 선언한 모양새다.
11월 19일 김동명 위원장 대면 인터뷰와 이달 5일 서면인터뷰을 통해 계엄사태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정국에 대한 생각과 정년연장, 기후위기 및 산업전환에 따른 일자리문제, 반도체특별법 등 노동현안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지난달 9일 전국노동자대회 대회사에서 “윤석열정권 심판이든, 탄핵이든, 하야든, 한국노총은 현장의 민심이 가리키는 데로 투쟁과 저항의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당시 어떤 취지였나.
현장 조합원들의 민심을 반영한 메시지였다. 아울러 반노동정책, 노조탄압으로 일관하고 있는 정부·여당의 실정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담겼다. 국정기조의 전면 전환을 요구했으나 정부·여당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대통령의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로 이제 현장의 분노는 임계점을 넘어선 상황이다.
●예견이나 한 듯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해제는 탄핵 정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노총은 4일 긴급 중앙집행위원회(중집)를 열고 사회적 대화 중단과 윤석열 대통령 퇴진 투쟁을 선언했다.
비상계엄으로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헌정질서를 파괴했다. 중집에서 군대를 동원해 국민에게 총을 겨눈 사람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결의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탈퇴 의미는 아니다. 경사노위는 노·사·정 중심인데, 자격 없는 윤석열정부를 대화상대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대화는 무의미 하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 퇴진만이 답이다. 국회 탄핵소추안 처리를 지켜보겠다. 앞으로 사회적 대화는 상대방이 언제 어떻게 자격을 갖추는지에 달려 있다. 상대방이 자격을 갖춘다면 한국노총은 언제든 사회적 대화에 나설 방침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자동차산업, 발전산업 등 산업대전환에 따른 고용위기에 직면했다.
산업전환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필연적으로 구조조정과 실업의 위기에 놓인다. 그러나 산업전환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노동자의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정부의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 노동자 대표는 배제됐다. 산업·노동현장의 실태가 제대로 분석되지 않은 채 노동자의 권리나 사회적 보호 등의 문제는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산업전환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고 하지만, 그 전 일자리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게 말이 안된다.
●올해 임금체불이 사상 처음으로 2조원을 넘을 가능성이 높다.
체불 사건 가해자의 절반 이상은 상습범이다. 현행법상 체불 사업주에 대한 형사적 제제(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가 약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실제 체불임금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다. 지난 9월 임금체불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아직 부족하다. 반의사불벌죄 전면폐지, 임금채권 소멸시효 연장 등 보다 강력한 법제도적 대책이 필요하다. 임금체불이 노동자의 생존과 그 가족의 생계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중대범죄라는 사회적 인식 확산 역시 중요하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는 오랜 숙제다.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기업격차가 노동격차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원·하청 불공정 거래를 뿌리 뽑아야 하고 같은 기업내에서도 고용형태로 인한 차별금지와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 플랫폼, 프리랜서와 같은 비정형 노동자들의 숫자도 급증하고 있는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제도가 제대로 없다. 정부가 노동약자보호법 추진하는데 근본적인 접근이 아니다. 근로기준법 보호 대상을 넓히고 기존 노동관계법 사각지대에 방치된 다양한 고용형태 종사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는 입법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정부·여당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을 두차례 무산시켰다.
입으로는 노동약자 보호를 말하면서 정작 노란봉투법에 대해 묻지 마 거부권을 남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특수고용노동자, 하청노동자, 손배가압류 노동자들이 노동약자가 아니면 누가 노동약자인가? 모든 사람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노란봉투법은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
●정년연장이 국민적 관심사다. 특히 60세 법정 정년과 연급수령연령(1969년생 이후 65세)의 차이로 발생하는 소득공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인구감소와 노인인구 증가 시대에 정년연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정년보다 연급수급연령이 높은 나라는 전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 이제야 정부와 정치권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은 정년을 국민연금 수급과 일치시킨다는 큰 틀에서 할 수밖에 없다. 그 밖의 자세한 사항들은 기업별로 직종별로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노사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임금삭감 없는 정년연장을 원하는 것인가. 60세 이후 고용연장 시기만이라도 임금체계 개편 여지는 없나.
현행 60세 정년연장 당시에도 그랬듯이 임금체계 변경은 개별기업의 노사교섭에 의해서 하는 것이지 법적으로 강제할 사항이 아니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등 청년노동자들의 선호하는 경우 숙련노동자의 노하우를 살리고 점진적 은퇴를 위한 노동시간 단축 등을 통해 추가 비용 발생을 최소화해야 한다. 줄어든 비용을 청년고용 활성화에 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사회적 대화 중단을 선언했는데 정년연장 논의는 어떻게 되나.
사회적 대화를 통한 대타협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다. 국회 입법을 통한 방법 등 다양한 방식의 논의가 가능하다. 다만 비상계엄 선포·해제, 그리고 이로 인한 윤석열 대통령 퇴진 투쟁 등으로 얼어붙은 정국이 풀릴 때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정년연장 이외에도 시급한 노동현안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인데 원인을 제공한 정부쪽에서 하루 빨리 결자해지하길 바란다.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주장해왔다.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은 인건비 상승과 구인란으로 폐업할 수밖에 없고 결국 근로자들의 일자리가 상실될 것이라고 경영계는 우려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은 바닥을 쳤고 5인 미만 사업장은 근기법 적용도 되지 않지만 지난해 자영업자 폐업률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고금리 장기화와 내수 부진 등이 그 배경이다. 그 얘긴 안하고 자꾸 최저임금이 오르고 5인미만 근기법 적용하면 자영업자 망한다는 얘기만 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전면 적용하되 계도기간 부여 및 처벌유예 등의 조치를 시행하고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소상공인 지원 등 보완대책을 마련한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노동계는 ‘주 69시간제’ 논란이 된 정부안과 같은 근로시간 개편에 반대하고 있다. 노동자 중에는 주문량 소화나 소득을 위해 특정주에 52시간을 넘게 일하기를 원하는 경우도 상당하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이들에 대한 선택권도 존중해야 하지 않나.
노동자가 장시간 노동을 수용하는 이유는 하나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다. 우스갯소리로 ‘한번 주4일제를 맛보면 돌아가기 힘들다’는 얘기가 있다. 장시간 노동 강요를 자유와 선택으로 포장한 것일 뿐이다.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의 건강을 해친다는 근거는 이미 차고 넘친다. 뿐만 아니라 장시간 노동은 일·삶 균형을 깨뜨려 노동자들이 가족 친구들과 가질 시간을 박탈한다. 본인을 위해 쓸 시간도 없다. 그 결과 정신건강에도 문제를 일으킨다.
●최근 반도체특별법이 쟁점이다. 근로시간이 아닌 업무의 성과를 기준으로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미국식 화이트칼라이그젬션과 같이 근로시간 제한에서 벗어나 자율적인 근무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반도체특별법은 기본적으로 노동시간 문제를 단순히 산업경쟁력 차원, 즉 전적으로 기업의 요구에 입각해 접근한 발상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한국 반도체산업은 장시간 노동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업종이 아니다. 최근 삼성전자의 부진은 경영실패 때문이다. 이것을 장시간 노동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미국식 화이트칼라이그젬션 얘기하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미국 근로자의 주 평균 근로시간은 38.8시간이다. 한국은 주당 52시간까지 연장근로를 허용한다. 거기에 더해 탄력근로제 선택근로제 재량근로제를 확대했다.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역시 경영상 여건에 따라 사실상 마음껏 활용할 수 있다. 별도의 특별법이 아니더라도 현재 허용하고 있는 유연근무제도 범위 내에서도 충분히 노동시간의 유연한 운영이 가능하다.
●4월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과 공동사업을 제안했다. 노사자치, 노사주도로 읽힌다. 취지는 무엇인가.
한국노총과 경총이 노사 공동의 관심사와 의제를 발굴하고 이행하기 위한 공동의 사업을 집행하면서 이를 통해 미래세대를 위한 노사의 신뢰자산을 축적해 나가자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현재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사가 함께 할 수 있는 방안이나 정부에 공동으로 요구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경사노위는 한계에 봉착했다면서 한국노총 민주노총 경총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등 노사 5개 단체가 참여한 ‘사회적 대화 협의체’을 제안했다.
고도화되고 다양화된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법제도에 기반을 둔 문제해결만을 고집할 경우 그 과정에서 밀려나는 또 다른 사회적 약자를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 밖에서도 다양한 대화의 장이 만들어져야 한다. 작은 합의부터 대타협까지 다양한 수준의 합의가 시도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 단위의 사회적 대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