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역사를 읽어야 할 시간

2024-12-09 13:00:25 게재

공동체의 인식 범위를 결정하는 것은 그들의 집단적 경험이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의 유럽인들은 번영의 시대가 한 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삶에서 전쟁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유럽은 늘 충돌이 끊이지 않는 살육의 땅이었다. 한번 싸우면 100년 또는 30년 동안 지속되는 전쟁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전쟁의 땅 유럽에서 포성이 멈춰진 것은 1871년이었다. 프로이센과 프랑스가 맞붙은 보불전쟁 이후 40여년간 전쟁이 없었다. 또한 당시의 유럽에서는 왕정에서 공화제로 바뀌는 맹아가 싹트고 있었다. 프랑스대혁명의 유산이었다.

지금도 뉴욕 앞바다에서 서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 공화주의자들이 연대의 표시로 미국에 보낸 선물이었다. 예술도 흥했다. 클로드 모네와 에두와르 마네, 폴 고갱, 오귀스트 로뎅, 폴 세잔 등과 같은 위대한 미술가, 빅토르 위고와 뒤마 피스 등의 위대한 작가가 이 시기의 인물들이다. 또한 파리에는 쁘랭땅백화점이 들어섰다. 소비가 꽃을 피운 풍요로운 세상이었다.

긴 역사의 스펙트럼으로 보면 세상은 돌고 돈다

이 번영의 시기가 40여년 지속됐다. 40년이면 거의 한세대다.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좋은 세상이 항구적인 질서로 고착화됐다고 믿을 만한 시간이다. 그래서 이 시기는 ‘벨 에포크’로 불렸다. 벨 에포크,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뜻이다. 그렇지만 벨 에포크는 1914년에 발발한 1차세계대전으로 산산히 부서졌다. 4년여 동안 전선이 고착화된 소모적인 참호전이 이어지면서 1000만명이 목숨을 잃은 비극이 벨 에포크를 믿었던 땅에서 벌어졌다.

긴 역사의 스펙트럼으로 보면 세상은 돌고 돈다. 앞으로 나아가는 진보의 시기가 있는가 하면 역사를 뒤로 되돌리는 반동의 시기도 있게 마련이다. 결코 단선적인 과정이 아니다. 유럽인들이 경험했던 벨 에포크 역시 40여년의 매우 특수한 경험이었지 항구적으로 지속될 보편성을 담보하고 있지는 못했다.

시간을 뛰어넘는 항구적 질서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 싶다. 경제로 시야를 좁혀보더라도 호황은 불황을 잉태하고 한시대를 풍미했던 기업들도 쇠하는 시기가 오게 마련이다. 우리가 경험했던 1990년대 이후의 30여년, ‘세계화 시대’로 불렸던 그 시기도 인류 역사에서 비교적 좋았던 매우 예외적인 시기였는지 모르겠다.

국가간 분업이 모두에게 이롭다는 비교우위의 교리가 널리 퍼졌고, 국가간 이해관계가 긴밀해져 무력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고, 경제적 풍요가 정치적 자유를 높일 것이라는 포부가 세계화 시대의 믿음이었다

벨 에포크가 그랬던 것처럼 세계화도 그 수명을 다하고 있는 것 같다. 관세 전쟁을 넘어 특정 품목에 대한 국가 간 교역을 금하는 조치가 서슴없이 자행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3년 가까운 기간 동안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주 한국에서 벌어졌던 계엄 희비극이 시계 바늘을 40여년 전으로 돌렸다는 평가가 많이 나오는데 실은 세계 도처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블랙스완’ 세계도처에서 벌어져, 과거 역사에 대한 복기 필요한 때

검은 백조를 뜻하는 ‘블랙스완’은 ‘백조는 하얗다’는 지배적 통념에 반하는 현상이나 사건을 의미한다. 즉 기존의 관찰과 경험에 의존한 예측이 통하지 않는 극단적 사건들이 블랙스완으로 통칭된다. 요즘 대중들의 인식범주를 뛰어넘는 일들이 너무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다만 그 인식의 범주가 최근 30~40년의 경험, 인류의 긴 역사에서 보면 매우 짧은 기간의 경험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한계는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최근의 경험에 의한 의사결정은 매우 위험해질 수 있다. 인식의 범위를 넓히는 방법은 역사를 다시 읽는 것밖에 없다. 특히 유럽 국가들의 제국주의 세계화가 한계에 직면하면서 무력충돌로 이어졌던 1차세계대전 직전의 시기에 대한 복기가 필요해 보인다. 역사를 읽어야 할 시간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