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범의 한반도 워치

하룻밤 불장난이 날려버린 동맹의 신뢰와 군의 사기

2024-12-09 13:00:25 게재

“한미동맹이 근간부터 흔들렸다.” 육사출신 어느 현역 장성의 장탄식이었다. “우리가 신군부의 망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지난 수십년간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또 다른 육사출신 예비역 장성도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울분을 쏟아냈다. 윤석열정권의 반국민적 반역사적 친위쿠데타는 시민의 힘에 끝났지만 대한민국의 외교와 안보에 미치는 악영향은 그 범위가 얼마나 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전국민이 한편의 리얼리티 전쟁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그날의 장면은 강렬했다. 우리 국민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는 다른 글에서 많이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중언하지 않겠다.

통보없는 ‘참수부대’ 이동에 미국 격앙

그러나 한미동맹에 안보의 명운을 걸고 있는 대한민국의 관점에서도 이번 일은 결코 가볍지 않은 충격을 가져올 전망이다. 707부대는 우리나라 특수부대 중 적의 우두머리를 극비리에 제거하는 훈련을 받은 속칭 최정예 ‘참수부대’다. 이 부대가 움직인다는 것은 바로 최고수준의 작전이 수행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자칫 한반도에서 전면전으로 비화될 수 있는 행위다.

그런데 이런 부대의 이동이 혈맹인 미국과의 사전협의도 없이 이루어졌다. 비록 평시작전권이 환수되어 평시 우리 부대의 이동상황을 미국에 사전 통보할 의무는 없다고 하지만 이런 특수부대의 이동이 전쟁으로 비화된다면 평시작전과 전시작전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내심 격앙하는 것이 당연하다.

반헌법적인 계엄 이후 미국의 반응을 보면 그 속내를 알 수 있다. 미국은 항상 동맹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에 극도로 신중하다. 민주주의와 시민권을 기초로 하는 가치동맹의 특성상 동맹국의 주권자인 시민들이 반미감정을 가지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12.12 군사반란에 대한 미국의 암묵적 동의와 전두환정권에 대한 미국의 승인이었다. 당시는 모든 작전통제권이 미군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군의 모든 움직임을 평시에도 미군에 통보하고 허가를 받아야 했다. 전두환정권에 대한 미국의 암묵적 승인은 대한민국에 반미의 불길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미국이 이번 한국 상황에 대해 이례적으로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개입하고 나섰다. 백악관과 국무장관이 “우려스러운 계엄 선포”의 해제에 “안도한다” 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이후 커트 캠벨 부장관이 “모든 급에서 관여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사전에 통지받지 못했다”는 식으로 강도를 더해갔다.

미국 언론들도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 적극적인 논평을 내놓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을 3만명의 미군이 주둔하는 동맹국으로 최전선에서 권위주의 국가들과 싸우는 민주주의 국가로 소개하면서 가치외교를 하고 있는 바이든정부가 직면한 최고 수준의 동맹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미국, 윤석열정권과 손절 나서

아직 검찰과 경찰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지만 현재까지 나오는 정황만으로도 안보상으로 얼마나 무모한 일들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다. 북한의 오물풍선에 대한 원점타격과 무인기 평양 투입을 기획했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일들은 당연히 북한을 자극해 비이성적인 보복을 유도할 가능성이 높고 결국 국지전을 넘어서 전면전 비화도 가능한 것이다.

내란을 획책한 일당들은 이를 계기로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는 명분과 상황적 조건을 손쉽게 조성하려고 했겠지만 국가의 안위와 한미동맹에 미치는 영향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지대하다. 한국에 전쟁 상황이 발생하면 동맹국인 미국은 자동개입하도록 되어있다.

미국 입장에서 전쟁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군사작전을 자신들도 모르게 하는 선례가 생긴다면 향후 한국군의 작전과 정보를 한국에 온전히 맡겨놓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군이 사사건건 미군과 협의해야 하는 사소한 일들이 많아질 것이고 우리 군의 숙원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은 더욱 멀어지게 될 것이다.

이번 내란사태 이후 나오는 미국의 움직임은 동맹국 미국이 윤석열정부와 손절에 나선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논평에서 “한미동맹과 파트너십은 특정 대통령이나 정부를 초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정부가 윤석열정부여야만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캠벨 부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심한 오판을 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직접적이고 강하게 부정적 평가를 했다.

이뿐만 아니라 그동안 한미일 3각 협력을 강조해오던 미국이 오스틴 국방장관의 한국 방문 계획을 취소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윤석열정부가 최고의 치적으로 자랑해오던 ‘한미핵협의그룹(NCG)’ 회의도 무기연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핵 확장억제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신뢰의 상실은 사실상 NCG의 파국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불과 지난 며칠간 일어난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이들이 과연 이 나라의 안보를 책임질 능력이나 자질이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한다. 국가와 국민의 안위보다 개인의 권력과 패거리의 의리에 집착하는 비이성적인 광기는 그들을 이해해 보려는 많은 사람의 이성적인 사고를 오작동하게 한다. 여소야대가 아니었다고 해도 그가 얘기하는 ‘절박한’ 상황이 아니라고 해도 유사시 적들의 침략으로부터 우리 자유 대한의 국민을 지켜낼 의지와 기개와 능력이 그들에게 있기나 한 것일까? 한미동맹이 정상적으로 작동이나 할 수 있을까? 모두를 절망케 한다.

군이 입은 상처는 누가 치유해주나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한여름밤의 악몽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우리 군은 지금 다방면에서 어려움에 처해 있다. 최전선에 마주한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되면서 안보위협이 최고조에 달했고 주변 강대국들은 냉전 종식 이후 최대치로 긴장 수준을 높여가며 우리에게 사실상의 ‘참전’을 요구한다. 우리 군도 한미동맹을 넘어 한미일 군사협력을 두고, 과거 우리를 침략하고 반성도 없는 일본과 협력도 반목도 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런 모든 위기를 초월하는 위기는 바로 우리 군의 지속가능성과 사기에 관한 것이다. 설명할 필요 없이 우리 사회가 직면한 저출생의 문제는 우리 군의 지속가능성에 강한 의문을 던진다. 인구감소에 따른 병력감소는 병사와 부사관, 장교를 가리지 않는다. 부사관과 장교 지원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해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 사태로 우리 군에 대한 이미지가 바닥을 지나 요즘 유행하는 말로 지하를 뚫을 것으로 걱정된다. 오죽하면 휴가 시 사복을 입으라는 지시가 떨어질 수 있나?

흔히 군인을 두고 ‘제복 입은 시민’이라고 한다. 군이 조직에 충성하고 집단적 규율에 복종하지만 군 역시 시민이라는 것이다. ‘제복 입은 시민’은 자신의 기본권 상당 부분을 국민을 위해 유보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회로부터 존경받아야 한다. 미국의 군인들이 시민들로부터 존중받는 문화를 우리 군이 얼마나 동경했던가?

전두환 일당의 반국민적 폭거로 우리 군이 입은 상처는 치명적이었다. 이 상처를 치유하고 군의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젊은 군인들이 치열하게 노력했는지 모른다. 오죽하면 군에서는 정치적 중립을 ‘정치적 무관심’으로 오해할 만큼 정치적 관여를 극도로 경계해 왔다. 그런 노력들이 이제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모두가 허탈해 한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45년이 걸렸다. 누가 그 많은 군인들의 45년을 보상할 것인가?

참담하다. 극소수 권력자들의 광기에 한미동맹이 흔들리고 이미지 쇄신을 위한 군의 45년 노력이 증발해 버렸다. 그래도 남은 사람들은 또다시 울분을 머금고 일어선다.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