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감세 감수하며 밸류업 한다더니 ‘계엄’ 한방에 와르르
내란사태 후폭풍, 한국경제가 위험하다 ① 커지는 국민 피해
사흘 만에 국내증시에서만 50조 이상 증발 … 환율상승에 환차손만 수십조
외국인투자자 대거이탈 최소 1조 … 환율급등 막으려면 외환보유고도 ‘위험’
탄핵 불발에 경제 불확실성 더 커져 … ‘계엄 국무회의’ 경제팀 신뢰도 추락
전쟁을 겪고도 단기간에 개발도상국을 벗어나 민주적 정치시스템까지 갖춘 지구상 유일한 나라.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토대로 ‘K 문화’를 수출하는 나라. 기회 되면 한번 가보고 싶은 아름다운 나라. 최근 세계가 대한민국에 붙여준 수식어다. 이 대한민국의 국격이 계엄 한방에 와르르 무너졌다.
무너진 건 국격만이 아니다. 내수부진과 수출저조로 몸살을 앓던 한국 경제가 큰 병에 걸릴 위기다. 증시는 가라앉고 대한민국 화폐가치는 급락하고 있다. 탄핵 불발로 경기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면서 한국에 투자하던 외국인들은 대거 짐을 싸고 있다. 정치 불확실성이 경제 불확실성으로 전이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중심으로 한 경제팀들은 연일 점검회의를 열고 안간힘을 쓰지만 역부족이다. 경제팀 수뇌부들이 ‘계엄 국무회의’에 참석해 내란에 동조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어서다. 해외나 외국인투자자의 불신은 물론 국민들도 믿고 따르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계엄 사흘 만에 국장서만 58조 증발 = 내란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환율, 증시 등 금융시장 불안정에 따른 국민 피해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해외 거래에서는 한국 기업에 국가리스크 딱지가 붙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위헌적 계엄선포 한방에 사회·경제적 비용을 국민들이 대신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9일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지난 6일 종가기준 코스피 지수는 2428.16이다. 계엄사태 하루 전인 3일 종가(2500.10) 대비 71.94p(2.87%) 하락했다. 3일 코스피 시가총액 2046조2610억원에서 6일 1988조5100억원으로 떨어지며 사흘 만에 58조원이 증발했다. 전체 상장기업의 3분의 1에 달하는 953개(36%)가 장중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코스피는 9시30분 현재 2380대까지 밀리면서 연중 최저점을 찍었다.
가상화폐시장도 큰 혼란을 겪었다. 1억3000만원 선을 유지하던 비트코인은 계엄 선포 이후 1시간도 되지 않아 8000만원대로 급락했다. 외국인은 비상계엄 이후 3거래일 동안 국내 증시에서 1조2430억원어치를 팔아치우는 등 빠르게 이탈하고 있다.
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거래소에서 국내 증시 부양을 약속했다. 투자자들에게 세제 지원을 강화해 증시에 도는 자금을 불리고 기업들엔 주가 부양 노력을 사실상 의무화하는 게 골자였다. 밸류업 프로그램,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주목적이었다. 내년부터 발효될 금융투자소득세까지 폐지하겠다고 했다.
부자감세 논란까지 감수하면서 추진한 ‘증시 밸류업’을 윤 대통령 스스로 계엄 한방에 와르르 무너뜨린 셈이다. 여기에 국회 탄핵이 불발되면서 ‘내란사태’는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 경제를 둘러싼 거시적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은데다, 이번 사태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돈 가치 급락 = 계엄 직후 원·달러 환율은 한때 1446원까지 치솟았다가 현재는 1430원대에 육박하고 있다. 정치상황 불안이 이어지자 태국 등 일부 나라에서는 ‘한국 돈을 받지 않겠다’는 소동까지 일었다.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국내 대형항공사는 항공기의 절반을, 저비용항공사는 항공기 대부분을 임차해서 운영하기에 대규모 리스비가 발생한다. 여기에 매출 원가의 30%가량을 연료비로 지출하고 있다. 이 비용을 모두 달러로 지출하기 때문에 환율이 오르면 고정비용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수출 위주 기업은 환율이 오르면 매출이 증가하지만 원자재 구입과 해외 설비투자 비용이 늘어나 중장기적으로는 부담이 커진다. 특히 조 단위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국내 배터리 업체로서는 환율 상승에 따라 투자 비용 지출이 급증할 수 있다.
◆환율방어에 천문학적 세금 투입 = 환율 방어에 천문학적 세금이 투입되고 있는 것도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 특히 외환보유액이 내란 후폭풍에 ‘심리적 방어선’ 4000억달러를 밑돌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환율이 1400원 넘게 치솟았던 2022년 레고랜드 사태 당시 외환보유액은 당국 실개입 등에 두 달간 200억 달러 이상 증발한 바 있다.
지난달 말 기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153억9000만달러로 전월 대비 3억달러 줄었다. 비상계엄 이후 원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면서 환율은 한때 장중 1440원대까지 치솟았다. 이 같은 환율 상승에 당국의 고강도 개입으로 외환보유액은 감소할 전망이다.
환율이 지금처럼 1400원대에서 움직였던 2022년 9~10월 당시 외환보유액은 한 달 새 각각 196억7000만 달러, 27억6000만 달러 급감한 바 있다. 두 달 동안 무려 220억달러 이상의 외환보유액이 사라진 것이다.
이번 내란 후폭풍이 레고랜드 사태와 비슷한 강도로 외환보유액을 감소시킨다면, 앞으로 한두 달 뒤 외환보유액은 4000억달러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 이렇게 되면 2018년 6월(4003억달러) 이후 6년 동안 유지 중인 4000억달러 선은 붕괴된다.
외환보유액은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국제수지 불균형을 바로잡거나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쓸 수 있도록 보유 중인 대외 지급 준비 자산이다. 외환보유액이 급감하면 국가 신인도가 하락하고 해외 조달 비용도 높아져 환율 급등에 대응이 어렵게 된다.
◆안간힘 쓰는 경제팀 = 외환·금융 당국은 연일 긴급회의를 열고 시장 안정화를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일 관계 부처 합동 성명을 통해 “경제부총리인 제가 중심이 되어 경제팀이 총력을 다해 경제를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최 부총리는 “무엇보다도 대외 신인도가 중요하다. 필요시 상황별 대응 계획에 따라 가용 수단을 총동원해 과감하고 신속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제 신용평가사들과 직접 만나고 국제금융 협력 대사를 국제기구와 주요국에 파견하겠다. 해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 경제 설명회도 개최하겠다”고도 했다.
금융당국 역시 시장 안정화를 위해 금융권의 외화 유동성과 자산 건전성 지표를 점검하는 등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금융권에서는 환율이 상승할수록 금융회사의 자기자본비율이 낮아지고 기업대출의 연체 부담이 커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최 부총리를 중심으로 한 경제팀으로 시장 안정이 될지는 의문이다. 최 부총리를 비롯한 경제팀 다수가 지난 3일 ‘계엄 국무회의’에 참석, 내란 방조자로 지목받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