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대통령이 무너뜨린 K-증시 밸류업
지난 3일 밤 비상계엄령 선포와 7일 국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무산 후폭풍으로 한국 증시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외국인들의 순매도와 함께 개인투자자들의 공포매도(패닉 셀)가 확산되면서 4거래일간 코스피는 5.58%, 코스닥은 9.23% 급락했다.
특히 코스닥지수는 4년 7개월여 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원달러환율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장중 1440원에 육박하며 2년여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탄핵 불발 이후 금융시장 변동성은 더 높아졌다.
이는 K-증시 밸류업(가치 제고)을 추진하던 정부가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저평가)’를 조장한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 결과 K-증시 밸류다운(가치 하락)이 돼버렸다.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을 믿고 국내 증시에 남았다던 한 개인투자자는 윤 대통령 때문에 한국 증시가 무너졌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 초 윤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 중 유일하게 증시 개장식에 참석해 “이사회가 소액주주 이익을 책임 있게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며 “임기 중에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 한국 증시를 글로벌 증시 수준으로 끌어 올리겠다”고 장담했다. 이후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 등도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에 동의하는 의견을 발표하며 군불을 지폈다.
하지만 11월 말 정부는 돌연 자본시장법 개정안으로 입장을 바꿨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이사 충실의무를 확대하는 상법 개정 대신, 상장사 자본거래시 소수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맞춤형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들고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과거 상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나올 때마다 나온 땜빵 개선책으로, 소액주주 이익 보호에 대한 근본문제 해결을 대충 덮고 유야무야 넘긴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한 ‘핀셋 개정’을 하면 규제 회피를 위한 새로운 사익편취와 법적 사각지대가 양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은 주주 민주주의를 위한 최우선 과제다. 이사라면 당연히 모든 주주를 위해 일을 해야 하고, 지배주주를 위해 비지배주주를 배신하면 안된다. 선진국에선 이사의 이런 주주 충실의무가 당연하게 여겨지는데 우리나라에선 이를 위해 격론을 벌이고 토론을 해야 하는 현실이 피곤하고 비참하다. 하지만 K-증시 레벨업을 위해선 반드시 주주에 대한 이사 충실의무 명문화란 관문을 넘어야만 한다.
어쨌거나 그렇지 않아도 맥을 못추던 한국 증시가 탄핵정국이 장기화되면 더 추락할 게 분명하다. 증시 안정을 위해서라도 윤 대통령의 퇴진이 시급하다.
김영숙 재정금융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