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부진에 수출까지 흔들리는데 ‘대외신인도’ 출렁
내란사태 후폭풍, 한국경제가 위험하다 ② 세계시장의 경고
내란상황 장기화되면 북한발 ‘코리아리스크’보다 더 큰 타격
“탄핵절차 돌입, 정치와 경제 불확실성 걷어내는 유일한 길”
박근혜 탄핵때는 … ‘탄핵-파면’으로 신속하게 한국경제 살려
대한민국 경제가 ‘내란정국 장기화’ 위기에 몰렸다. 여당이 ‘탄핵→정국안정’ 경로를 거부하면서 정치 불확실성이 더 커지고 있다. 지난 3일 비상계엄사태 뒤 국회가 2시간여 만에 해제하면서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다시 상황이 복잡해지고 있다. 해외투자자들의 시각도 엄중해지고 있다. 계엄해제 의결 뒤 정상화를 찾는 듯했던 시장은 지난 7일 탄핵안 불성립 뒤 다시 요동치고 있다. 환율은 급등하고 주식시장은 급락하고 있다.
세계는 다시 한국경제에 어느 때보다 심각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미국 포브스지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기적인 계엄 사태에 대한 비싼 대가는 한국의 5100만 국민들이 시간을 갖고 분할해서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략적 판단, 경제 망친다” =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에 미칠 충격파를 고려하면 정치권이 지금처럼 당리당략을 따지며 지체할 여유가 없다고 지적한다. 이미 통치력을 상실한 대통령을 탄핵해서 거취에 관한 논란을 매듭지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을 중심으로 위기대응에 나서는 게 대외신인도 붕괴를 최소화하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현 상황에서는 탄핵절차 돌입이 정치와 경제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탄핵 절차와 새 대통령 선출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수 있지만, 한국이 탄핵절차 돌입을 확정하는 순간 정치 불확실성은 일거에 해소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보내는 첫 신호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예산안의 세부 내용은 차치하고, 여야가 합의 처리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국가신용등급 강등 위기 = 불안정한 정치 상황이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울 것이라는 우려는 해외에서도 줄을 잇고 있다.
1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한국의 정치적 긴장으로 경제에 지장을 초래하는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국가 신용도와 해외 투자자들의 원화 자산 선호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디스는 “많은 활동가와 노동조합이 파업을 벌이고 있으며 정치적 긴장이 고조돼 조업 중단 등 경제활동에 지장을 초래하는 상황이 장기화하면 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신용평가사 피치도 미국의 관세 인상 가능성을 점치면서 부정적인 충격이 예상되는 국가 목록에 한국을 포함했다.
신용평가사들의 이런 언급은 지난 10년간 역대 최고 수준(Aa2 안정적·무디스 기준)을 유지해온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이 강등 위기에 처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정부와 공기업, 기업이 외국에서 돈을 빌릴 때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실물과 금융 부문 모두 충격을 받는다.
◆박근혜 탄핵 당시와 비교하면 =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도 이번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 여파를 우려했다. 권구훈 골드만삭스 선임이코노미스트는 이날 보고서 ‘짧은 계엄령 사태의 여파’에서 “내년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시장 평균보다 낮은 1.8%로 유지하지만 리스크(위험)는 점점 더 하방으로 치우치고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그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과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 과거의 정치적 혼란은 당시 경제성장률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았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분석했다. 가장 큰 차이점은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환경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권 이코노미스트는 “앞선 (탄핵 정국에서) 한국 경제는 2000년 중반의 중국 경기 호황과 2016년 반도체 사이클의 강한 상승세에 따른 외부 순풍에 힘입어 성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년엔 한국 수출에 영향을 미치는 중국의 경기 둔화와 미국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오히려 외부 역풍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다만 정치권이 탄핵을 결의하고 정치 불확실성을 걷어내면 경제도 빠른 속도로 정상화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2016년 말 ‘박근혜 탄핵’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에도 국정농단 사태로 경제지표가 나락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국회 탄핵 가결(12월9일)과 헌법재판소 탄핵안 인용(2017년 3월10일), 대통령 선거일정 개시(4월17일) 등 세 차례 주식 시장이 크게 상승하며 정상을 되찾았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