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기 역대 총리들은 수난의 역사
‘용꿈’ 꾸다 들러리 전락
한덕수 총리, 험로 예고
한덕수 국무총리가 피의자 신분이 됐다. 경찰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은 10일 한 총리에게 피의자 신분으로 나와 조사를 받으라고 요구했다.
같은 날 국회가 통과시킨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수사요구안’(상설특검)에도 한 총리는 수사대상자다.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에 참여하여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에 동조했다는 이유다.
한 총리가 ‘12.3 내란’ 과정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수사에서 밝혀질 문제지만, 경우에 따라 윤 대통령 탄핵이나 하야, 구속 등에 따라 권한대행을 할 수도 있다. 노무현정부에 이어 2번의 총리를 거친 데다 민주화 이후 최장수 총리를 지냈지만 ‘풍전등화’ 신세다.
격변기 역대 총리들은 수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권력 공백기에 임시권력으로 ‘용꿈’을 꾸기도 했지만 들러리에 그쳤다. 총구 앞에 굴복해 협력하기도 했다. 때론 탄압을 받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최규하 총리다. 최 총리는 10.26 사태로 인한 박정희 서거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냈고 간선제이긴 해도 대통령까지 지냈다. 하지만 1년도 직을 수행하지 못한 채 전두환에게 강제로 대통령을 양보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12.12 사태 시 정승화 체포 동의, 5.18 민주화운동에서 빚어진 유혈 사태 묵인 등 행보를 보이며 신군부에 동조했다는 역사적 비판을 받는다.
신현확 총리는 최규하 대통령 체제에서 총리를 지냈다. 신군부와 협력하는 듯 보이기도 했지만 충돌하는 경우가 잦았고 1980년 5월 비상계엄 전국확대에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장 면 총리는 우리나라 첫 내각책임제 총리였다.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따른 4.19 민주항쟁 이후 이승만 대통령 하야 이후 의원내각제로 권력구조가 바뀐 제2공화국 체제에서다. 하지만 윤보선 대통령과의 갈등과 민주당 내 구파・신파 내분 등이 겹친 데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박정희 군사정권 탄생의 빌미를 제공했다. 장 총리는 박정희 쿠데타 후 ‘이주당 사건’ 등 조작된 사건으로 구속되는 등 험로를 걸었다.
고 건 총리는 국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시도 과정인 2004년 3월부터 5월까지 2개월 가량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냈고 유력한 대선 후보로도 떠올랐다. 하지만 행정전문가가 정치세력을 업고 대선으로 향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하고 뜻을 접어야 했다.
가장 최근인 황교안 총리 역시 대통령을 꿈꿨다. 그 역시 2016년 12월 국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표결 이후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 취임까지 권한대행 총리를 지낸 데 만족해야 했다.
곽재우 기자 dolboc@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