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103만엔의 벽’ 재검토하는 일본
최근 일본 정치권에서는‘103만엔의 벽’ 수정안이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수정안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지난 10월 열린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의석수를 기존의 7석에서 28석으로 늘린 국민민주당이 15년 만에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한 집권여당 자민·공명당과 ‘부분 연립정권’의 조건으로 과세의 벽 수정을 강하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치권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103만엔의 벽’ 수정안
‘103만엔의 벽’이란 소득세가 발생하지 않는 연간수입 기준을 의미한다. 기초공제 48만엔과 급여소득공제 55만엔을 합한 금액으로 연간수입이 103만엔 이하인 경우에는 소득세가 면제된다. 또한 부모의 부양을 받으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자녀(19세 이상 23세 미만)의 연간수입이 103만엔을 초과하면 부양가족에서 제외되어 부모의 소득세가 증가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한편 연간수입이 106만엔과 130만엔을 초과할 경우 직장 규모나 근무시간에 따라 공적연금이나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는 ‘106만엔의 벽’과 ‘130만엔의 벽’도 존재한다. 이처럼 ‘103만엔의 벽’ 등 연간수입의 벽이 존재함에 따라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내면 실질수입이 줄어들 수 있다’고 판단한 단시간 근로자들이 연말을 앞두고 근로시간을 조정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일본의 최저임금 인상률은 엔저에 따른 물가상승과 실질임금 감소 등을 배경으로 2년 연속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물가와 최저임금이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민민주당은 1995년 소득세가 발생하지 않는 한도가 103만엔으로 동결된 이후 물가상승과 임금상승을 반영하지 않고 있는데 1995년에 비해 현재 최저임금이 1.73배로 인상된 걸 고려하면 공제 총액도 ‘103만엔×1.73=178만엔’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소야대 상황에 직면한 집권 자민당과 연립 여당 공명당은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민주당과 정책별 협력을 추진하고 있어 ‘103만엔의 벽’수정안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소득세 기초공제 및 급여소득공제액 수준을 현행 103만엔에서 178만엔으로 인상하고 주민세에 대해서도 동일한 조치를 취할 경우 세수 감소액은 약 7조6000억엔에 이를 것으로 추산돼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수감소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여당 내에서는 소득세 기초공제(48만엔)를 인상하는 한편 주민세 기초공제(43만엔)는 인상 대상에서 제외하는 이른바 ‘분리안’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103만엔의 벽’ 대책의 효과가 일부 약화될 수는 있지만 국민민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 소득세 감세가 아니라 주민세 감세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민민주당이 최종적으로 이 분리안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본다.
노동력 확보 어려워지자 90%에 가까운 기업 수정 요구
제국데이터뱅크가 지난 11월에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넷 조사 결과(유효응답수 1691개 기업)에 의하면 ‘103만엔의 벽’인상에 ‘찬성’이 67.8%, ‘반대’가 3.9%로 나타났다. 반면 ‘103만엔의 벽’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21.9%에 달했다. ‘찬성’과 ‘폐지해야 한다’를 합치면 약 90%에 가까운 기업이 103만엔의 벽에 대한 수정을 요구한 셈이다.
대다수의 기업들이 수정을 요구하는 이유로 최저임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연수의 벽 때문에 단시간 근로자가 노동시간을 제한하면서 이전보다 노동력 확보가 어려워진 점을 들 수 있다.
앞으로 일본정부가 실시하는‘103만엔의 벽’에 대한 대책이 근로자의 노동시장 참가와 노동시간 조정, 그리고 노동력 부족 문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또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세수확보를 위해 일본정부가 어떠한 대책을 실시할 지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명중 닛세이기초연구소 상석연구원, 아지아대학교 특임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