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불확실성 길어지면 한국경제 큰 타격” 외신도 경고

2024-12-12 13:00:01 게재

국내외적으로 겹겹이 악재 … 동맹국 신뢰 상실·트럼프 2기 대응도 난제

12월 비상계엄 선언도 ‘잘못된 선택’ … 외국 투자자 매도 가능성 여전해

최상목, IMF·WB 등 연쇄화상회동 안간힘 … “정치 불확실성부터 걷혀야”

‘12·3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내란 정국이 장기화하면 한국 경제가 돌이키기 어려운 내상을 입을 것이라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때보다 국내외 경제상황이 더 나빠 한국 경제에 치명상을 줄 수 있다는 경고다.

앞서 국제결제은행(IMF)를 비롯한 국내외 기관들은 한국이 상당기간 1%대 저성장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여기에 내란이란 극단적 정치 불확실성까지 겹치며 엄중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평가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필두로 한 경제팀은 대외신인도 추락을 막기 위해 연일 국제신용평가사 등을 만나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먼저 정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으면 이런 노력도 허사가 될 것이라고 외신들은 경고하고 있다.

◆“최 부총리 인식, 지나치게 낙관적” = 12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미국의 외교전문지인 ‘디플로매트’는 “비상계엄령으로 한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는 과도하다”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을 언급하며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 한국 현대사에서 계엄령이 경제 상황과 금융시장에 혼란을 야기한 사례를 들었다.

4·19 혁명 당시 계엄령을 선포한 이승만의 하야 후 한국 경제는 악화됐다. 그 이후 집권한 박정희도 계엄령을 선언하면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순위는 크게 떨어졌고 경제가 하락세에서 회복하는 데 8년이 걸렸다. 1980년 전두환이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을 때도 한국의 GDP는 그해 세계 GDP보다 3.5%p 낮았다는 것이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에도 투자자들은 미국 달러와 국채를 서둘러 매입했으며 한국 주식 시장을 추종하는 MSCI 한국 ETF는 한 시간 만에 6.5%p 하락했다. 또한 한국에서 비트코인의 가격도 30% 이상 급락했다가 회복됐다는 것이 매체의 설명이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전 미국에 알리지 않으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우려를 더 키웠다고 매체는 분석했다.

디플로매트는 탄핵 절차를 둘러싼 정치적 불확실성이 조속히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은 심각한 경제 침체와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윤 대통령과 여당인 국민의힘이 동맹국들의 신뢰를 잃었고, 윤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으로 내년 1월에 출범할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박근혜 탄핵 당시와는 상황이 많이 다른 데다 비상계엄 선언 시기도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외환보유고 상황 낙관 못해 = 외환건전성도 장담하기만은 어렵다고 경고했다. 국내적으로는 윤 대통령의 법인세 인하와 함께 정부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한국은행과 외환보유고에서 상당한 금액을 차입했다. 아울러 한국 경제의 주요 성장 동력인 반도체 산업도 어려움을 겪고 있어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12월에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도 시기적으로도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매체는 지적했다. 12월은 미국 투자자들이 자본이득세를 상쇄하기 위해 가치가 하락한 주식이나 기타 재산을 매각하는 절세전략을 취하는 시기다. 정치적 혼란이 없었더라도 (외국) 투자자들은 올해 다른 주요 증시에 비해 부진했던 한국 주식을 매도했을 가능성이 높았는데 비상계엄 선언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정치 불확실성이 길어지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코리아디스카운트는 비슷한 수준의 외국기업보다 한국 기업들의 주식가격이 저평가돼 있는 현상을 말한다.

◆계엄 한방에 와르르 = 미국 유력 경제매체인 포브스도 이번 계엄사태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며 “윤 대통령이 코리아디스카운트를 주장하는 해외 투자자들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이 글로벌 무대에 준비가 덜 된 나라라는 일부 투자자들의 인식을 강화했다고 분석했다.

내란 사태는 정부의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노력에도 찬물이 끼얹었다. 정부는 올해 부자감세 논란까지 감수하며 밸류업(기업가치제고) 정책을 적극 추진해왔다. 이런 기조에 따라 다수의 상장기업이 공시를 통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밝히고 투자자들의 소통을 강화해왔다. 은행주 등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종목이 밸류업 수혜 기대감으로 강세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투자심리 위축으로 밸류업 수혜주들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주요 상장기업들은 이번 사태로 자금 이탈이 이어지지 않도록 국내외 투자자들과 소통에 나서고 있다는 후문이다. 포브스는 특히 특히 “이기적인 계엄 선포의 비용을 5100만 한국인이 오랜 시간 할부로 갚게 될 것”이라는 지적했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이미 저성장을 겪고 있는 한국 경제는 정치적 마비 상황으로 더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컨설팅 업체인 유라시아그룹의 보고서를 인용했다. 또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경기가 좋지 않아 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고 있고, 탄핵마저 불발해 원화가 급락할 가능성이 크다”며 “정치 불안뿐만 아니라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도 원화에 하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안간힘 쓰는 경제팀 = 최 부총리를 비롯한 경제팀은 국제신인도 하락을 막기 위해 전력을 쏟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최 부총리는 이날 은행연합회관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F4 회의)를 열었다. 경제팀은 내란정국 이후 연일 ’F4 회의‘를 가동하며 시장불안 진화에 주력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향후 정치 불확실성, 미국의 기준금리 결정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여전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경제·금융상황점검 태스크포스(TF) 등을 통해 24시간 모니터링을 지속하면서 필요한 경우 시장 심리를 반전시킬 수 있도록 충분히 대응하기로 했다.

최 부총리는 전날 밤에는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화상 면담을 통해 ”한국의 민주적 절차는 온전히 작동 중이며, 정치·경제를 포함한 모든 국가 시스템은 종전과 다름없이 정상 운영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최 부총리는 앞서 지난 4일에도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 재무장관 및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총재들에게 긴급 서한을 보내 ”비상계엄 사태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도 전날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대표단을 만나 “최근 국내 정세에도 불구하고 외투 기업이 안심하고 경제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부 정책은 예정된 일정에 따라 차질 없이 추진될 것”이라고 밝혔다.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는 대외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국가 신용등급 하락은 외국인 투자 위축과 자본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계엄 선포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은 국가 신뢰도에 잠재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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