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12.3 친위쿠데타 토대는 K-봉건주의

2024-12-13 13:00:01 게재

외신에서 K-민주주의의 역동성을 칭찬하는 보도가 이어지자 국내에서는 문학, 영화나 음악 등에서 최근 세계적 인기를 끄는 다양한 K-현상이 정치까지 확산했다고 자부하며 자축하는 분위기다. 아직은 성급한 결론이다. 계엄령을 통한 내란 시도는 일단 실패했으나 우리는 여전히 심각한 헌정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무려 반세기 가까이 지났는데 2024년 왜 친위쿠데타라는 황당한 사건이 일어난 것일까. 가장 커다란 책임은 ‘내란의 우두머리’로 언론을 오르내리는 윤석열 대통령에 있다. 그는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다는 비현실적 사고를 할 정도로 정신상태가 병든 것일까. 알코올이라는 약물에 항상 심신을 맡겨 환각상태에서 직무를 수행해 온 것일까. 대통령 개인의 책임은 문제의 한가운데 있지만 이런 대통령이 사고를 치도록 방치한 시스템도 이번 쿠데타의 중요한 요인이다.

많은 사람은 권력 집중의 제도라며 대통령제를 비난한다. 그러나 제도를 탓하는 태도는 무지에서 비롯된다. 의회제는 한 지도자가 의회 다수당과 행정부를 동시에 지배하는 구조다. 쿠데타를 꿈꾸는 지도자라면 친위 내란을 일으켜 성공할 가능성이 의회제에서 더 크다. 대통령제는 반대로 행정부와 입법부 분권의 제도다. 현재 한국처럼 대통령과 의회가 대립하는 경우 국회 해산조차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친위쿠데타는 매우 어렵다. 달리 말해 대통령제는 국정마비를 초래할 가능성이 큰 제도이지 권력을 집중하는 제도는 아니다.

뿌리깊은 봉건 잔재들이 친위쿠데타 토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친위쿠데타 시도는 개인의 특징이나 제도 문제를 넘어 19세기적 봉건주의가 우리 사회에 여전히 강건함을 증명한다. K-봉건주의의 첫 특징은 조직의 권력이 한 사람에 집중되는 독재현상이다. 중앙집권의 긴 역사 때문인지, 역모를 멸족으로 다스렸던 전통 때문인지 한국의 수많은 조직은 우두머리 한사람에게로 권력이 집중된다. 국가 조직은 대통령이 지배하고, 정당은 당수가 독점하며, 기업은 CEO가 독재한다. 반대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제거해 조직은 균형감을 상실한다.

K-봉건주의의 두번째 특징은 근대 조직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봉건적 연고들이다. 이번 친위쿠데타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한 ‘충암고’ 라인은 조선 시대 역모나 20세기 쿠데타의 군부 내 사조직을 연상케 한다. 대통령-국방-행안장관의 삼각형은 국가폭력을 독점하면서 쿠데타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대통령과 당 대표의 ‘검찰’ 출신 쌍두마차도 마찬가지다. 민주공화국 정치에 ‘친박’을 내세우는 정당도 등장하고 정당 내에 ‘친윤’ ‘친한’ 같이 정책이나 비전이 아닌 개인적 충성 집단이 활개를 치는 상황이다. 이런 병폐가 국가뿐 아니라 사회에 널리 퍼져있다는 사실은 연말이 되면 전국에서 성황리에 열리는 각종 동창 동문 집단별 송년회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K-봉건주의의 세번째 특징은 공익을 외면하는 집단이기주의다. 대통령의 위헌적 계엄선언과 군부의 국회 장악 시도를 5000만 국민이 ‘직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당 국민의힘은 곧 닥칠 대선과 미래 총선 득실만 계산하고 있다. 이런 패거리 문화가 국민의힘 만의 현상이 아님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각종 단체나 조직, 심지어 정당과 노조도 공익을 외면하고 집단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태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병폐이며 일상적 현상이다.

K-봉건주의의 가장 구조적인 마지막 특징은 여전히 영호남으로 갈라진 지역주의 정치다. 자신의 보루에는 허수아비를 출마시켜도 당선이 되는 현실은 민주화 수십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해도 우리 편이라면 감싸주는 관습은 정치의 근대화를 가로막는 장벽이다. 탄핵에 대한 이번 국민의힘의 대응은 공화국을 지키겠다는 의지는 빈약하고 보수 여론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일을 더 두려워하는 태세다.

명실상부한 민주공화국을 만들려면

K-민주주의는 우리가 믿었던 것만큼 견고하지 못하다. 한국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민주공화국을 어렵사리 만들어낸 것은 사실이지만 뿌리 깊은 K-봉건주의는 여전히 우리의 습관과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쿠데타를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일은 매우 지난하고 어려운 과제라는 말이다.

우리 모두 스스로 돌아보며 봉건주의의 탈을 벗는 일은 제 살을 깎는 고통이겠지만 명실상부한 민주공화국을 만들기 위한 필수과정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

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