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골수 검체 채취 가능”
대법, 유죄 선고한 원심 파기환송
“진료 보조행위, 의료법 위반 아냐”
의협 “환자 생명·건강에 영향” 반발
그동안 의사만 할 수 있던 골수검사를 위해 검체를 채취하는 업무를 간호사도 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2일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아산사회복지재단에 벌금 20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18년 대한병원의사협의회(병의협)가 아산사회복지재단 산하 서울아산병원을 고발한 데서 비롯됐다.
서울아산병원 혈액내과와 종양내과, 소아종양혈액내과에서 골수 검체 채취를 위한 인체 침습적 의료행위인 '골막천자'를 간호사에게 시행하도록 지시함으로써 의료법을 위반했다는 혐의였다. 골막천자는 혈액·종양성 질환 진단을 위해 바늘을 이용해 골막뼈의 겉면(골막)을 뚫고 골수를 흡인하거나 조직을 생검하는 행위다. 의료계에서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침습적 의료행위이므로 환자 안전을 위해 마땅히 면허된 의사만이 수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쟁점은 골막천자의 법적인 성격이다. 골막천자를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진료행위’로 본다면 간호사의 행위는 의료법 위반이다.
반면, 골막 천자를 간호사가 의사의 감독 아래 할 수 있는 ‘진료 보조행위’로 본다면 의사의 적절한 지시·감독이 있었는지에 따라 유무죄가 갈린다.
1·2심 판단은 엇갈렸다.
1심 재판부는 의사가 종양전문간호사에게 지시·위임해도 불법이라 보기 어렵다며 서울아산병원에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2심) 결과는 달랐다. 2심 재판부는 의사가 현장에서 지도·감독하더라도 간호사가 직접 골막천자를 한 이상 진료행위라고 볼 수 있으며 침습적 검사인 만큼 진료 보조행위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서울아산병원에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다시 무죄 취지로 2심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골수 검사는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진료행위 자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의사가 현장에 입회할 필요 없이 일반적인 지도·감독 아래 골수 검사에 자질과 숙련도를 갖춘 간호사로 하여금 진료의 보조행위로서 시행하게 할 수 있는 의료행위라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전문적인 의료 지식이 필요한 사건임을 고려해 지난 10월 8일 공개 변론을 열고 의료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
당시 검찰은 “골수검사는 신체를 마취하고 바늘을 찔러 넣는 행위로 부작용, 합병증을 유발해 의사만이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피고인 병원 측 참고인인 배성화 대구가톨릭대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의사만 가질 수 있는 전문적 지식이나 판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숙련만 되면 문제발생 가능성도 적다”고 맞섰다.
대법원은 골수 검사가 비교적 위험성이 낮고 사람마다 해부학적 차이가 크지 않은 점, 지침을 준수한다면 검사자의 재량이 적용될 여지가 적은 점 등을 이유로 진료의 보조행위라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은 환자의 체구가 작거나 소아인 경우에는 의사가 직접 현장에서 구체적인 지도·감독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골막 천자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의료행위”라며 “전문간호사일지라도 의사만 할 수 있는 의료 행위를 직접 수행할 수 있는 건 아니다”고 반발했다.
한편 간호사의 업무범위 규정과 처우 개선 등을 담은 간호법 제정안은 의정갈등이 한창이던 지난 8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내년 6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다만 진료지원(PA)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포함해 간호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마련 등 후속작업이 남았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