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항불안제가 물고기 이동에 악영향
실험실 아닌 자연 현장서 확인
성장 번식 생존에 연쇄적 영향
인간이 복용하는 불면증 치료제나 항불안제가 물고기 생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실험실 연구가 아닌 실제 자연 환경에서 일어난 현상을 확인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
실제로 제대로 버려지지 않은 약물은 하수처리 과정을 거쳐 강과 호수로 흘러들어가며, 지하수맥을 타고 이동하거나 토양에 축적될 수 있다. 결국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므로 관리가 중요하다.
16일 과학저널 ‘영국 왕립학회보 B(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의 논문 ‘향정신성 오염물질로 인한 자연 호수 물고기의 이동 유형 변화’에 따르면,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인 테마제팜이 갈색송어(Salmo trutta)의 이동 성공률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확인됐다. 갈색송어의 호수 이동은 먹이 획득과 성장 번식에 중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 변화는 개체 생존과 번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갈색송어는 유럽 서아시아 북아프리카의 담수 및 연안 해양 수로에 서식하는 연어류다. 테마파젬은 불면증이나 불안장애 치료를 위해 사용한다.
스웨덴 농업과학대학교의 잭 브랜드(Jack A. Brand)와 마이클 버트램(Michael G. Bertram) 연구진은 갈색송어 90마리를 스웨덴 중부의 오르사 호수(면적 52㎢, 최대 수심 94m)에 방류하고 수신기 14개로 이동을 추적했다. 또한 실제 환경에서 발견되는 수준의 약물 영향 농도를 재현하기 위해 갈색송어 체내에 서서히 테마제팜 성분이 녹아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간단히 설명하면 캡슐처럼 시간이 흐를 수록 천천히 체내에 퍼질 수 있도록 코코넛오일에 테마제팜을 녹여 음파발신기와 함께 갈색송어에 투여했다.
테마제팜에 노출된 물고기는 첫번째 수신기에 도달할 확률이 낮았다. 호수까지 성공적으로 도달한 비율도 테마제팜 그룹이 47%로, 대조군의 76%보다 적었다. 강과 호수가 만나는 지점에서 포식자 공격을 더 많이 받았을 수 있다고 연구진은 추정했다.
연구진은 현장에서 관찰된 행동 변화가 실제로 약물 때문인지 검증하기 위해 실험실 연구도 진행했다. 현장실험이 실제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면, 실험실 연구는 약물의 체내 작용 원리를 확인하기 위해서 실시됐다.
테마제팜이 체내에 들어가면 일부가 옥사제팜으로 변환되는데 생물학적 활성이 강하다. 옥사제팜은 테마제팜보다 늦게 최고 농도에 도달하며 물고기 뇌에서 더 높은 농도로 축적됐다.
연구진은 “우리의 연구는 테마제팜이 자연 환경에서 갈색송어의 행동과 생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이는 단순한 실험실 결과가 아닌 실제 자연 환경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물고기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약물에 노출되는 환경에 적응할 수도 있고 어떤 개체들은 이미 오염물질에 대한 저항성을 발전시키고 있을 수도 있다”며 “더 정밀한 추적 기술을 활용해 약물 오염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계속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