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출구 보이지 않는 프랑스 위기

2024-12-16 13:00:11 게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집권 이래 최대 정치위기 상황을 맞았다. 미셸 바르니에 총리가 불신임의 역풍을 맞으며 3개월 만에 실각, ‘제5공화국 최단명 총리’의 오명을 씀으로써 마크롱 대통령도 동반 퇴진해야 한다는 강한 정치적 압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3일 또다시 자신과 같은 중도 성향의 프랑수아 바이루 전 법무부장관을 총리로 지명하는 초강수를 둠으로써 극우 성향의 국민연합(RN), 좌파연합(NFP)이 중심이 된 야당과의 갈등은 앞으로도 불가피해졌다.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사 프랑스 정치불안에 신용등급 강등

2017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대통령에 당선된 마크롱은 노동개혁, 감세, 스타트업 지원 및 공공지출 축소라는 파격적인 친기업적 정책으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기업 및 부유층을 위한 대규모 감세정책은 세수감소를 감수한 만큼의 경제회복을 가져오지 못했다. 또한 복지 감축 및 연금개혁에 반발한 국민의 반대로 공공지출을 거의 줄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부득이한 재정지출이 늘면서 재정적자는 6%에 육박해 유럽연합(EU) 재정준칙인 3%를 크게 웃돌게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마크롱정부는 집권 초의 감세정책을 번복하며 대기업 부유층을 중심으로 194억유로의 세금을 인상하고 413억유로의 공공지출을 삭감해 재정적자 규모를 1%가량 줄이기 위한 2025년 예산안을 편성했다. 그러나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은 좌우 야당들의 불만이 터지면서 결국 지금의 정치적 불안이 야기된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불안의 시작은 언뜻 마크롱의 실정이나 일방주의적인 국정 운영으로부터 비롯한 것으로 보이지만 보다 근본적 원인은 경제적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국민에게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프랑스 국민은 프랑스가 미국 아시아와의 경쟁에서 급격히 산업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허리띠를 졸라매기보다는 대중 인기에 영합한 극단주의 정당을 지지하며 환상만 쫓는 현실을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6월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프랑스가 GDP의 110%에 달하는 국가채무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문제 삼아 국가신용등급을 11년 만에 AA에서 AA-로 강등시켰다. 최근 무디스 역시 같은 이유로 국가신용등급을 Aa2에서 Aa3으로 한 단계 낮췄다.

프랑스 중앙은행은 9월 발표한 자국 거시경제 전망에서 내년 경제성장률을 올해와 같은 연 1.1%로 전망했다. 그러나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마크롱정부와 같은 특단의 노력이 없다면 프랑스의 국가채무 문제는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취임을 앞둔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나토 회원국들이 미국 국방 예산에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며 유럽 국가들에게 국방비 지출을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어 가뜩이나 과도한 복지 예산에 발목 잡힌 프랑스의 재정 상황은 내년부터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 정치적 위기 유로존 전체 경제위기로 확산 가능성

마크롱정부에 분노한 프랑스 유권자들이 이성적으로 현재의 재정 악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국민연합(RN) 등 극단주의 정당을 지지해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게 한다면 프랑스의 위기는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프랑스의 현 위기 상황이 프랑스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유럽 전체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유럽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로부터의 천연가스 수급에 불안을 겪고 있다.

그런데 유럽 최대 전력 수출국인 프랑스마저 정치적 위기로 휘청인다면 이는 단순히 겨울철 난방 에너지 확보 차원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유로존 경제성장 저하의 또 다른 뇌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의 경제·재정위기가 프랑스의 정치적 위기를 불렀고, 프랑스의 정치적 위기가 이번에는 유로존 전체의 경제위기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조태진 법무법인 서로변호사·M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