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보험회사 CEO 저격사건으로 표출된 미국민의 의료제도에 대한 분노

2024-12-17 13:00:01 게재

현지시각 12월 4일 오전 6시 45분쯤 뉴욕시 한복판에서 총격 살인이 벌어졌다. 피격을 당한 사람은 미국 최대 건강보험사인 유나이티드헬스케어의 최고경영자(CEO) 브라이언 톰슨이다. 그는 연례 투자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미니애폴리스에서 뉴욕을 방문했다가 변을 당했다. 행사장인 힐튼호텔을 향해 걸어가는 톰슨을 범인이 뒤에서 총을 쏘아 쓰러뜨리는 장면은 CCTV에 고스란히 포착되어 전파를 탔다. 뉴욕경찰은 범인이 톰슨을 노리고 치밀하게 계획해 실행한 범죄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톰슨의 죽음에 애도는커녕 조롱만

이 살인사건에 대한 많은 미국인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다른 살인사건 피해자에게 통상적으로 보여준 모습과 전혀 다르다. 50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어린 두 아이들을 남기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톰슨에 대한 애도는커녕 그의 죽음을 조롱하는 분위기가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상에서 만연하다. 예를 들면 톰슨의 부고를 알리는 회사의 페이스북 포스트에 ‘웃음’ 이모티콘이 8만4000개 이상 올라와 결국 회사 측은 댓글을 차단해야 했다.

사건을 보도하는 뉴스기사의 댓글이나 각종 소셜미디어 포스트에는 톰슨의 죽음에 대한 조롱뿐 아니라 비싼 보험료를 내는데도 보험사에 의해 치료가 지연 또는 거부된 경험담과 보험사의 횡포에 대한 성토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보험 적용을 받으려면 치료나 수술 전에 보험사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이를 이용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관행을 패러디한 “미안하지만 조의와 애도를 하기 전에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죽음에 대한 애도에 사전 허가가 거부되었다” 등의 블랙 유머 댓글에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현했다.

환자와 가족 입장에서 보험사를 상대로 겪은 어려움 외에도 의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글도 많이 올라오고 있다. 예를 들면 한 틱톡 유저는 자신을 응급실 간호사라고 밝히면서 건강보험사가 환자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꼭 필요한 치료를 거부해 죽어가는 환자들을 너무 많이 목도했기 때문에, 그 많은 환자들과 가족들을 생각하면 톰슨의 죽음에 애도를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2018년에 나온 통계에 의하면 일터에서 벌어지는 폭행 사건으로 다치는 사람들의 73%가 의료계 종사자들이다. 건강보험사가 가입자들의 보험 적용을 거부해 수십억달러의 이윤을 창출하고 임원들에게 수백만달러를 지불하는 동안 사람들의 좌절과 분노를 현장에서 직접 대면하는 사람들이 바로 간호사 레지던트 의사 등 의료계 종사자들이다.

한 블로그에 ‘왜 우리는 보험사 중역이 죽기를 바라는가’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은 “그건 그들을 살해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건강보험 적용이 거부되어 고생하거나 죽는 걸 본 적이 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고통을 겪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사람들의 심리를 설명하고 있다.

유나이티드헬스케어는 미국 최대의 건강보험사로 매출 기준 미국에서 네번째로 큰 기업인 유나이티드헬스 그룹의 자회사다. 약 5000만명이 가입한 유나이티드헬스 건강보험의 보험 적용 거부율은 다른 보험사들보다 높은 것으로 악명이 높다. 유나이티드헬스는 보험금 청구건수의 약 1/3을 거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톰슨이 CEO 자리에 오른 후 회사의 매출은 더 늘어나 지난해 매출은 2810억달러였다. 연간 수익 또한 120억달러에서 160억달러로 늘어났다. 그 공로로 작년 한해에만 톰슨은 1000만달러 이상을 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보험비는 계속 오르고 가입자들의 불만도 같이 커져왔다. 올해 초 나온 상원보고서는 유나이티드헬스를 비롯한 많은 보험사들이 실제 의료전문가의 검토가 아닌 인공지능(AI) 자동시스템을 사용해 보험금 지급거부 건수를 늘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CEO 톰슨은 회사가 법무부의 반독점 규제 조사대상이 되자 이 사실이 공개되기 전 1500만달러 상당의 회사 주식을 미리 팔았다는 내부자 부당거래 혐의도 받고 있었다.

저항의 상징으로 떠오른 살인범

이런 상황에서 아직 구체적인 범행 동기가 밝혀지기도 전에 사람들은 톰슨의 죽음을 공공의 적에 대한 응징으로 받아들였다. 동시에 범인에 대한 응원의 목소리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올라온 “총격범을 찾는 데 협조하는 자는 그 누구든 민중의 적”이라는 포스트는 11만개 이상의 ‘좋아요’를 받고 9200번 가까이 리트윗되었다. 또 “유나이티드헬스케어 CEO 총격범의 신원이 끝내 밝혀지지 않고 수백년 동안 미국 민간 전설의 영웅이 되기를 바란다”는 포스트는 14만9000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았다.

하지만 범인은 범행 닷새 뒤인 12월 9일 펜실베이니아주 알투나의 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직원의 신고로 체포되었다. 범인인 26세의 루이지 맨지오니의 정체가 드러나자 사람들의 반응은 더 뜨거워졌다.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나고 자란 맨지오니는 볼티모어의 한 명문 사립고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명문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한 엘리트다. 뿐만 아니라 조부 때부터 부동산 개발로 부를 축적해 현재 볼티모어 지역 라디오 방송국과 컨트리 클럽, 요양보호시설 등을 소유하고 있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한마디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저격범의 이미지와 전혀 맞지 않는 배경을 가진 것이다. 맨지오니의 한 지인은 맨지오니가 체포된 후 충격을 받았다면서 자신이 알던 맨지오니는 “장래에 훌륭한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이른바 금수저에 수려한 외모까지 지닌 맨지오니에 대해 사람들은 더 열광하고 있다. 근육질의 상체를 드러낸 그의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고, 그의 모습을 후광이 있는 성인(聖人)이나 예수의 보호를 받는 순교자로 묘사하는 밈이 소셜미디어에 넘쳐난다. 그를 21세기의 로빈 후드 또는 민중의 영웅으로 추앙하면서 무죄석방을 요구하고 변호사 비용을 위한 모금도 진행되고 있다.

직원의 신고로 맨지오니가 체포된 맥도날드 매장에 대해 쥐들이 들끓고 있다는 평점 테러가 가해지기도 했다. 영어로 ‘ Rat (쥐)’는 밀고자 배신자를 뜻하기도 한다. 맨지오니는 진보와 보수를 망라해 미국의 의료제도에 분노하고 좌절한 많은 사람들에게 저항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비영리 건강보험 논의 촉발 계기될까

맨지오니에 대한 이런 팬덤이 미국인들의 도덕적 나침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 어떤 이유도 살인을 정당화할 수 없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에 대한 해결을 폭력에서 찾는다면 결국 그 사회적 비용은 더 엄청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비싸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의료보험제도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분노 표출이라는 관점에서 이번 사태를 보아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크다.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 소비자 권리를 옹호해 온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폭력이 결코 답은 아니지만 온라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중들의 본능적인 반응을 보험업계는 ‘경고’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리화된 미국 의료시스템에 대해 오랫동안 비판해 온 버니 샌더스 의원도 톰슨이 살해된 것이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의료업계에 대한 대중의 분노 표출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의료를 기본인권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거부하면서 수십억달러를 버는 영리기업이 건강보험을 좌지우지하는 대신, 미국에도 다른 많은 선진국처럼 전국민에게 보장된 비영리 건강보험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이런 논의를 더 활발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지켜 볼 만하다.

남수경 뉴욕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