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회계법인에 유리’ 지적에…당국 ‘감사 지정점수’ 개선키로
중소법인 ‘빅4 중심 정책’ 문제제기
등록회계법인 건의안 ‘수용’에 방점
‘기업 지정감사 유예’ 방안도 곧 발표
기업들 건의사항도 일부 반영해 조정
상장기업 등에 대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적용을 둘러싼 기업과 회계업계, 회계업계 내부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개선안을 마련해 조율에 나섰다.
특히 회계업계에서도 대형 회계법인인 빅4(삼일 삼정 안진 한영)에 유리하게 책정된 감사인 지정제 정책에 등록회계법인인 중견·중소회계법인들의 문제제기가 지속됐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이 제도 개선에 나서기로 했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상장기업과 소유·경영 미분리 대형 비상장사 등이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을 6년간 자유 선임했다면 이후 3년은 금융당국이 지정하는 것을 말한다.
17일 금융감독원은 서울 여의도 본원에서 윤정숙 회계전문심의위원 주재로 ‘기업·회계법인 대상 피드백 간담회’를 열었다. 올해 1월 ‘감사인 지정기업의 애로사항 정취를 위한 찾아가는 간담회’, 6월 ‘감사품질 제고를 위한 상장사 등록회계법인 간담회’를 통해 청취한 애로·건의사항에 대한 검토 결과를 공유하고, 향후 감독방향 등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상장회사 감사권한을 가진 등록회계법인들은 감사인 지정과 관련해 빅4 중심의 정책에 대한 불만이 컸다.
금융당국이 회계법인을 특정 상장기업의 외부감사인으로 지정할 때 회계법인은 보유한 지정점수에 따라 지정 감사를 수행할 수 있는 기업이 몇 개인지 정해진다. 부여받은 지정점수에서 기업을 지정받을 때마다 점수를 차감하는 방식이다. 지정점수가 높을수록 여러 기업의 외부감사를 맡을 수 있는 만큼 매출이 상승하게 된다.
자산 2조원 이상 대형 상장사들은 빅4 회계법인들만 지정을 받을 수 있어서 매출 상승 폭이 크지만 지정점수 차감 폭은 최대 3배까지만 가중치를 두고 있다. 상대적으로 자산 규모가 작은 상장사를 감사하는 중견·중소회계법인 입장에서는 똑같이 1개 기업을 지정받더라도 대형 상장사의 경우 차감되는 지정점수 폭이 크지 않아서 대형회계법인에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감사하는 기업의 매출 규모가 10배 이상 차이가 나더라도 지점점수 차감은 3배를 넘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차감 폭을 최대 8배로 확대하는 가중치 조정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이와함께 등록회계법인들이 지정제외점수가 부과되는 패널티를 받게 될 때 회계법인 규모를 고려한 차등 부과 방안이 도입될 전망이다. 등록요건 위반에 따라 금융당국이 회계법인 규모에 상관없이 지정제외점수를 일률적으로 부과할 경우 지정점수가 많은 대형 회계법인들은 영향이 크지 않지만, 중소형 등록회계법인들은 지정점수가 바닥나서 최악의 경우 지정감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등록요건 유지의무 위반에 대한 조치 차등화, 수시보고 항목 정비 등 제도개선 건의사항에 대해서는 금융위원회와 함께 감사인 부담 완화 및 감사인간 형평성 제고를 위한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논의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기업에 대한 지정감사 부담 완화를 위해 지배구조 우수기업에 대해 주기적 지정을 유예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지배구조 우수기업을 선별하는 기준을 놓고 양측이 의견을 조율 중이며 올해 안에 주기적 지정을 유예받을 수 있는 지배구조 우수기업에 대한 평가기준이 발표될 예정이다. 다만 재계에서 요구한 지정감사인 복수지정 등 지정감사인 선택권 확대에 대해서는 수용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주기적 지정제의 정책효과 분석 데이터가 아직은 충분치 않아 당분간 제도의 큰 틀은 유지될 필요가 있으므로 기업의 감사보수 협상력을 높이는 선택권의 확대는 제도의 분석 데이터가 충분히 확보되는 시점까지 검토를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또 “기업·지정감사인간 감사시간 합의과정 내실화, 지정감사계약 체결기한 연장, 지정감사인 산업전문성 강화 등 기업부담 완화 및 감사품질 제고를 위한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금융위와 함께 논의해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재무기준 직권지정 사유를 지정사유에서 제외하는 외부감사법 개정안도 조속히 입법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대내외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투명한 결산과 철저한 외부감사 수행에 기업과 감사인이 만전을 기해줄 것을 당부했다. 금감원은 “수출환경 악화 등으로 내년도 우리 경제의 어려움이 예상되고 최근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더해져 자본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며 “수익성 저하에 따른 부진한 재무실적 은폐·누락 유인과 감사계약 수임 경쟁 격화에 따른 감사 품질 저하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감원은 “사회적 중요기업 및 취약업종 등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회계부정 발견 시 엄정 제재 등을 통해 자본시장 신뢰성 제고라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