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계엄 국무회의록 없다’ 결론
국방장관 계엄발령 건의, 한 권한대행 패싱 … 윤 대통령, 법적 절차 무시
‘12.3 내란사태’가 헌법에 따른 적법한 통치행위였다는 윤석열 대통령 주장과 달리 처음부터 최소한 절차를 무시한 불법이었다는 근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17일 경찰 등에 따르면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특별수사단)은 비상계엄을 심의했던 국무회의 회의록이 없다는 잠정결론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등 국무위원들의 내란 공모 근거로 제기됐던 부서 의혹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총리를 거쳐야 하는 국방장관 또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계엄발령 건의가 대통령에게 직접 이뤄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처음부터 법적 전제조건과 절차를 무시한 불법이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5분간 열린 요식행위 의혹 = 특별수사단은 비상계엄이 선포되기 직전 열린 국무회의의 회의록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했다.
김한수 행안부 의정관은 최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의정관실이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그날 밤 (계엄 선포·해제 관련) 국무회의에는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과 행안부 등에 따르면 국무회의는 3일 밤 10시 17분부터 22분까지 단 5분간 열렸다. 국무회의는 계엄선포안을 심의만 할 뿐 의결하지는 않지만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보면 최소한의 의견 청취도 이뤄지지 않은 요식행위 였음이 확인된다.
헌법 제89조 제5호에 따르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려 할 때 사전에 국무회의를 열어야 한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의 절차상 요건을 갖추기 위해 국무회의를 열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상계엄 선포 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은 윤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조태열 외교부장관, 김영호 통일부장관, 박성재 법무부장관,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장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장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장관 등 11명이다.
◆1980년에도 회의록 남겼는데 = 그러나 참석자 발언 요지나 속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국무회의 규정 10조·11조에 따르면 국무회의가 열리면 간사인 행정안전부 의정관이 사회를 맡고 국무회의록도 작성한다. 국무회의록은 회의 개최일로부터 약 7~10일 후 행정안전부 누리집을 통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개한다.
회의록이 없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덕수 권한대행 등에 쏟아졌던 부서 논란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졌다. 부서는 법령이나 대통령의 국무에 관한 문서에 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함께 서명하는 일을 말한다.
야당 등 일부에선 한 권한대행이 내란에 동조 또는 공모했다는 근거로 부서 가능성을 제기해왔다.
윤 대통령의 법적절차 무시는 정권 찬탈을 목표로 신군부가 주도한 1980년 비상계엄과도 비교된다.
정치권 등에 따르면 1979년 10월 20일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나고 정부는 10월 27일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어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정부는 이날 밤 10시 50분부터 국무회의를 열었고 회의록을 작성, 최규하 전 대통령 등 국무위원들이 부서를 했다.
윤 대통령이 최소한의 절차는 지키려 했던 신군부보다도 법적절차를 무시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모든 국무위원 반대했다” = 뿐만 아니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계엄발령 건의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도 확인됐다.
계엄법 제2조는 ‘국방부 장관 또는 행정안전부 장관은 계엄 사유가 발생한 경우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에게 계엄의 선포를 건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적법한 계엄 선포를 위한 최소한의 전제 조건이다.
한덕수 총리는 최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를 건의했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의 질의에 “전혀 알지 못했고 저를 거치지 않았다”고 답했다.
한 총리는 “그것은 분명 법에 따르지 않은 것”이라며 “앞으로 여러 절차에 따라 국민이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 총리는 또 “저한테는 워낙 보고가 없었기 때문에 부서를 거치면 합법이라든지, 합법이 아니라든지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상황이었다”며 “모든 국무위원이 반대하고 걱정했다”고 설명했다.
◆“절차적 문제” 진술 확보 = 한편 특별수사단은 국무회의 회의록이 윤 대통령을 비롯한 참석자들의 발언 요지가 담긴다는 점에서 계엄 선포 경위를 파악하기 위한 핵심 증거로 여겨왔다. 이에 따라 경찰은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 대한 압수수색 때 이를 확보하려고 시도했었다.
회의록을 없을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특별수사단은 당시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국무위원 조사를 통해 윤 대통령의 발언요지와 지시사항 등 파악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16일 이상민 전 장관 조사에 앞서 경찰 특수단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박성재 법무부 장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 당시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국무위원 7명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
경찰은 당시 국무회의에 절차적 문제가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복수의 국무위원으로부터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