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혜현의 중남미 톺아보기
트럼프의 복귀와 먼로주의 부활 우려하는 중남미
트럼프 2기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제사회의 우려와 불안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지리적으로 근접한 중남미 지역에서는 먼로주의의 부활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먼로주의는 1823년 미국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아메리카에 대한 유럽 열강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선언한 외교원칙으로 미국을 아메리카의 패권국으로 만들었다.
지난 2세기 동안 미국은 먼로주의의 기조 하에 자국의 경제·정치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중남미 전역에 개입했다. 2013년 존 케리 국무장관은 미주기구 연설에서 먼로주의의 종식을 발표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중남미에 대한 일방주의적 통제를 강화하면서 먼로주의 종식은 상징적인 수사에 그쳤다.
더욱이 최근 이민과 마약 문제가 미국의 대통령선거 판도를 결정하고, 중국의 중남미 진출이 미국의 이익과 안보에 위협적인 문제로 부상하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2기정부의 중남미 개입은 증가할 것이다.
현재 미국 내에서는 중남미를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되며,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뒷마당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먼로주의가 부활할 가능성이 크다.
불법이민 차단과 중국 억제가 목표
트럼프 2기정부 대외정책에서 중남미가 어느정도의 우선순위가 될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이 외교 안보 이민정책을 담당하는 주요 직책에 이민 강경론자와 대중국 강경파들을 지명하면서 미국과 중남미 관계의 핵심의제는 불법이민 차단과 중국의 영향력 억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두 문제는 중남미 국가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외교적 과제다. 트럼프가 이민과 중국 억제를 위한 지렛대로 관세를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불법이민과 마약유입이 차단되지 않으면 멕시코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렇게 되면 대미 수출이 전체의 85%인 멕시코로서는 경제적 타격이 심각해진다. 그밖에도 대미 수출이 30%를 넘는 코스타리카 베네수엘라 도미니카공화국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과테말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등도 트럼프의 거래적 외교 정책에 긴장하고 있긴 마찬가지다.
대중국 강경파들이 중남미에서 중국을 미국의 안보위협으로 인식하게 되면 먼로 독트린의 일방주의가 되살아날 것이며 중남미 국가들에게 선택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역사상 최대 이민자 추방 작전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성공적인 반이민 캠페인 덕분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는 국경장벽 건설에 초점을 맞추었던 1기 때와는 달리 불법이민자 추방을 약속했다. 선거운동 내내 중남미를 불법이민과 범죄의 원천으로, 미국에 해를 끼치는 이웃으로 비난하면서 불법이민자들을 ‘미국의 피를 오염시키는 범죄자’로 낙인찍고, 이들을 미국에서 몰아내기 위해 취임하자마자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불법 이민자 추방 작전을 펼치겠다고 약속했다. ‘국경 차르’에 트럼프 1기정부에서 불법 이민자 가족 분리 정책을 주도했던 톰 호먼을 지명하며 강도 높은 이민자 추방을 예고했다.
현재 미국에는 1100만명의 불법 체류자들이 살고 있으며 그중 멕시코 출신이 50%, 중미 출신이 20% 그리고 남미 출신이 10%를 차지한다. 따라서 트럼프의 불법 이민자 추방 작전의 최대 피해자는 중남미인들이다.
이들은 기후변화 폭력 빈곤 그리고 정치적 억압을 피해 그들의 자녀들에게 더 나은 삶의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절박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중남미인들의 절박함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조치가 선행되지 않는 한, 미국 정부의 어떠한 국경정책도 미국으로 향하는 이민 물결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쿠바 중국 등 자국 시민의 송환을 거부하는 국가의 불법 이민자들의 경우 제3국으로 추방할 계획이지만 바하마 파나마 그라나다 멕시코 등 추방국으로 거론된 국가들은 다른 나라 출신의 이민자 수용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미 트럼프 1기 때 과테말라 정부를 관세로 압박해 미국에 입국한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출신의 서류 미비자들을 과테말라로 추방한 적이 있다.
그러나 많은 이민자들이 영문도 모른 채 비행기에 실려 과테말라로 추방되어 그곳에서 심사를 기다리면서 비인도적 논란과 법적소송에 휩싸였다. 따라서 관세부과 또는 원조 중단과 같은 강압적 수단은 중남미 국가들의 협조를 끌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
미국의 영향력 약화와 중국의 진격
트럼프의 복귀가 미국과 중국 관계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지 전세계가 궁금해하는 가운데 지난 11월 14일 페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미국의 뒷마당인 중남미에서 중국의 확실한 입지를 보여주었다. 알파벳 순서에 따른 자리 배치였다고 하지만, APEC 단체 사진의 맨 앞줄에 주최국인 페루의 볼루아르테 대통령이 섰고 바로 옆에 시진핑 주석이 나란히 섰다. 이와 대조적으로 끝줄 가장자리에 선 바이든 대통령의 모습은 중남미에서 미국의 영향력 약화와 전략 부족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날 시 주석은 리마에서 북쪽으로 80㎞ 떨어진 곳에 위치한 창카이(Chancay)항 개항식에 참석했다. 창카이항은 중국이 일대일로의 중남미 거점으로 삼기 위해 개발한 항구로, 남미와 중국을 직항으로 연결해 기존의 운송 시간을 10일이나 단축한다. 최대 수심이 17.8m로 군함을 포함한 모든 용도의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초대형 항구로 중국은 페루뿐 아니라 브라질 칠레 에콰도르 콜롬비아와 창카이항을 연결하는 인프라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창카이항을 바라보는 미국의 심기는 편치 않다. 중국 국영기업인 코스코해운이 지분 60%와 독점적 운영권을 가지고 있다. 페루는 광물 전기 통신과 같은 전략 부문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만약 전시상황이 발생할 경우 중국군이 군사적 용도로 항구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 20년간 중국과 중남미 간 무역은 10배 이상 증가했으며 중국은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큰 무역 파트너가 되었다. 멕시코를 제외하면 중국이 첫번째 무역 파트너다. 중국은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에콰도르 멕시코 페루 베네수엘라 그리고 콜롬비아와 포괄적인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2018년 이후 22개국이 중국의 일대일로에 가입했으며 아직 가입하지 않은 브라질과 콜롬비아는 일대일로 가입을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멕시코도 아직 일대일로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이미 중국 기업들이 마야철도 및 멕시코시티와 몬테레이의 지하철 사업 등 중요한 인프라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중국은 에콰도르 브라질 베네수엘라의 유전, 페루 볼리비아 칠레의 광산 그리고 아르헨티나 교통시스템에 지분을 가지고 있다. 엘살바도르에 대형 도서관과 축구장 그리고 우루과이에는 학교를 짓고 아르헨티나에서는 우주항공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브라질 멕시코 칠레 볼리비아 에콰도르 페루 등과 합동 군사훈련 및 무기판매 등 군사교류를 하고 있다. 특히 쿠바에는 도청과 인공위성 감시를 비롯한 첩보시설을 건설했다.
중남미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경제를 넘어 군사안보적 차원으로까지 확장되면서 외부 세력의 침투에 대한 우려가 미국 내 먼로주의의 부활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미국의 중국 견제가 중남미 국가들에게 지렛대로 작용해 전략적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국익에 유리한 협상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트럼프를 추종하는 아르헨티나의 밀레이 대통령과 엘살바도르의 부켈레 대통령은 트럼프와의 개인적 유대감을 이용해 미국과의 관계를 유리하게 바꾸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