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미궁 속에 빠진 광역 행정통합
광역자치단체 간 행정통합 추진이 깜깜이 상황에 처했다. 윤석열정부 들어 야심차게 추진되고 있었는데 돌연 내란사태 소용돌이에 휩싸인 탓이다. 큰 후원군이던 윤석열 대통령부터 권한정지 상태다. 주무장관인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도 사퇴했다. 대통령과 정부 동력이 약화되면서 행정통합을 논의하던 시・도들이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추진하기에는 버거울 수밖에 없다.
2026년 6월 지방선거부터 통합지자체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계획이지만 시・도간 합의와 주민동의, 특별법 제정 등 정상적으로 진행돼도 일정이 빠듯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런 탄핵정국으로 그동안 진행되던 모든 일정이 틀어져버렸다.
문제는 내란사태 이전에는 윤 대통령의 의중이 큰 동력이 됐지만 이젠 오히려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장 앞선 대구·경북 행정통합에서부터 위기감이 감지된다. 이미 통합안이 대구시의회를 통과하며 상당히 진행된 곳이다.
행안부와 대구시·경북도 등은 당초 올해 안에 국회에서 행정통합특별법을 발의하고 내년 상반기 특별법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경북도청이 위치한 안동·예천을 중심으로 한 경북 북부권은 통합에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통합을 뒷받침했던 행안부와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탄핵정국으로 사실상 힘을 잃어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부산・경남은 탄핵정국과 상관없이 통합을 추진한다는 입장이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한차례 통합 포기를 선언했다가 최근에야 공론화위원회 활동에 들어갔지만 내란사태 후 정치일정이 불가측이다. 주민의견을 묻고 권역별 토론회 등을 이어가 내년 상반기 내 결론을 내려야 하는데 공교롭게 대선 일정과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대선 블랙홀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면 행정통합 논의는 관심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의 막후 지원으로 이제 막 통합논의를 시작한 대전・충남은 더 당황스럽다. 올해 안 민관협의체를 출범시킨다는 계획이었지만 시작도 제대로 못해보고 중단될 위기다. 행정통합특별법 통과의 키를 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도 부정적이다. 취지는 공감하지만 공론화 과정은 없이 시장과 도지사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통합은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별법에 담길 특례조항도 문제다. 특례는 통합의 핵심요인인데다 주민을 설득할 수 있도록 최소한 재정권은 담아야 한다는 것이 모든 시・도의 공통된 입장이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특례를 담은 특별법 제정 자체가 난망이다.
껍데기뿐인 행정통합은 안된다. 헌재의 탄핵 결정이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지만, 그 이후 정부가 지방 목소리를 담아 대한민국의 소멸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곽재우 자치행정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