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구체적 기준 필요한 중대재해처벌법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 2022년 1월 27일 시행돼 곧 3년을 맞이한다. 이법은 입법 초기부터 많은 논란을 낳았고 현재까지도 여러 평가가 오가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경영책임자에게 요구하는 가장 핵심적인 법적 의무는 안전보건확보의무(동법 제4조 및 제5조)이고, 이는 같은 법 시행령 제4조 및 제5조로 구체화 되어 있다. 필자가 현장에서 느끼기에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사업장들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상 요구되는 의무가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이행하여야 하는지를 비교적 명확하게 인식하고 준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경영책임자의 '책임기준' 문제
그러나 문제는 법 시행 만 3년이 되었음에도 아직 경영책임자가 어느 정도의 노력을 해야 실제 중대재해가 발생하더라도 무혐의 또는 무죄로 평가될 수 있는지에 관한 구체적이고 예측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데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준수하려는 경영책임자 입장에서는 안전보건확보의무를 노력해서 달성하면 실제 중대재해가 발생하더라도 무혐의 또는 무죄를 받을 수 있다는 신뢰와 예측가능성이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실질적인 안전보건예산의 투입과 안전보건확보의무의 이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만약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중대재해가 발생해 결과적으로 유죄로 판단되어 버리거나 신뢰할 만한 기준 없이 수사기관이나 사안에 따라 복불복이라는 식의 인식이 퍼지게 된다면 경영책임자들은 실질적인 안전보건확보의무 달성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형식적인 경영책임자를 세우거나 중대재해 발생을 대비한 서류 구비에만 몰두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필자 생각으로는 실제 우리 사회에 이러한 인식이 퍼져가고 있다. 특히 이미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경우에는 중대재해가 재차 발생하는 경우에 실형 리스크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신뢰할 만한 기준이 없다면 경영책임자가 경영을 이어가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해당 사업장의 사업 범위도 지나치게 축소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예측할 수 있는 무죄 판단 기준 필요
하급심 판결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법원의 유죄 인정 법리와 기준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무죄 판단 기준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법 시행 만 3년이 되어가는 만큼 수사기관과 법원에서는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확보의무를 어느 정도 이행했을 경우에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무혐의 또는 무죄로 판단될 수 있다는 점에 관한 구체적이고 예측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해야 할 때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중대재해 발생 이전에 신뢰할 수 있는 예측가능한 기준이 있다면 상당수의 경영책임자들은 기꺼이 안전보건예산을 투입하고 안전보건확보의무의 실질적 이행을 위해 노력을 할 의지가 있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그 목적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 기능할 수 있을지 여부를 결정지을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경영책임자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면, 경영책임자는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의 목적은 경영책임자를 엄벌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함에 있다(동법 제1조).
만 3년째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과연 목적에 부합하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되돌아 보고, 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예측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한 때다.
법무법인 수안 변호사